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어제 형부에게 연락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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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이 출산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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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감이 잘 안와서 잠시 머뭇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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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딸을 낳아서 기쁘다는 형부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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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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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아직은 낯선 조카님께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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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삼촌이라며 안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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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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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인 당연히 고달팠던 누나 인생의 낙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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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 하고 예쁜 딸로 키우고 싶은 욕심. 나도 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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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쯤 몹시 바쁜 스케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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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책 이라든지 아니면 자기 딸에게 입혀줄 옷을 고르며 즐거워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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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있잖아. 이것만큼은 잊지 않아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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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이를 키울 때, 그저 누나 욕심에서 비롯된 강요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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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인영이를 늘 옆에 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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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못 이룬 꿈이나 능력을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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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나 흥미 없어하는 딸을 울려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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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 굴려댄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길 진심으로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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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과의 성장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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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어머니인 누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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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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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그저께 인영이를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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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대체 뭐가 부족해 과외를 4개씩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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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무섭게 인영일 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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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버스에 태워 보내는 누나 모습이 뻔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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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그늘진 인영이 얼굴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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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몰라서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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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이 어떤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남보다 뒤쳐질까 걱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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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지금 시작하는 게 빠른 게 아니더라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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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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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혹시 누나 욕심을 채우는 판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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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답답하니까' 라고 말하는 당신의 어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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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무겁게 보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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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누나 뜻대로 인영이가 잘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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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에 합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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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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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마흔은 딸자식을 향한 희생으로 남김없이 소멸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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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당신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되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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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에 내 아이에게 어떤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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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많은 걸 강요하는 가르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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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않은 길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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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 욕심을 따라서 자식을 키우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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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내 바램대로 커주지 않는 자식에게 실망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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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게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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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누나. 오늘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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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곁에서 함께 울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맘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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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새벽 기차가 이 곳으로 도착하는 대로 출발할 테니까 영안실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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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프지? 아직 그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누나 까무러친 얘기는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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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 목소리도 말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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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서 기운들 차려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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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벌써 20년 쯤 흘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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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인영이를 건네받던 그 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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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이가 성적표를 건네받던 그 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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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이 겹쳐지는 건 대체 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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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영이가 제일 힘들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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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요구에 짓눌려 비틀어 쓴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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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친구들보다 점수가 뒤떨어져서야 느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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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 끝으로 미끄러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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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좋은 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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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이란 허울을 뒤집어 쓴 그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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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관념 속에 눈이 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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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언제나 같은 그림만을 바라보면서 재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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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이가 그리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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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단지 숨을 쉬고 싶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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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누나 이제 그만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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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지치게 만든 세월을 다 떠나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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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꾸지람에 울지 않던 인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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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인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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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인영이 또 우리의 인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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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영이 우리의 인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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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비 하면 생각나는 가장 유명한 곡은 고3후기 이지만,
전 개인적으로 이 곡이야말로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가장 잘 반영된 곡이라고 생각해요.
듣고 있으면 정말 소설 한편이라도 읽은 것처럼, 가사에 생략된 이야기들이 제 머릿속에서 막 떠오르면서 슬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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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에 '형부'라고 써져있는 부분은 원래 매형이라 불러야 맞는건데, 키비가 호칭을 잘못 알고 실수한거라 하더군요.
이곡의 유일한 옥의 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