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는 실업관리공단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패색이 짙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마 2번째 구직실패자들 이겠지..'
현주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저들과 다르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일단 나이도 젊었고, 무엇보다 한 번의 구직실패 밖에 겪지 않았다.
날로 치솟아 올라가는 극악한 실업률 때문에 국가 경제는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특단의 대책으로 2년동안 구직에 실패한 사람들을 모아,
개인솔루션을 제시하고, 그 방법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특별처리'를 하는 정책이었다.
현주는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주 말고도 몇몇 동기들은 솔루션에 참가해 일자리를 얻었다.
아마 현주도 무사히 이 솔루션을 마친다면.. 직업을 얻을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01번 님 들어오세요."
현주는 230번이었다. 현주의 차례가 되려면 아마 2시간은 지나야 될 것이다.
현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자판기 앞으로 향했다.
커피 자판기는 현주를 한 번 스캔하더니 기계음을 흘려보냈다.
"F등급 앞으로 10번만 이용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쳇.. 쫌생이 같이.."
현주는 그 자리에서 커피 자판기를 발로 찼다. 하지만 커피자판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무덤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곧 뜨끈한 커피가 현주앞에 나타났다.
현주는 커피를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기실 좌석은 이미 꽉들어찼다.
"여긴 처음 오시나 보죠?"
음성이 들린곳으로 고개를 틀자,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내가 서있다. 서글서글한 인상이
아마 이곳에서 상담직으로 일하는 사람일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네.. 근데 누구세요?"
"아.. 저는 이 곳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김도훈 이라고 합니다."
"아.."
역시나 현주의 예상이 맞았다. 도훈은 몇번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개인적인 호의라서 위반사항이긴한데.. 혹시 대기줄이 길거 같으면 제 상담실로 오시죠.
물론 다른뜻은 없습니다. 일단 나이가 젊어 보이셔서.. 아직 원아웃 맞으시죠?"
일종의 은어다. 원아웃...
현주는 얼핏 들었던 소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두 번의 구직실패를 겪으면 과도한 히스테리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몇 몇 상담사들은 투아웃 상담자 즉 두 번의 구직실패자를 가장 싫어한다고 들었다.
어쩌면 현주 같이 절박함이 없는 상대가 상담을 하기가 수월 할 수도 있었다.
"네.. 좋아요..그럼.. 어디로 가야하죠?"
+ + +
도훈은 자리 앉자마자, 여러 팜플렛을 가지런히 현주의 앞에 놓기 시작했다.
"자 봅시다.. 일단 현주씨는 A 대학의 B전공을 하셨군요.
근데 놀랍네요. 이런 스펙을 가지고도 첫 구직에 실패하셨다니.."
"그게.. 요즘은 다들 어렵잖아요."
"하긴 그렇죠.. 흠..당연히 적성검사는 받아보셨겠죠?"
"네.. 소설가, 교수, 변호사, 이렇게 3개의 적합성이 최고 점수를 받았어요."
"하아.. 최악이네요. 전부 취업하고 거리가 먼 직업이라서.."
도훈은 가감없이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내비 추는듯 보였다. 아마 이런 식으로 상담자의 속을 어지럽힌 다음
적당한 직업을 고르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몇명이나 이런식으로 꼬득였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들은 오로지 자신의 실적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마 전부는 아니지만 도훈은 실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류 일것이다.
"흠.. 그렇다면 여기는 어떨까요?"
"여기는?"
현주는 팜플렛을 보자마자 눈이 크게 떠졌다. 그곳은 구직실패자들을 처리하는 기관이었다.
대부분의 구직실패자들이 꺼리는곳이었다. 현주는 처음에는 거절할까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동했다.
"이곳은.."
"아 그런 표정짓지 마세요. 생각보다 나쁜곳이 아닙니다. 일단 저희 솔루션에서 제공하는 업체중에 최고로 복지도 좋고,
무엇보다 이게 좋거든요."
도훈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제가 잘 할수 있을까요?"
"그럼요. 구직실패자들을 갱생시키면서 보람도 느끼실거에요."
"그럼..좋아요.."
"오 좋아요. 그럼 일단 여기에 사인만 하시면 며칠뒤에 저희 솔루션측에서 연락이 갈겁니다. 그때 까지 마음편히 기다려주세요."
현주가 사인을 하자 모든것이 속전속결로 진행됬다.
도훈에게 연락이 온 건 일주일 뒤였다.
+ + +
도훈은 빨간색 경차를 타고 현주를 데리러 왔다.
"현주씨 오랜만이네요? 그 동안 잘지내셨나요?"
"네.. 덕분에요."
"하하 조금 긴장하셨네요. 커피 사왔으니까 좀 드시고 긴장 좀 푸세요."
"네.. 감사합니다."
도훈을 운전하면서 그곳이 얼마나 좋은곳인지 조잘조잘 떠들었다.
아마 현주가 마음을 바꿀까 조마조마 할것이다.
꼬박 2시간을 내리 달리자, 기관의 모습이 들어왔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덩그러니 삭막한 시멘트 건물만 있었다. 현주는 건물의 모습을 보자 오한이 들었다.
괜한 선택을 한것이 아닐까 후회하는 마음도 일었다. 하지만 일단 부딪혀보자라는게
현주의 인생관이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차에서 내렸다.
+ + +
건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쇠창살 넘어로 일열로 줄을서서 배식을 받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저분들이 모두.."
"네.. 쓰리아웃.. 전부 처리 대상이에요. 밥버러지 들이죠. 신경쓰지마세요."
현주는 순간 욕지기가 올라왔다. 전부 머리를 빡빡 밀고 있었다. 여자, 남자, 늙은사람, 젊은사람 할 것없이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죄수복 같았다.
도훈의 빠른걸음을 따라잡자, 도훈이 또 조잘조잘 현주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현주씨 업무는 간단해요. 그냥 업무를 수행하고 상급기관에 보고하는겁니다.
아마 하루 12시간을 모니터링 상태에 놓여지게 될것이구요."
"모니터링이요? 그뿐인가요?"
"네 그뿐입니다. 참쉽죠?"
도훈은 현주가 지낼방을 안내했다. 간이침대와 화장실, 가구조차 없는 삭막한 방이었다.
도훈은 그런 현주의 마음을 눈치챈듯 말했다.
"이곳이 당분간 현주씨가 지낼방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실적을 올린다면 다른 좋은곳에 경력직으로 취직할 수 있을테니 힘내세요."
"네..감사합니다.."
도훈은 그렇게 방을 나온 다음 다른곳으로 현주를 안내했다. 그곳은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앞에 위치한 거대한 모니터를 제외하면..
현주 또래의 여자가 유심히 거대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왠지 모르게 눈밑이 그늘져보였다.
오랫동안 커다란 모니터를 응시했기 때문일까? 허리도 약간 굽어져있다.
"안녕하세요. 나리씨 오랜만이네요. 업무 적응은 잘되가요?"
나리는 그런 도훈을 보고 꺼림직한 웃음을 내비치며 말했다.
"네.. 덕분에요. 이 보다 편한 일도 없네요. 버튼만 누르면 모든게 해결되니..헤헤헤헤.."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무심히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일단 현주씨 오늘 푹 쉬시구요. 내일부터 당장 나리씨하고 교대로 일을 하게 될겁니다.
너무 간단한 일이라서, 업무인계조차 필요 없거든요. 그냥 모니터의 지시대로 행동하시면 됩니다."
도훈은 기분좋게 말했다.
+ + +
도훈이 돌아가고 나서 나리하고 얘기를 나눌까 싶어, 그곳앞을 서성거렸지만,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현주는 긴복도를 빠져나와 1층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구내식당은 횡했다. 나리 하고 현주 말고는 이곳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듯 싶었다.
"하긴.. 요즘 모든게 기계로 작업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이건 심한데.."
맛없어 보이는 음식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은채 다시 방으로 향했다.
현주는 간이 침대에 누워 앞으로 있을 업무가 뭘지 상상하면서 깜빡 잠이 들었다.
현주를 깨운건 나리였다.
"이봐요.. 현주씨라고 했나요.... 일어나요.... 이제 당신 차례에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요? 제가 무슨일을 하면 되죠?"
현주는 잠결에 대답했다.
"일단 따라오세요..."
현주는 기관에서 준비한 옷을 입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아까보았던 거대한 9개의 판넬로 이루어진 모니터가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모두 하릴 없이 시간을 때우는 구직실패자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 한방에 6명씩 지내고 있었다.
"간단히 설명만하죠.."
"아마 저들중 한 명이 범죄를 일으킬거에요.. 강간, 살인, 그리고... 자살시도.. 왜냐하면
30분에 한번씩 방안에서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요..잠도 자지 못하고.. 서서히 모두 반쯤 미친 상태가 되죠.."
"눈치채셨겠지만.. 과거와 달리 .. 모두 판결 없이 즉각사형이 가능한... 행위들이에요."
"그때 모니터에 표시되는 수감자 번호를 누르고 버튼을 누르면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팔찌에서 독극물이 주입될거에요."
"설마...."
"네.. 이 기관의 목적이죠. 아마 외부에 들키지만 않는다면.. 합법적으로 사람을 처리하기 위한 시설이죠...
아니 모두 알고있지만.. 쉬쉬하고 있는걸 거에요. 우리에게 대신 책임을 떠넘기는거죠..우리는 책임값을 돈으로 환전 받고 완벽하지 않나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기계는 인간을 죽이지 못하죠. 하지만 인간이 버튼을 누르다면? 팡.. 완벽하죠?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죠. 전 이렇게 효율적인 시스템을 본적이 없어요. 아무튼 첫날은 힘들겠지만 적응할거에요. 힘내요."
나리는 무덤덤히 현주에게 버튼을 주고 하품을 하며 사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