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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지키지 못했다.
게시물ID : sisa_9906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법고창신
추천 : 2
조회수 : 3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24 06:32:11


2002년 5월 당시 만20세였던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품과 진심을 다한 연설에 매료되어 지지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새벽 차가운 겨울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제 인생 첫투표를 노무현에게 바쳤습니다.
한나라당과 언론들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노시게타령 등으로 온국민과 더불어 노무현 욕하기를 국민스포츠로 승화시켜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노무현을 까지 않았습니다.
깔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비난이 아닌 비판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사람들이나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저더러 노빠라며 진성빨갱이, 친북좌빨로 매도했습니다.
딱히 노사모 회원이 아닌데 노빠취급을 해주어 어떤 때에는 고맙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2007년 노무현의 임기가 끝나가던 무렵, 다른 대통령들은 임기말기가 되면 레임덕에 빠져 대통령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아직도 건재함을 느꼈습니다.
뭔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대통령이 될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2008년 2월 임기가 끝난 후에도 아직 그가 현직 대통령처럼 느껴졌습니다.
노무현은 임기를 마치고 고향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귀향했습니다.
농사를 지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짓다가 돌아가신 우리 할배 생각도 나고 정말 우리나라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만 같았습니다.
임기 중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짠내나도록 욕을 하더니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니 좋다고 마구 몰려갔습니다.
그때 '이제서야 사람들이 노무현의 진가를 아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멩바기는 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가만히 농사짓고 사는 노무현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박연차에게 뇌물을 받았다며 연일 내내 신문과 TV로 도배를 했습니다.
기레기들은 너나할것 없이 망원경 같은 카메라를 들고 노무현의 집을 겹겹이 둘러싸 포위하였습니다.
2009년 4월 30일, 죄없는 노무현은 검찰로 붙들려가서 소환조사를 당했습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으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어떤 이는 노무현마저 뇌물을 받으니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를 지지했던 이들도 사실인마냥 여기며 한점의 의혹없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눈물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이 어이없이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나갈때 그 주위사람들과 그를 보좌했던 이들은 언필칭 폐족이 되었습니다.
저 같은 일개 지지자는 시대에 덜 떨어진 좌빨잔당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제 속은 문드러져 갔습니다.
무언가 모를 패배감과 현실에 대한 좌절감은 더해져 갔습니다.
멩박이가 실컷 해처먹고 가니 이번엔 그네가 왔습니다.
카톡프로필에 노무현을 추억하는 사진을 실었다가 회사의 반장새끼가 그걸 보고는 나더러 정신나간 새끼라며 쌍욕을 해댔습니다.
저는 솔직히 회사에서 짤릴까봐 또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대구인지라 그냥 허허 웃으며 넘어갔습니다.
나는 너무 비겁한 새끼입니다.

졸렬한 새끼가 맞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에는 빚이 있습니다.
노무현없는 노무현시대가 왔어도 그 빚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노무현 이름 석자가 제 마음 속에 늘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은 빚입니다.
제가 진 빚은 아직 모두 다 갚지 못했습니다.
그를 지키지 못했다라는 빚은... 다스의 주인이 법정구속될 때에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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