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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소설] 쾌남 봉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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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5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16 00: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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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퇴직

 

예전에 철도국 다닐 때 말야. 낮술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

 

-대낮부터 술이나 처먹고 뭣들 하는 짓이지?

 

한심해 보이잖아!

. 그건 나도 나름 멀쩡하게 직장 다니면서 열심히 일 할 때 얘기고.

사람 사귀고 돌아다녀야 하는 영업직이 아닌 이상에야, 근무 중에 술을 마시거나 하는 건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도 금기중의 금기였거든.

근데 말이야. 막상 내가 직장에서 차별받고 승진까지 안 되니까 영 일 할 맛이 안 나더라고. 열 받아서 근무 중에 반주삼아 몰래몰래 술도 마시고 했어.

나 하나쯤 없어도 직장이란 건 얼추 돌아가게 마련이라, 야금야금 늦게 나갔다가 1초라도 빨리 퇴근하려고 별별 꼼수를 다 썼어.

철도국이고 나발이고 정나미가 뚝 떨어졌거든.

 

이렇게 허송세월이나 하느니 그만 둘까도 싶었는데 이게 또 말야. 그리 쉬운 게 아니잖아? 집안에 상담을 해봐야 씨도 안 먹힐 소리지.

 

-늙으신 어머니 병수발은 누가하냐! 안정된 직장을 왜 때려치냐!

 

나도 나지만 주변에서 난리도 아니야. 아주 살기가 등등해.

 

그래도. 누가 뭐라건, 정말 맹렬하게 다니기가 싫더라고.

하여간 계속 철도국을 다녀보려고 갖은 애를 써보긴 했는데 그러자니 이게 또 죽을 맛이야. 나 그때 갈등 엄청 때렸어.

 

조선은 고사하고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와도 변변한 직장 하나 못 구하는 세상인데, 딸랑 보통학교 밖에 못 나온 나 같은 놈이 공무원 비슷한 대접까지 받을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되겠어. 그런 꿈의 직장을 때려치는 놈이 있다면 그게 미친거지.

그리고 그 미친 사람이 바로 나였어. 이쯤 되면 미친 거 맞아.

 

그래도 한번 직장이 싫어지니까 그쪽으로는 오줌도 싸기 싫더라고.

 

뭐 그 다음부터는 뻔하지.

의욕도 없겠다. 잔업이건 야근이건 신경껏지 뭐.

무작정 일찍 들어가는 거야.

근데 집에 일찍 기어 들어가 봐야 병든 어머니밖에 없잖아.

그러니 월급이 나오거나 주머니에 푼돈이라도 있으면 바로 작부집으로 달려갈 수밖에. 안 그러는 사람 사정은 잘 모르겠고... 하여간 난 그랬어.

일단 퇴근하면 무조건 작부집 가서 젓가락 뚜드리고 따라딴따 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그러다가 간혹 마음에 드는 작부가 있으면 그 집에서 한밤 자고 오기도 하고.

술이 덜 깨면 그 다음날은 별 말없이 재끼기도 하고. 뭐 얼마간은 계속 그렇게 살았어. 그때 진짜 마작도 꽤 많이 했어.

 

그러다보니 직장에서 평판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지, 술값 외상에 도박 빚은 쌓이지, 타락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

따지고 보면 나처럼 열심히 일한 사람도 철도국에 별로 없었는데 말야. 직장에서 더러운 꼴을 겪고 보니까 그런 거 다 소용없더라고.

사는 게 참 허무해.

아무리 잘 살아보겠다고 미친 듯이 발버둥 쳐봐야, 조선인은 머리 허연 오십 줄에 간신히 고원(하급관리)밖에 못하는데 그런 직장에 무슨 놈의 정성을 들이겠냐 말야.

안그래?

 

그렇게 한 반년정도 지냈나?

자의반 타의반... 왠지 그만 둬야 할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지.

 

그 때 내가 꾀를 좀 썼어.

퇴직은 이미 마음먹었지만, 병원에서 아프다는 증명서만 받아오면 퇴직금이 거기에 비례해서 좀 더 나온다는 말을 들었거든.

다른 일반 직장 같은데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 이게 다 공무원혜택이라고.

 

-! 공무원이 이래서 좋구나!

 

근데 세상살이란 게 참 웃기데.

막상 철도국 때려치려고 결심했더니 공무원 좋은 걸 그제야 깨달았다니!

 

. 아무래도 상관은 없어. 어차피 난 관둘 거니까.

마침 무릎도 아프고 했는데 잘됐다 싶었지.

아는 병원에 쪼르륵 달려갔더니 그 정도로는 철도국 제출용 진단서를 못 써주겠데.

 

그래서 나도 좀 방법을 바꾸기로 했어. 무슨 특별한 방법을 쓴 건 아니야.

걍 진단서 써 줄 때까지 들러붙는 거지.

-해 주세요.

-이 정도로는 진단서 못 끊어줘.

-해줘요.

-안된다니까. 이거 불법이야.

-그래도 해 주세요. 해줘요. 해줘요.

-무슨 소리를 해도 절대 안 돼!

-정 안되면 이 병원에서 확 죽어버릴까요?

-아니, 그건 심히 곤란하고... 어휴, 내 의사생활 30년에 너 같은 놈은 첨 본다...

내가 진짜, 더러워서 해준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한 의사가 결국은 가짜 진단서를 떼어주더라고.

뭐 좀 치사한 일이기는 했지만, 계속 다녀봐야 별 희망도 없을게 뻔히 보였거든.

어차피 미래가 뻔 할 거면 나오는 김에 한 푼이라도 더 챙기고 싶었어.

 

어쨌건 이래저래 해서 한 80원 정도 챙겼어. 밀린 술집 외상값하고 마작 빚도 좀 갚고. 그길로 철도국 바로 때려쳤지.

 

그 다음에 어떻게 됐냐고? 이런 건 물어보는 게 실례 아닌가?

직장 때려치고 돈 떨어진 백수생활이 어떻겠어? 고난의 가시밭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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