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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비펌] '지구 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일까요?
게시물ID : humorbest_1381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손예진
추천 : 79
조회수 : 3388회
댓글수 : 2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6/07/22 13:02:48
원본글 작성시간 : 2006/07/22 11:22:02
 

1. 1983

도깨비 뉴스 독자 여러분들 가운데서 이 사진이 무슨 사진인지 정확히 아시는 분이 있으신지요? 도깨비 뉴스의 운영진이 아는 것은 오른쪽 사람이 차범근 선수라는 것, 사진이 촬영된 때가 1983년이라는 것 뿐입니다. 1983년 차범근 선수가 독일에서 활약할 당시의 사진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사진에 나타난 차범근 선수의 자세와 공의 위치로 봐서 그가 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으로 보입니다만 정확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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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번 유니폼을 입고 축구화를 들고 서 있는 차범근 선수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 역시 사진에서 보이는 BAYER 등의 정보 외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도깨비 뉴스는 지난 13일 독일의 문호(文豪) 에크하르트 헨샤이트의 '차범근 찬가'를 소개했습니다만…,
독일에서 독일의 대표적인 문인이 그를 찬미하는 찬가를 쓸 만큼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던 차범근선수지만 국내에서는 의외로 그가 독일에서 활약할 당시의 자료가 없었습니다.

지금 해외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들, 박지성 박찬호 박세리 이승엽…, 이런 선수들에 관한 자료는 넘쳐 나지만 차범근 선수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었습니다. 도깨비 뉴스는 동아일보 자료실의 도움으로 차범근 선수가 독일에서 활약할 당시의 자료를 모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아쉽게도 사진자료의 정확한, 자세한 정보는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표시된 정보 외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아시는 독자께서는 댓글을 통해 사진정보를 올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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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프랑크푸르트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차범근 선수가 23일 프랑크푸르트 시청앞에서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보루시아 뮌헨 글라드바하 팀을 격파하고 쟁취한 uefa컵을 보여주고 있다. 합동통신 19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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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80 12 23



7 브레멘 테스트 1989.1.7



8 프랑크푸르트팀의 감독 부르만씨에게 주의 깊게 조언을 듣고 있는 차범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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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따금 아들 두리군과 축구 구경을 즐기는 차범근선수. 1983 03 25



14 차범근선수와 부인 오은미씨가 아들 딸들과 함께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1983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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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아들 두리군과 서독 휠스에서 벌어진 대우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차범근. 그 옆이 장운수감독.
1983 03 15



21 1980 11 03 ap


차범근 선수의 독일에서의 활약상과 독일인들의 차범근 선수에 대한 존경심, 경외감…, 쉽게 말해서 그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랑과 독일에서의 그의 인기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김화성 축구 전문 대기자의 기사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차범근은 70,80년대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다. 지금의 박지성은 감히 차범근 옆에 갈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당시 차범근은 유럽의 지네딘 지단이었고 티에리 앙리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런 그를 일주일에 한번씩 녹화 중계되는 분데스리가 경기를 통해 흑백 텔레비젼으로 겨우 볼 수 있었다. 만약 그 당시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실시간 중계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면….

차범근의 팬들은 아직까지도 독일 특히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 많다. 현대 독일문학에서 가장 비중 있는 작가의 하나인 에크하르트 헨샤이트(65)도 그중 하나다. 그는 시, 소설, 희곡 뿐 아니라 수필, 풍자, 동화, 넌센스 문학, 문학비평, 음악비평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 ‘괴테와 그의 여인들’, ‘오해의 문화사’, ‘헬무트 콜 전기’ 등 수십 편의 작품을 썼다.

열광적인 프랑크푸르트 축구 팬으로서 ‘아인트라흐트’, ‘축구 퀴즈’, ‘제프 헤르베르거와 보낸 한 때’, ‘축구 드라마’, ‘축구공이 웃는다’ 등의 축구 관련 책을 쓰기도 했다. 당연히 차붐에 관한 글도 있다. 단순한 글이 아니라 신이나 영웅을 찬양하는 독일 전통시 ‘찬가(Hymne)형식’을 빌어 1979년 ‘차범근 찬가(Hymne auf Bum Kun Cha·별표 참조)를 썼다. 가히 차범근을 신격화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인이지만 영혼은 독일인에 가깝고, 골문으로 돌진하는 힘이나 개인기, 빼어난 공간 확보능력도 독일인과 비슷하나니…’같은 구절은 독일인들의 축구에 대한 오만함을 느낄 수 있다. ‘차범근은 독일이 알고, 아시아는 알고, 세계는 알지만 (당시 쾰른에 있던 일본 스타)오쿠데라는 누가 알겠느냐’는 데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독일에서 차범근은 ‘갈색 폭격기’나 ‘차 붐’으로 불렸다. '붐(BUM)'은 독일어로 “쿵!” “쾅!” 이라는 뜻.

차범근은 79년 8월 독일 프랑크푸르트구단에 입단하자마자 펄펄 날았다. 세 번째 경기인 슈투트가르트 전에서 헤딩으로 첫 골을 넣더니 그 다음 네 번째, 다섯 번째 경기에서도 대포알 같은 슛으로 골 망을 흔들었다.

3게임 연속 골. 그것은 경악이었다. 대지진이었다. 독일 축구전문잡지 키커는 ‘차 붐(CHA BUM!)'이라는 한 단어로 그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그의 발은 대포였다. 펑! 펑! 펑! 끊임없이 슛을 쏘아댔다. 그의 발은 전폭기였고 폭주기관차였다. 볼이 닿기만 하면 여지없이 폭탄세례를 퍼부었다.

10년 동안 308경기 98골. 독일인들은 차범근을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금세 푹 빠져버렸다. 그를 사랑했다. 아니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사랑은 가슴속에 숯불처럼 빨갛게 살아있다.


1981년 3월 UEFA 컵 결승 2차전 독일 프랑크푸르트-보루시아MG 경기.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의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했다. 보루시아 MG로선 두말할 것 없이 차범근이 경계대상 1호. 만약 그를 막을 수만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차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오른쪽을 휘젓고 다니도록 놔두면 경기는 하나마나였다.

마테우스(45)가 전담마크맨으로 나섰다. 마테우스는 당시 떠오르는 ‘축구천재’. 무서울 것 없는 나이 스물. 차범근은 스물여덟. 하지만 차범근은 마테우스를 간단하게 제치고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1-0 승리로 프랑크푸르트 창단 첫 우승. 당시 UEFA컵 우승은 지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나 같았다. 2006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FC바르셀로나가 당시엔 프랑크푸르트였던 것이다.

마테우스는 “난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붐은 현재 세계 최고의 골잡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마테우스가 누군가. 그는 축구황제 베켄바우어를 잇는 독일축구의 줄기세포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20년에 걸쳐 ‘게르만의 혼’으로 불리며 월드컵에만 5번(25경기 출장)이나 나갔을 정도다.

한편 UEFA컵 우승 얼마 후 서독 월드컵대표팀 데르발 감독은 차범근에게 정중히 귀화를 제의 했다. 하지만 차범근은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단박에 거절했다. 그의 조국은 ‘대~한민국’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83년 차범근이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됐을 때 프랑크푸르트 팬들은 엉엉 울었다. 하지만 레버쿠젠 팬들은 발을 구르며 그를 맞이했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해결사가 오신 것이다. 차범근은 레버쿠젠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차범근은 88년 UEFA컵 스페인 에스파뇰과의 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다. 2-3으로 끌려가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통쾌한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결국 레버쿠젠은 승부차기로 창단 첫 유럽 컵을 품에 안았다.

서독 언론들은 차범근을 저마다 ‘지구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칭송했다. 키커지는 ‘차붐, 팀 창단후 첫 UEFA컵 우승을 두 번이나 이끌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영웅이자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타’라고 말했다.

2006년 한국월드컵대표팀이 레버쿠젠의 바이이레나에서 훈련할 때 에른스트 퀴흘러 시장은 “차붐으로 인연을 맺은 이 도시에 한국대표팀이 훈련을 하게 돼 기쁘다. 차붐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레버쿠젠에서 무려 52골이나 터트렸다. 차붐의 홈구장에 온 태극전사들을 뜨겁게 환영한다” 며 기뻐했다.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있던 차범근. 만약 그 같은 골잡이가 현재 한국대표팀에 있었더라면 독일월드컵에서 이변의 주인공은 단연 한국이었을 것이다. ’불의 전차‘ 차범근. 이제 감독으로서 팬들의 가슴을 ’쿵 쾅‘거리게 해야 할 때다. 차붐, 제발 팬들을 감동 먹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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