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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느 가을날은 변하지 않는다.
게시물ID : humorbest_13820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29
조회수 : 1654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02/14 23:24:25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2/14 0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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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연기를 파 하고 내뱉었다.

연기는 짙게 하늘을 덮었지만

이내 흩어졌다.

파란 하늘은 변함 없다.


동준은 그 모습을 보며 그에게 다가갔다.

들고 있는 야구공과 배트는 대충 널부러 놓았다.


"아저씨, 뭐하세요?"


동준은 순진한 얼굴로 물어본다.

공원 벤치에서 담배만 피워대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진 것일까.


"그냥. 하늘을 보고 있었어."


남자는 담배를 지져 껐다.


"그런게 재밌어요?"

"아니. 재밌진 않아."

"그럼 왜 보는 거에요?"

"하늘이 파래서."


동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보며 조금 웃었다.


"너는 뭐하는거니?"

"야구연습이요! 내일 훈이랑 축구하기러 했거든요!"

"훈이라."

"아저씨는 훈이 아세요?"

"아니."

"하지만 좋은 별명인 것 같네."

"그렇죠? 부르기도 쉽고."


둘은 서로를 마주보다 이내 웃었다.


"아저씨, 야구는 잘하세요?"

"그런거 당연히 못하지."

"어른이면서."

"어른이랑 관계없단다."


동준은 눈을 반짝인다.


"전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른이 되면 듬직하고, 또 멋진 사람이 된다면서요?"

"이 아저씨가 그렇게 보이니?"

"적어도 어린이보단 세잖아요."


남자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건.. 모르지."


동준은 놀란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린애보다도 약한 어른이 있어요?"

"원래 어른이 되면 세지는거 아니었나요?"

"나무도 나이를 먹으면 두꺼워지잖아요."


"나무라."

"그래. 어른이 되면 두꺼워지지."

"하지만 모두가 떡갈나무는 아니야."

"누군가는 개나리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대나무일 수도 있어."

"나는 어떤 나무였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저는 떡갈나무가 될꺼에요!"

"튼튼하고 단단하게."

"훈이도 그랬어요! 전 참 든든하다구요!"

"흐흐. 이정도면 강한 떡갈나무가 될 수 있겠죠?"

"될 수 있길 바랄께."

"될꺼에요!"


동준은 자신감있게 말했다.

그는 조금 고개를 숙였다.


"동준아."

"네?"

"즐겁니?"

"당연하죠!"

"저에겐 훈이가 있고, 엄마가 있고, 학교가 있고."

"매일매일 즐거운 하루가 있는 걸요!"

"고민 같은거나 힘들 때도 있지 않아?"

"그럴때도 있지만요.."


하늘은 파랗게, 선명했다.

그는 하늘을 응시했다.


"그럴때는."

"하늘을 바라보렴."

"하늘요?"

"하늘은 언제나 널 봐주니까."

"그곳은 넓어서 모두들 있으니까."

"하늘에다 말해보는거야."

"힘든 일, 슬픈 일. 모두모두."

"나중에 한번 해볼께요!"

"그래."


그는 웃었다.

동준이의 머리를 쓰다듬고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가시게요?"

"어."

"잠깐 한번만 같이 야구하지 않을래요?"

"뭐.. 그럴까."


동준은 야구공을 집었다.

던지는 편이 자신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배트를 집었다.

그는 몇번 휘둘러보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저씨 던질께요!"

"어."


공은 깔끔한 포물선을 그렸다.

그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스트라이크였다.

그는 공을 집어 동준에게 던졌다.


"잘 던지네."

"헤헤. 훈이도 그랬어요."

"그렇구나."


동준이는 공을 매만졌다.

던지지도 못하는 포크볼을 쥐려고 노력했다.


"동준아."

"네?"

"언제나 즐겁게 지내."

"친구랑도, 가족이랑도 언제나 사이좋게 지내고."

"학교에도 잘 다니고."

"힘들땐 하늘을 바라보고."

"언제나 그렇다면 분명."

"멋진 떡갈나무가 될 수 있을꺼야."

"네!"


그도, 동준도 웃었다.

동준이 공을 던졌다.

깔끔한 포물선을 그렸다.


깡 소리와 함께 공은 멀리 나아갔다.

쭉 뻗어나가는 공을 따라 동준은 달렸다.

동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새파랗구나.'

동준은 처음으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리, 저 멀리 공은 떨어졌다.

동준이은 헥헥 거리며 공을 집었다.

대단한 아저씨다.

동준은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저씨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아저씨! 이름이.."


동준은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벤치에 걸쳐있는 야구배트만이 있었다.




"벌써 시간이 된건가."


그는 벤치에 앉았다.

동준은 두리번거리다 공원에서 떠나갔다.

더이상 그의 모습은 동준에게 보이지 않는다.


"정말."

"바보같긴."


그는 조용히 웃었다.

그는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이젠 한개비 남았다.


그는 생각했다.

마지막 담배를 쥐고선.


이제 동준은 어떻게 될까.

잘해낼 수 있을까.

모른다.

하지만 잘 해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동준의 가장 큰 절친이었던 훈이는.


훈이.

그러니까 종훈은.

내일 동준이랑 시덥잖은 일로 싸우고 집에 돌아가던 길.

차에 치인다.

산산조각나 부서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하늘로 오게 되었다.

원래 살만큼의 시간을 하늘에서 보내야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종훈은 70년을 하늘에서 보내게 된다.


하늘에선 지상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잊었다고 한탄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자신의 아내가 재혼했다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꼬마 아이는 자신의 가족이 슬피 우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울었다.


종훈은 지상을 내려다 보았다.

가족은 종훈을 잃었지만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었다.

마음 한켠이 아려왔지만 종훈은 그 모습에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준은 아니었다.

멈춰버렸다.

동준은 더이상 행복하게 웃지 않았고

매일 밤 울었다.

배트를 만지며 종훈과 싸운 일을 자책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기만 했다.


종훈은 그 모습이 너무나 아팠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더욱 아팠다.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

동준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친구 하나 없고 음침한 아이가 되었다.

아니 음침한 아이를 연기했다.

벽을 세웠다.

다신 종훈과 같은 친구를 만들지 않기 위해.

결국에 잃어버린다는 것을.

결국엔 죽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동준은 모두를 거절했다.


동준은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사장님에게 욕을 먹고

손님에게 욕을 먹었다.

누군가 위로해주면 도망갔고

혼자 고통을 안고 살았다.

종훈은 그 모습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동준은 중얼거렸다.

미안하다고.

이미 15년전에 죽은 종훈에게.

하늘에 있는 그에게.

종훈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지만.


동준은 결국 일을 포기했다.

방에 틀어박혀 네모난 화면만을 바라봤다.

결코 밖을 나가는 일 없이

쓸모 없는 가십거리만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인지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몇년이 흘렀을까.

종훈은 자신이 34살이 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물론 살아있었다면.

동준은 그때에도 박혀있기만 했다.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이라고 하기엔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종훈의 기일이니까.


동준이 방을 나왔다.

종훈은 그 모습에 내심 기뻤다.

다시 세상을 살아가려는 것이구나.

다시 밝은 빛 아래에 살아가려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동준은 엘리베이터에 탔고

20층을 눌렀다.


팅하고 소리가 퍼졌고

그곳은 옥상이었다.


종훈은 그제서야

동준이 하려는 짓을 깨달았다.


종훈은 소리쳤다.

하지말라고.

살아달라고.

결코 죽어서는 안된다고.

그 목소리가 닿을 일은 없겠지만.


동준은 하늘을 바라봤다.

처음이었다.

종훈은 놀라 굳어버렸다.

동준은 말했다.


"이렇게 파랬구나."


그리고 동준은 떨어졌다.


종훈은 하늘의 관리자에게 찾아갔다.

관리자는 동준이 하늘에 올 수 없다고 말했다.

자살했기 때문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종훈은 그 날부터 지상을 보지 않았다.

다만 흐리멍텅한 눈으로 하늘만 바라봤다.

새파란 하늘을.


이내 관리자는 종훈을 찾아오게 된다.

그의 시간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 날, 그 장면과 함께.


그리고 그는 종훈에게 담배 세 갑을 줬다.

한 갑에 열두개피 들어있는.


그것은 종훈의 남은 수명이었다.

한 개피를 피우면 한 시간 지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현재, 미래 상관 없이.

단, 자신을 구해서는 안된다.


그 조건을 종훈은 받아들였다.

자신의 시간을 바쳐서 단 한명을 구하기 위해.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담배 한 개피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실패를 거듭했다.

종훈을 잊으라고 해도 동준은 듣지 않았다.

동준을 그날 못나오게 해봤지만 무리였다.

동준의 게임 속 친구가 되어 설득해봤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어떻게 해서도 동준의 자살을 막을 수 없었다.


동준은 떡갈나무가 아니다.

그는 너무나 연약하다.

무른 나무다.

인생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꺾여버리는.


그래도 종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1,2년이 흐르고

15,16년이 흐르고

30년이 흘러도.


그리고 지금.

한 개피만이 남았다.

35년의 시간은

35시간이 되어 흩어졌다.


마지막 1년.

종훈은 생각했다.


돌연 바람이 불었다.

조금 선선한 바람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주황빛으로 물드는 하늘이 있었다.


종훈은 마지막 남은 담배 한개피에 불을 붙였다.

1년이나 재시작이 아닌

1시간을 선택했다.


이젠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하늘과 함께라면 동준도 괜찮을 것 이다.

종훈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럼 이제 종훈의 역할은 끝이다.


종훈은 연기를 파 하고 내뱉었다.

연기는 짙게 하늘을 덮었지만

이내 흩어졌다.

붉은 하늘은 변함 없다.


그럼 됐다.

변함없다면 됐다.


종훈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지는 하늘을.

마지막으로 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족하다.

모든 실패의 보상으론 충분하다.


종훈은 조금 웃었다.

오랜만에, 순수하게 행복해서 웃었다.

마치 70년전으로 돌아간 듯.

동준과 함께 웃던 그때로 돌아간 듯.


연기는 피어올랐다.

저 하늘을 향해

연기는 이내 흩어졌다.


어느 가을날 오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슬퍼한다.

변함없이.


아무도 없는 조용한 벤치도 변함없고

시간도 변함없이 흘러갈 것이다.

물론 하늘도 변함 없이 파랄것이다.


그래도 조그마한 변화가 있다면

누군가는 그럼에도 행복해진다는 것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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