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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소설] 쾌남 봉창! #9
게시물ID : history_289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괴발살!
추천 : 0
조회수 : 4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08 23: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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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임시경비본부


걍 하던 얘기 계속할게.

오늘도 취조실이 아주 조용해. 얼마 전에 내가 시끄럽다고 항의했더니 옆방에서 고문 받던 사람들을 아예 딴 곳으로 보내버렸나봐.

하하. 내가 좀 대단한 수감자가 맞긴 하나봐?

암. 그렇고말고. 난 대역죄인 이잖아.

여하튼 오늘은 검사하고 서기들이 모여서 내가 진술한 걸 하나하나 맞춰보는 눈치야.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하루 종일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어. 잘 됐지 뭐.

취조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내 진술 내용이 가끔씩 안 맞는 부분도 있는데 서기가 잘못 적은 부분을 지적해 주면 아주 좋아하더라고.


-야. 이거 그 시간에 한 거 맞아?

-아. 맞다니까. 어. 근데 요건 좀 잘못 적은 것 같은데?

-어디어디? 어느 부분이 틀린데?

-요기, 요기말야.

종일 묶인 채로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뻑하면 맞거나 매달리는 것보다 훨씬 낫지 뭐.

아. 그러고 보니 거꾸로 매달려서 코로 물도 제법 마셨구나...


아무튼.

교토에서 그렇게 밤을 샜는데 동틀 무렵이 되니까 거의 사람이 없더라고.

그 덕에 우리 일행 셋은 교토 미쓰비시 은행 앞에 있는 참관석 자리를 미리 차지할 수 있었어. 아무리 대단한 행사라고 해도 해도 뜨기 전에 자리 잡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

살살 날이 밝아오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일찌감치 밥도 먹고 오느라 그랬겠지. 좀 더 있었더니 이번에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경찰이 빽빽하게 파고 들더라고.


-야. 이거 정말 굉장한데. 이렇게 많은 경찰은 첨 봐.

-근데, 경찰이 사람들 가방을 막 뒤지는데?

-그럼. 임금이 온다는데 이 정도 경비는 당연한 거 아냐?

셋 다 뭣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고 있었지.

뭐랄까. 경찰이 우르르 오건 말건 우린 걍 신나있었거든.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임금이 쳐 죽일 놈이라거나 그런 생각은 나나 순평이나 한 적도 없었고, 일본인인 마에다도 그냥 노는 거 좋아하는 공장친구니까 불온사상이니 뭐니 하는 엉뚱한 잣대는 들이대지 않았으면 해.

요새말로 그 뭐냐. 우리 셋은 흔한 구경꾼정도로 해 두자고.


그렇게 사람구경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새 경찰이 우리자리로 다가오더라고.

-주머니.


무슨 말이냐고? 주머니에 있는 거 꺼내보라는 뜻이야.

-죄송하지만,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


그런거 없었어.

그 때 일본경찰은 이런 긴말로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고.

나 때는 조선이고 일본이고 할 것 없이 온통 군인, 경찰 천국이라 민간인들한테 막 함부로 굴었거든. 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쌍욕이 나와. 정말이지 무서워서 피하는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게 맞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일 거야.

하지만 힘없는 일반인이 별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순평이하고 마에다는 주머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어.


-이건 뭐?

-아, 이거요? 조선에 있는 친구가 보낸 편...

뭐라 말도 하기 전에 잽싸게 편지를 뺏는거야.


별거 아냐.

내가 일본에서 고생한다고 조선에 있는 고향친구가 한글하고 한문을 섞어서 내게 보내 준 안부편지라고. 그 친구가 아주 무식하지는 않아서 글은 꽤 잘 썼거든.

단순한 안부편지니까 내용이야 뻔하지. 뭐

-친구야. 요새 좀 어떠냐. 일본도 조선처럼 살기 힘드냐?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일본까지 가서 고생하는 네가 장하다 어쩌구 저쩌구.


근데 내 친구편지를 보자마자 일본 경찰들이 갑자기 난리도 아냐. 아마 내 생각에

는 뭔가 암호 같은 게 아닐까 오해한 듯싶어. 아차, 싶었지.

하지만 이것도 잘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잖아.

어떤 미친 암살자가 한글하고 한문을 섞어서 말야. 나는 일본 천황을 몇 월 며칠

죽일 예정이니까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메모까지 적고 다닐까?

난 처음에 그 정도로 호들갑 떨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어.

별것도 아닐 정도로 정말 아무 일도 아니였거든.


근데 내 생각하고는 달리 경찰이 대답할 시간도 안 줘. 그러더니 다짜고짜 어딘가

로 나를 끌고 가데? 그것도 순전히 나만.

순평이하고 마에다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나만 임시경비본부라는 곳에 끌려갔

어.

-어어. 순평아... 마에다아....

-어어어... 봉창아아.... 어어...


하여간 그 때 서로 어어어,만 하다가 나만 개처럼 끌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도 열이 올라. 그 때 확 천황한테 폭탄을 날릴 걸 그랬나?

임시경비본부에 갔더니 그냥 아수라장이야.

조금만 이상해 보여도 무조건 잡아다가 가두는 거야.

수용소 같은 건 가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수용소가 이런 느낌일거야.


-시끄러!

-닥치지 못해!

-가만히 있으라니까!

가끔씩 뭐라 뭐라 항의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랬다가는 몽둥이 찜질이 아주 그냥 작렬을 해. 그러면 멀쩡했던 사람도 순식간에 오래된 생선처럼 축 늘어져.

그 담엔 뭐 뻔하지. 경찰들이 또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가.


잡힌 이유나, 최소한의 설명은 없었냐고?

정말 부탁인데 그런 민주주의적인 상상은 제발 안 해줬으면 바래.

당시는 무지막지한 일본군대와 경찰이 무조건 갑인 일본제국의 한복판이었다고.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냐고? 나?

나라고 별 수 있나. 그냥 조용히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었지.

사실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는데도 다 이유가 있었어.

이건 뭐 분통이 터진다고 해서 들어줄 사람이 있기를 하나, 꼴을 보니 경찰도 이게 다 무슨 지랄인가, 싶은 눈치더라고.


-천황, 이 새끼는 걍 동경에나 처박혀 있지, 뭐 하러 여기까지 기어와서 우리들을 귀찮게 하는 거야!

경찰들은 한결같이 그런 표정들을 했어.

아, 왜 일 하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공무원들 있잖아. 딱 그거야.

분위기가 이런데 괜히 대들다가 얻어터지면 누가 손해지?


나, 이봉창이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다고.

이래봬도 열 댓 살부터 살벌한 직업전선에 뛰어든 나야. 눈치하나는 백단이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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