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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죽음을 보는 자
게시물ID : panic_955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라
추천 : 15
조회수 : 219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7/09/23 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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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옆에 서 있는 여자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검고 긴 생머리에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저.흐..흠"

현수는 말을 하려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얼마 후에 당신은 죽을거에요. 몸 조심 하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맴돌자.. 

목소리가 목구멍 바로 밑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가 버렸다.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여자는 현수의 경고를 듣지 못한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 -


현수는 어릴때부터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했을때는 8살 무렵 이었다.

어느날 그림자가 엄마를 따라 거실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현수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만, 엄마는 왜 그러냐며 다그칠뿐 현수가 본것을

엄마는 보지 못했다.


결국 그림자와는 이주동안 기묘한 동거를 했는데,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것 마냥 

현관 앞에 주로 앉아 있었다. 


그것이 눈에 거슬렸지만,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는것 같아 보여서 언젠가 부터

그림자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림자가 현수를 보면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날은 할머니가 오는날이었다. 

하나뿐인 손주를 보기 위해 설레임을 가득안고 4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현수의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왜 하필 오늘 그림자는 춤을 추는것일까? 

의문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혹시 할머니가 오는 것을 알고 있는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의문들이 채가시기도 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현수야.. 오늘 엄마랑 아빠가 조금 늦을거 같으니까..오늘만 알아서 저녁 챙겨 먹어 알았지?"

엄마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어렸지만 무슨일이 생겼다는걸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날 할머니는 병원에서 사경을 해매고 있었다.

큰 사고 였다. 대형버스끼리 추돌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만 

할머니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절벽 아래로 추락해버렸다.

결국 할머니는 현수의 얼굴을 보지 못한채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의사에게 사망선고를 받은 시각 그림자는 현수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져 버렸다.

마치 또 보자는듯이...

- - -

현수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기에는 너무 젊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만 본능적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현수가 시도를 하지 않았던건 아니다. 여러번 죽음의 그림자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구하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때마다 그림자는 현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손짓을 볼때마다 패배감에 젖어 아무것도 할 수 자신이 미워졌다.

그 덕분에 여러 무술을 배우며 그 패배감을 씻어내려 했다.

현수 그만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해보자..."

굳은 결의로 붉게 타오르는 두 눈이 현수를 노려보고 있다.

현수는 자신의 두뺨을 힘껏 때렸다.


- - - 

다음날 현수는 검은색 모자를 푹눌러쓰고 아파트의 정문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아침 일찍 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현수의 시선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검은색 짧은 치마와 흰색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현수의 눈에 들어왔다.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여자였다.

현수는 여자를 놓칠세라 황급하게 뒤를 밟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누군가를 미행하는건 죄책감이

들었지만,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앞뒤 가릴것이 없었다.

여자는 XX번 버스를 타고나서 열 두 정거장이 지난후에 내렸다. 

그리고 곧 번화가로 향하더니 화장품가게에 들어섰다.

현수는 화장품가게의 위치를 확인하고나서 맞은편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이곳에 앉아 하루종일 여자를 지켜볼 예정이었다.

여자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진열대를 정리하고, 가끔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고객을 상대하느라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현수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자의 하루를 두눈에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담으려 애썼다.

오후 1시가 넘어서자 대부분의 고객이 빠져나가 여자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화장품 가게를 서성거리는게 눈에 들어왔다.

현수처럼 모자를 푹눌러쓰고,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만약 그곳에 앉아 여자를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현수는 수상한 느낌을 받지 못했을것이다. 남자는 정확히 30분 간격으로

화장품가게 주위를 서성이다가 돌아갔다. 

오후 5시 다시 가게는 바쁘게 돌아갔다. 여자는 주위를 신경쓰지 못하고 

고객을 상대하느라 분주했다. 수상한 남자는 얼마간 보이지 않다가 해가 넘어갈때쯤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곧 아침처럼 똑같은 복장을 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남자는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현수는 황급히 카페를 빠져나와 남자를 미행했다.

이상한 모습이 연출됐다. 남자가 여자를 미행하고 현수는 남자를 미행했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 같았다. 여자가 아파트에 다다르자 남자는 정문에 우두커니 서서

그녀가 들어가는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곧 고개를 위로 치켜들더니 층수를 헤아리는것 처럼 고개를 반복적으로 끄덕거렸다.

이내 여자가 사는곳으로 보이는 층에 불이 켜지자 남자는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사라졌다.

- - -

현수는 아침해가 밝자마자  오늘도 아파트 정문에서 여자를 기다렸다. 곧 그녀가 나올시간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시간,2시간이 빠르게 흘렀지만 그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현수의 마음에 불안감이 싹트였다. 혹시 오늘이 쉬는날일까? 만약 아니라면.. 

현수는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가 사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

오늘 따라 엘리베이터가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하게 움직이는것 처럼 느껴졌다. 

'띵'하고 도착음이 울리자 현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그녀가 사는 곳으로 뛰어갔다.

'1010호.,..1011호...1012호..여긴가...'

현수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채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원래대로라면 잠겨있어야할

현관문이 스르르 하고 열렸다. 

집안은 어두웠다. 이내 비릿한 피냄새가 현수의 코를 찔렀다.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는 황급히 핸드폰을 들고 119버튼을 눌렀다. 

그때 누군가 현수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려쳤다. 현수는 강한 통증 느꼈지만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여자를 미행하던 남자가 분노어린시선으로 팔뚝만한 각목을 들고 현수를 노려보고 있다.

"퉷... 망할... ..사내새끼가 있었군"

 그때 남자의 뒤에서 그림자가 춤을 추는것이 보였다.

'늦은건가...'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남자는 현수를 향해 각목을 휘둘렀다. 

"이새끼 너도 죽어!"

남자가 현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현수는 가뿐히 몸을 피했다. 그러자 남자는 이내 각목을 한쪽으로 

내던지더니 품속에 날이 예리해보이는 칼을 꺼내들었다.

"역시 이게 제일 좋아.."

칼은 이미 누군가를 찌른듯 피가 묻어 있었다. 

이내 격한 고통이 밀려왔다.

피할겨를도 없이 남자는 현수의 허리춤에 칼을 꽂아 넣었다.

현수의 정신이 아득해 지려고 할 때  경찰 두명과 구급대원이 현관문에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꼬..꼼짝마.. 두 사람다 가민있어.."

현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한쪽무릎을 꿇었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경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타타타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쓰러져가는것을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현수는 정신을 잃었다.


================

에필로그 

현수가 정신을 차린건 사건이 일어나고 3일후 였다. 

남자는 테이저건을 맞고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원래 부터 심장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나른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을때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하루 빨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현수는 해맑게 웃었다.

"다행이에요.. 이번엔 구할 수 있어서.."

"네? 그게 무슨뜻..인지.."

"아.. 헛소리니까... 신경쓰지마세요."

여자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구급대원님이 말씀하셨어요. 현수씨께서.. 119에 전화를 걸었는데.. 대화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경찰과 함께 출동했다고..

그리고 좀만 늦었다면.. 제 목숨이 위험할뻔했다는것도.."

"그래도 지금은 살아계시잖아요. 다행아닌가요?"

"정말요.."

여자와 현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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