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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살찌운 건 어른들이었다.
게시물ID : gomin_13872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女
추천 : 2
조회수 : 80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3/20 12:39:51

 아이가 있었다.
 둘째로 태어난 아이는 굉장히 순했다.
 배가 고파도 울지 않았고 심지어 기저귀에 응가를 싸고도 울지 않고 멀뚱히 있었다. 어른들이 얘는 애기가 어쩜 이렇게 울지를 않냐며 신기해 할 정도였다. 조금만 수틀리면 한시간이 넘도록 울며 어른들의 진을 온통 빼놓는 제 누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연년생인 누나가 온갖 괴롭힘을 일삼아도 묵묵히 당하기만 했다.  착한아이었다. 순하고 순수했다.

  어릴 적 아이는 제 누나와 같이 마른 체질이었다. 누나와 함께 활기차게 동네를 뛰어다니며 피부를 까무잡잡하게 태우며 놀았다. 사진첩을 보면 깡마른 아이가 이를 드러낸 채 밝게 웃는 사진들이 눈에 띈다.

 그랬던 아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며 100키로에 가깝게 살이 쪘다. 누나는 여전히 마른체질이라 어딜가면 항상 비교되었다.

 아이는 왜 살이 쪘을까?

 아이의 어머니는 기억을 더듬는다. 초등학교 2학년무렵 반에서 질 나쁜 아이에게 찍혀 폭력을 수반한 괴롭힘을 당했었다는 것. 누나도 그 나쁜녀석을 기억한다. 남의 집 아파트 대문에 돌을 던져 생채기를 잔뜩 만들어놓았던, 9살짜리 개새끼.

 그 때부터 살이 쪘을 거야. 어머니는 추측한다. 그러나 누나에게는 나이가 들 수록 선명해지는 기억이 있다.

 괴롭힘이 시작된 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 그것까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어린 아이가 어른들의 칭찬을, 사랑을 갈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날 아이가 제법 많은 밥을 먹자 어른들이 좋아하며 더 먹어라 먹어라 하던 것이 생각난다. 까탈스런 입맛탓에 편식이 심했던 누나와 달리 아이는 주는 것을 전부 받아먹었다.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싫은 내색도 못하고 아이는 계속해서 받아먹었다. 넙죽 넙죽,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먹으라면 배가 불러도 계속해서 먹었다. 한 번은 외식이 있던 날 너무 많이 먹어 체한 아이가 집에 돌아와 토를 했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음식이 남으면 아이에게 먹으라고 하게 된게. 음식남았어, 아깝다, 하면 부모님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ㅇㅇ이 주면 되지! ㅇㅇ아 먹을 수 있지? 그럼 아이는 또 먹는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듯. 비록 배가 부르더라도.

 시간이 흘러 아이는 뚱뚱해졌다.

 이거 먹어, 저거 먹어, 권하던 어른들은 이제 소년에게 그만 먹으라며 눈치를 준다. 쟤는 왜 저렇게 살이 쪘데? 제 누나는 안그런데. 그들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남은 음식을 죄다 아이의 앞으로 내밀던 어른들은 이제 아이가 뭘 조금만 집어먹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지금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몸무게는 여전히 100키로지만 키가 훌쩍 커 183이 되면서 훨씬 보기 좋아졌다. 검도를 수년간 다니며, 한 번은 독하게 마음먹고 20키로 가까이 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도로 다시 찌긴 했지만. 성인이 된 아이는 여전히 어른들이 가볍게 던지는 살 빼야지, 살 찐다, 남은 거 먹어라 하는 말을 듣는다.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누나는 어릴 때의 일을 후회한다. 청소년 때 살좀빼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던 것을 반성한다.

 아이를 살찌운 건 어른들이었다.

 그것을 뒤늦게 갑자기, 어느 음식점에서  너무 많은 음식을 시키는 바람에 억지로 겨우겨우 먹다가 깨달은 누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부터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면 늘 눈치가 구박을 받았던 과거의 동생이 떠오르네요.
 앞으로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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