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전공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늘 "왜 패션쇼에서는 그렇게 입을 수 없는 옷들을 보여주는거야?" 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늘 "그게 뭐가됐던 어쨌던 니 삶에도 영향을 미칠거야." 라고 말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스키니 열풍 이후에 현재 대거 유행중인 슬렉스 패션이 있다. 이 슬렉스의 유행 이전에는 아르마니가 2012년 컬렉션에서 무려 8~9년 만에 처음으로 선보인 턱 팬츠(허리부분에서 주름을 잡은 바지)가 있었고말이다.
애플과 삼성의 재판의 결과가 애플의 승리로 돌아갔을 때, 내 주변에는 삼성이 애플에게 져서 부끄럽다고 말했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 그저 "팔은 안으로 굽는거야." 라고 말했지만 구글과 애플의 협업이 우주와 관련된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나서 나는 '애플에게 진 삼성'이 아니라 '구글과의 협업으로 애플에 맞서는 것(안드로이드)을 만든 삼성"이 부끄러웠다. 구글이 삼성과 협업해서 만든 건 애플에 대항하는 것이었는데 애플은 구글과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것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그걸 보는 순간 난 그 어떤 순간보다도 삼성이 부끄러웠다. 한때 정말 휴대전화에서는 절정을 달렸던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뒤쳐지게 된걸까? 기술력이 부족해서? 기술력의 문제는 절대 아닌거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그리고 내 나름대로 찾은 문제점은 놀랍게도 내 전공분야와 겹쳤을 때 보였다.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의 하우스들은 왜 오뜨 꾸튀르(Haute Couture:고급 바느질, 파리에서 열리는 최고 컬렉션)를 만들까? 그들에게 오뜨 쿠튀르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자부심이자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위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번에 이런것에서 영감을 받아서 우리의 기술력으로 이런 것들을 만들었어.' 라며 25~40년 된 장인이라는 최고의 인력으로 만들어진 룩들이 줄지어 나온다. 사람들이 기괴하다, 저걸 어떻게 입냐, 모델되면 이쁜옷 입혀준다며 라는 식으로 올라오지만 실제로 그걸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적다. 그리고 아무리 기괴하고 이상해도 몇년 후엔 다들 그 옷에서 파생된 것들을 입고있다. 현재 유행중인 다양한 스팽글들이 있기 3년전에 샤넬은 핑크색 스팽글 40만개를 이어 만든 스팽글로만 이루어진 원피스를 선보였다. 또, 전세계 브랜드가치 1위를 한 루이비통은 매년 컬렉션을 위해 샘플 제작비용 40억을 투자한다.
그랬다.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기업들의 역할은 모험을 하는 것이었다. 왜냐? 그들에겐 모험을 해서 실패해도 메꿀 수 있는 자본이 있고 모험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급품을 내놓는다면 중소기업은 그 모험을 따라 보급품을 내놓고 소비자들은 자기 수준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고 내 전공분야에서 이뤄지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보니 내 전공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데서도 저렇게 되어야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너무 안전하게만 가려고했다. 휴대전화의 예만 들어도 수출용 핸드폰들은 스마트폰이 아닌 것들(예: 초콜릿 2)도 와이파이가 되게 했지만 국내에서는 그 이상한 인터넷만 쓸 수 있게 했다. 자꾸 안전하게만 가려고 하니까 어느 샌가 우리는 세계 최초 카메라 핸드폰을 만든 나라에서 표절을 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모험은(모험이라고하기도 부끄럽지만) 남들이 한것이 아니라 남들도 하는 것을 더 거대한 규모로 벌여서 빼앗는 방향으로 바꼈다. 왜 젊은이들 한테만 "실패를 두려워 말아라"라고 말하는가? 자기가 못할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면 안된다. 잃을까봐 두려워 사내유보금만 쌓아놓고 있는 주제들이 우리보고는 저렇게 말한다. 당신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게 당신들의 역할이다. '어떻게하면 더 계열사를 늘려서 우리 집안 대대로 잘살게 하나?'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최고라는 걸 보여주지?(윤리적인 방법으로)'도 고민하는 대기업들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