한 장관 후보자의 창조과학 커밍아웃으로 인해 종교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나이는 6천년이라는 젊은 지구설에 대해 두 개의 입장을 운운하여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죠. 종교가 사실의 영역을 침범하는 창조과학을 전국민 앞에 보여준 셈입니다. 그는 이공계열 박사 학위 소지자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내 명문대학의 교수입니다. 그런 사람이 상식 이하의 뒤틀린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위력을 말합니다.
국내 명문대의 공학 박사도 기초적인 사실 앞에 머뭇거리게 만드는 종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걸까요? 진화 생물학은 이에 대해 한 가지 답을 제시합니다. 종교는 우리의 본성이라구요.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본성이 됐는가에 대해서 3가지 이론을 제시합니다.
1. 종교가 우리를 살아남게 하리라, 종교 적응론
자연선택은 진화의 기본 개념입니다.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살아남아 후대에 널리 퍼지게된다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이 것을 '목이 긴 기린이 살아남았다'라는 비유로 배웁니다. 목이 짧은 기린과 목이 긴 기린이 있었는데, 짧은 목 형질을 지닌 목 짧은 기린은 도태되었고 긴 목 형질을 지닌 목 긴 기린이 살아남아 목이 긴 기린이 생겨났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여기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벌이나 개미, 더 나아가 인간 같은 사회성 동물들은 어떨까? 집단 생활을 하는 생물은 집단에도 자연선택이 적용될까?". 그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개체선택), 개체가 모인 집단에도(집단선택) 자연선택을 적용하여 연구하였고 이윽고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을 창안합니다.
윌슨의 저서 '사회생물학'이 화제가 됬을 때의 타임지
사회생물학의 집단선택을 통해 본 종교는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를 가진 집단이 생존에 더 유리했다'. 집단과 집단과의 경쟁에서 종교를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에 더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종교 단체를 떠올려봅시다. 종교 단체의 구성원들은 같은 신념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잘 뭉치는 경향이 있고, 이타성을 강조하는 종교의 규율 덕분에 같은 구성원들에게 이타적입니다(여기서 이타적이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중시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천사들이 노래하고 사자와 양이 같이 뛰노는 천국이나 매일 축제가 벌어지는 발할라, 72명의 처녀가 있는 잔나 등 사후세계를 제시함으로 인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어느 정도 극복시켜줍니다. 이 것들이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자살폭탄 테러처럼 때로는 단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는 경우도 생기죠.
이렇게 강력한 이타성과 협동력, 그리고 용맹함으로 뭉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지닌 집단들이 살아남아 우리에게 종교성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상당히 합리적인 주장이지만 비판 역시 존재합니다.
집단선택은 개체선택과 상응하기도, 충돌하기도 합니다. 즉 개인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이 될 때도 있지만,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반대될 때도 있습니다. 내가 경제활동을 하면 나는 소득이 늘어나서 좋고, 국가는 경제효과가 창출되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군대에 끌려가면 나는 시간을 허비하게 되어 싫지만, 국가는 방위력이 증강되어 좋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군대에 가지 않으면서 증강되는 방위력의 혜택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사회생물학에선 이 무임승차자를 배신자 혹은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개체선택과 집단선택이 복잡하게 얽힌 것을 다수준선택이라고 부릅니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일겁니다, 종교가 집단에 도움되기도 하지만 개인에게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한 손해라든지, 개인의 희생을 강요 받는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죠. 또 종교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면서 그 이익만을 취하는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집단 내에 배신자가 많아진다면 그 집단은 경쟁력을 잃게되고 종교는 집단의 생존에 해가 되겠죠. 아직까지 종교 적응론은 이런 다수준선택의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모델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2. 종교는 배꼽이다, 종교 부산물론
배꼽은 왜 생겨났을까요? 배꼽이 우리의 생존에 어떤 역할을 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우리의 생존에 역할을 한 것은 탯줄이고, 배꼽은 그 탯줄이 제거되면서 생긴 부산물이죠. 야구 사랑으로 유명한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우리의 모든 형질이 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화한 것이 아니며 배꼽처럼 부산물 또한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삼각소간(spandrel)을 통해 이 것을 설명했습니다.
미 국회도서관 건물의 삼각소간
삼각소간은 아치형 구조물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공간입니다. 사진에 있는 미국의 국회도서관 입구처럼 그 곳에 장식이나 조각을 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삼각소간은 장식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아치형 구조물을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입니다. 이 공간을 활용해서 장식을 할 뿐이죠. 마찬가지로 종교도 적응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발전시킨 정신적 능력들의 부산물이라는 것이 종교 부산물론의 주장입니다.
험한 사바나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수 많은 고난을 헤쳐나와야 했습니다. 지능이 발달한 종 답게 정신적 능력들을 통해서 이를 해결했죠. 문제를 풀기 위해 원인과 결과를 추론하는 인과 추론 능력,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흔적을 통해 포식자-경쟁자의 존재를 가정하는 행위자 탐지 능력, 그리고 집단 생활에서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추측하는 마음 이론 능력.
사람은 인과 추론 능력을 통해 어떤 사건의 인과를 추론합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나 살면서 겪는 복잡한 일에 대해선 인과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행위자 탐지 능력 덕에 우리는 어떤 사건의 뒤엔 특정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과를 알 수 없는 사건엔 절대자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또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하는 마음 이론 능력덕에 그 절대자의 인격도 만들어낼 수 있죠. 즉 종교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우리의 정신적 능력들 때문에 나온 부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역시 부산물론에 대한 비판도 존재합니다. 종교가 정신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면 종교의 위세가 그렇게 강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도 세상엔 수 많은 이들이 종교를 자신의 삶에 중심으로 놓고 삽니다. 수 십억 명의 사람들이 수 많은 교리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고 있는 현실을 단순히 부산물의 영향력이라고 볼 수가 있을까요?
3. 종교도 유전자다, 종교 밈 이론
밈은 생물학자이자 무신론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히트작 <이기적 유전자>에서 창안한 개념입니다. 유전자가 후대에 자신을 널리 퍼뜨리려고 하는 복제자이듯 인간의 문화와 사상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유전자 gene에서 이름을 따와서 밈 meme이라고 이름 붙혔죠. 이 밈의 일종인 종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리려고 합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 되리라(사도행전 1:8)",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리니(수라 9:5)",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러 주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시나니, 모두가 한량없고 말할 수도 없고, 끝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공덕을 이룰 것이니라(금강경)"
이렇게 종교는 널리 퍼져나가려고 합니다. 마치 바이러스가 숙주에 기생하여 자신을 복제하듯이, 종교도 인간의 정신에 기생하여 자신을 퍼뜨립니다. 그래서 도킨스는 종교를 정신 바이러스라고 부릅니다.
우린 모두 잔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무거나 줏어 먹지마라,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대지 마라, 날카로운 칼을 멀리해라, 높은 곳에선 조심해라 등 부모로부터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습니다. 도킨스는 이 것이 종교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대선 안되는 것처럼, 영원히 지옥불에 고통받고 싶지 않으면 교회를 다녀야 합니다.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처럼 신의 말씀을 잘 들으면 복을 얻죠. 이렇게 위험과 보상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코드와의 유사성, 그리고 종교를 가르치는 존재가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구분시켜주는, 우리가 신뢰하는 부모라는 점을 이용해서 종교는 바이러스의 감염에 성공합니다.
밈 이론에 대한 비판은 이렇습니다. 유전자가 어떤 원리로 어떤 작용을 통해 자신을 퍼뜨리는지에 대한 매커니즘을 규명한 것과는 달리, 종교 밈은 자신을 퍼뜨리는 매커니즘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종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퍼뜨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아이디어가 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하냐는 것도 있습니다. 초기의 종교는 불가해한 일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 같은 원시종교들은 영혼을 상정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설명하려고 하죠. 그리고 그 후 종교는 도덕에 대한 규정입니다. 십계명이나 삼귀오계처럼 율법과 규율을 내세웁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해 구분하죠. 종교가 유전자처럼 작동하는 밈이라면,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 것처럼 초기 아이디어와는 달리 후대에 이르러 얻게된 것은 유전되지 말아야하지만 종교는 그 컨셉을 바꿔서 이어져왔습니다.
그 외에...
많은 지지를 받진 못하지만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종교는 우리의 생각에서 비롯됬다는 견해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동물입니다. 오늘은 뭘 먹을까, 주말에 영화 봐야지 등 우리는 쉴새없이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하는 생각에 대해 인식하는, 메타의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줄리언 제인스는 <의식의 기원>에서 상당히 독특한 주장을 합니다. 이런 메타의식 혹은 자기 인식은 최근에 생긴 능력이고, 기원전 10,000년~ 기원전 1,000년까지의 인류에겐 이런 능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인류는 자기 머릿속의 목소리는 타자의 목소리라고 믿었고 이집트, 수메르,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유물들이나 고대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라는 개념이 이를 방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뇌의 좌반구는 말하고 있고 우반구는 듣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는 모르기에, 마치 머릿 속에 두 개의 의식이 있는 것 같기에 그는 이 것을 양원론적 의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양원론적 의식론을 통해 인공지능과 자아를 다룬 미드 웨스트월드
자신의 생각을 샅샅이 꿰뚫고 있는 타자의 목소리는 당시 인류에겐 신이나 다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신이라는 존재를 창조하게되고 이 것이 종교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흥미롭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상기 언급했듯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한 견해입니다.
이상이 종교의 기원에 대한 4가지 설명이었습니다. 종교의 기원이 어떤 방식이 되었든간에 종교성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특정 종교가 아니더라도 우린 여러가지 종교를 믿습니다. 종교가 없더라도 미신을 믿기도 합니다. 혹은 종교와 미신에서 자유로울지라도 여전히 우린 영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칼 세이건이 말한 것처럼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경외라는 종교적 감성을 느끼니까요.
화를 내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종교성도 우리의 본성 중 하나라면, 그 것은 없앨수도 없거니와 우리가 우리이기 위해선 없애서도 안되는 것일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여느 특질들과 마찬가지로 그 것을 어떻게 발현시키냐의 문제겠죠.
"나는 우주적 종교의 경험이야말로 과학적 탐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