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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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셔츠밖에 안입어?"
너와 만나러 갈땐 항상 셔츠를 입었다.
"옷을 이쁘게 입을 줄 몰라서. 이쁘게 보이고 싶은데 실수 할까봐 제일 무난하게 입는거야."
패션센스가 없어서
깔끔하게만 보이고 싶어서 항상 셔츠를 입었다.
"땡땡이나 스트라이프나 체크 무늬도 없어?"
내 셔츠는 다 민무늬였다.
"응 안목이 없어서 뭐가 이쁜지 잘 모르겠더라. 너가 골라줘"
그 눈부신 미소와 함께 너가 말했다.
"그래 이쁜걸로 골라줄께"
너의 그 아찔한 미소를 감히 쳐다볼 수 없어서
너가 너무 예뻤어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 고마워. 기대할께"
잊고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아니 잊었다기보단 묻어 놓았다.
"ㅇㅇ아 오늘 수업에서 발표있는거 알지? 옷 잘입고와라"
같이 사는 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네 형"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공허했다.
늘 오던 문자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해야하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옷장을 열었다.
어지러운 내 맘을 대변하듯
내 셔츠들은 다 구겨져 있었다.
프로페셔널한 복장을 입어야해서 구겨진 셔츠를 입을 순 없었다.
그때 옷장에서 본 건
유일하게 구김이 없는
하얀색 땡땡이가 있는 짙은 푸른색 셔츠였다.
"넌 어두운 색이 잘 어울려"
여러개의 셔츠를 둘러보던 너가 말했다.
"그래? 그럼 이런 짙은 파랑은?"
난 셔츠 한장을 들어보며 너에게 물었다.
"응 그런거 이쁘다. 너한테 잘어울리네"
넌 또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겨울엔, 겨울엔 꼭 그거 입고 올께."
나도 너가 좋다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셔츠를 걸쳤다.
울컥했다.
감정이 북솟아 오른다.
단추를 다 채우다 말고 화장실로 갔다.
눈이 부어있다.
어제 마지막 통화를 하며 울먹였던 탓이다.
"씨발..."
그렇게 난 하얀 땡땡이가 있는 짙은 푸른색 셔츠를 입었다.
이내 그 미소를, 찬란한 아름다움을 잊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단추를 다 맨다음 향수를 찾았다.
"그거 알아? 나 어제 길가는데 너 향수 냄새 샘플 얻었어."
너의 목소리는 매우 들떠 있었다.
"아 진짜? 그거 흔한 향수 아닌데 어떻게 찾았대. 기특하네"
어김없이 너와 통화하려 일찍 깬 내 목소리였다.
"그러게 완전 좋아. 이거 맨날 뿌리고 다닐꺼야."
너의 목소리엔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다.
전화기 너머의 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의 행복한 하루는 또 시작됐다.
"씨발..."
욕을 하지 않으려고 다짐했건만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는 그것 뿐이었다.
너가 좋아했던 그 향수를 침대위에 던졌다.
다시는 뿌리지 않으리라
다시는 저 향수를 사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내 다시 줏어서 새면대 위에 고이 올려놓았다.
쓰레기통이 아니라,
바닥이 아니라
푹신한 침대위에 던졌던건
너에 대한 화가 아니라
아련한 아쉬움과 그리움 이었다.
그렇게 난 향수를 뿌렸다.
"너 시계 나랑 똑같다!"
내가 너가 좋아했던 미소와 함께 내 시계를 보여주었다.
"그러게 이거 깔끔해서 나 좋아해."
넌 눈부셨다.
우린 팔을 맞대고
같은 시계를 자랑하며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
"씨발..."
시계를 찼다.
아이러니 하게도 넌 없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너가 제일 보고싶어했던
민무늬 셔츠를 입지 않은 내 모습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여기 시간 13시 20분
거기 시간 02시 20분
우리의 시간은 이제는 다르다.
나의 시간은 아직은 같다.
출처 |
헤어지기 전 매일 써주겠던 다이어리와 편지, 그리고 헤어진 후에도 보내지 못했던 편지와 보여주지 못했던 다이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