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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추석이면 아빠가 보고 싶습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16414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은사람될게
추천 : 10
조회수 : 28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10/07 19:25:33
* 개인의 답답함과 푸념과 한(?)과 그리움이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


매년 추석이면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추석 하루 전날 돌아가시어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황급히 발인을 했더랬습니다.
(듣기로는 자기 조상신 모셔야 하는데 남의 제사상에 가면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저희집은 흔하게 볼 수 있는
IMF 이후 사업이 망해서 온가족이 불화가 생겼던 그런 집이었습니다.
(원래는 동네에서 다 알만큼 잘 살았지만, 망한 뒤 그게 무슨 소용)

엄마는 어릴때부터 유복하게 자라서 고생모르고 살던터라
집에 위기가 닥치니 원래보다도 더 밖으로 나돌던 자유로운 영혼이셨고
아빠는 그런 엄마가 딱해서 어쩔줄 모르시는 분이었고 자식보다는 그런 엄마가 먼저였죠...
IMF이후 두분 다 여러관점에서 제게는 관심이 없으셨고
저는 커가며 자존심 세고 그럭저럭 자기 앞가림 똑부러지게 살지만 
부모님이나 집에는 유대감이 없는 그런 자식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집에 불행한 일들이 많았고 졸업도 하기 전에 알바자리로 내몰렸습니다.
남의 집 빈방에 얹혀살면서 패스트푸드점 마감 알바를 하며 낮 4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해서 돈을 모아 대학을 입학했고 
꾸역꾸역 장학금도 타고 이것저것 하여 이제 대학원도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의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하루 한끼도 못먹고 핸드폰비도 못내고 다니던 대학시절..
그리고 대학을 갓 졸업한 그 때, 나도 너무 힘들었을 때
임종을 못지킨 것이 그런 것으로 합리화 할 수 없는데... 부끄러웠어요.. 
IMF이후 아빠의 좋은 모습을 볼 일은 사실 없었어요.. 
하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좋은 기억만 생각나요.
아빠가 했던 모진 일들은 기억이 안납니다. 

아빠가 보고싶어요. 그리워요 아빠... 

20살에 집 나오고 몇년만에 어딘지도 모르던 집을.. 명절에 갔을 때 
이미 아빠가 건강이 안좋아진 것을 알고 난 뒤에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내가 모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달라... 
몇 번이나 아빠한테 다짐을 받아놨는데 
어쩐지 토익시험 보러가는 그 새벽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시험도 잘 못치겠었는데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소식... 아직도 어제와 같네요.

아빠에게 오랫만에 말을 건네봐요...
아빠,
엄마는....
아직도 아빠가 데리고 살던 그때와 같이 철이 없고 자기 멋대로 살고 있고 
자식을 악세서리 쯤으로 여기고...ATM같이 여기고... 뭐 등등 아직도 틈만나면 제 마음에 난도질 중이고
사실 저도 포기했어요... 납골당에 데리고 간다고 약속했는데 한번을 못갔네요 미안해요..

한 집안의 가장은 하늘의 지붕과 같다고 하는데
그 지붕이 없이 자라느라 지난 10년이 매일이 눈물이었지만
아빠 원망 안해요. 한번도 한적 없어요.

남들 다 행복할 줄 알았던, 행복한 줄 알았던 약 1년간의 결혼생활은 지옥이었어요.
시할머니 시외삼촌 시어머니 말도 안되는 시아버지에 큰 시아버지 작은시아버지 염치없는 시동생내외, 줄줄이.... 시집살이 시키다못해 
SNS안팎으로 유명한 허울좋은 피부과 의사였지만 집에서는 늘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던 놈을 만나
뇌진탕에 목조른 손자국을 몇달을 달고 출근을 했었죠.... 
그러고도 그 놈은 잘 살아요. 돈도 많이 벌고 sns에서 스타처럼 떠받들어지며 잘 살아요. 
제가 정신병이 있어서 자기가 때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말을 그 주변사람들은 법처럼 믿더라구요...
남들은 도망갈 친정이라도 있는데 전 어디 갈데가 없었어요... 
경찰도 돈없고 빽없는 여자는 남편이 때려도 감사합니다 하고 살것이지 맞는 여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지옥같은 1년... 
헛살지는 않았는지, 이곳저곳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서 소송도 했고 결국 이겼고 
그 지옥을 이 악물고 견뎠고 국가고시를 통과했고 이제 사람같이 살아요. 
몇달전에는 다시 좋은 사람도 생겼어요. 저한테 과분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아직 사람이 무서워요.

추석이에요 아빠. 
기일에도.. 생일에도 못가서 미안해요. 
대신 아프고 병든 사람들 곁에서 아빠를 돌보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곳은... 경치는 좋은데 ...
해가 바뀌면 빨리 가기 편하고 볕좋은 곳으로 아빠 계신 곳을 옮겨야겠어요
거긴 너무 멀고 혼자 갈 수가 없는 곳이라 늘 마음이 안좋아요..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 될게요.
내 걱정은 마세요.
나는 외롭지 않게 잘 지내고 있어요. 


일하는 중에 밥시간인데 입맛은 없고 
괜히 아빠 생각이 나는데 딱히 들어줄 사람은 없고 말은 하고 싶고 해서 .. 찾아왔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장기입원하시는 어르신들은 명절마다 목을 빼고 가족들만 기다리는데 오지도 않으시고..
돌아가실때쯤 의식도 없을 때쯤에나 나타나서 한시간이라도 빨리 돌아가시게 해달라고 ... 그런 말씀 마세요.
추석에 나타나서 중환자실 앞에서 대체 언제돌아가시냐고 하는 말씀들 정말 가슴아프고 화가 납니다.
오랜 투병에 지치신 가족분들 사정은 알지만 돌아가시는 순간만에라도 안타까운 마음 1이라도 가지셨으면 해요.. 사람이 죽는데...
병원은 고려장하는 곳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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