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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정서씨의 이방인은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표현한다면 상당히 완곡한..
게시물ID : readers_138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라트리스테
추천 : 9
조회수 : 6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08 14:52:11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죠.
 
먼저 카뮈의 이방인은 상당히 어렵고 난해한 소설입니다.
그리고 시중에는 불문학계의 원로이자 카뮈 연구자인 김화영씨의 번역본이 이미 존재한 상황이었습니다.
untitled.png
untitled.png
<김화영씨가 번역한 이방인>
 
07468651.jpg
<이정서씨가 번역한 이방인. 광고부터 아주 노골적입니다.>
 
그런데 이정서씨는 이정서씨의 이방인 번역본을 출판하기 전에 이렇게 주장합니다.(새움출판사 블로그에서 말입니다)
 
'김화영의 권위에 눌려 독자가 읽을 시 작품이 난해하고 재미가 없어도 독자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그의 번역본의 질은 떠나서, 그는 이렇게 상당히 도발적인 말투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몰렸지요.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고 자신이 있었기에 저런 도발적인 주장을 했다면, 사람들의 질문에 정당히 응답했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그런 시도에 말바꾸기, 댓글삭제, 권위로 누르기... 토론에서 아주 꼴보기 싫은 짓으로만 대응했습니다.(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중 압권이었던 것은 자신이 카뮈와 접신했다는 것...)
 
자세한 과정과 그가 한 번역의 논쟁은 http://indindi.egloos.com/ 이곳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의 토론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정말 기가 막히는 명언들이 많은데...
 
[이분, 한창 공부중인 불문학도생이 분명해보입니다. 배우는 학생이라면 벌써부터 허명을 쫓기 보다는 좀 더 진지한 자세로 학문에 임해주길 선배로서 부탁드립니다.]<-위의 이글루스 주인에게 한 말입니다. 아니, 김화영씨 권위를 비판하신다는 분이?
 
[당장이라도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저 위의 1안과 2안을 불러주고 나서 어느 것이 카뮈 <이방인>의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출발어니 도착어니 하며, 번역의 문제 운운할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그 질문을 들은 편집자는 아마도 교수님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독특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확인 결과 제가 하는 말(혹은 번역)이 틀렸다면, 그 즉시 저는 제 책 전부를 수거해서 폐기처분할 것입니다. 더불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움 출판사 대표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며 독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혹세무민’했다고 석고대죄할 것입니다. 물론 교수님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
 
이에 실제로 네티즌들이 프랑스 카뮈 연구회(SEC;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프랑스 카뮈 연구회 회장 아녜스 스피켈(Agnès Spiquel)은 갈리마르에서 발간하는 플레이아드 전집의 카뮈편 편집에 참여한 사람입니다.)에 문의하였고 아녜스 스피겔은 이렇게 답합니다.
 
친애하는 Giovanni에게,
우선 답장이 늦어져서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그 한국인 카뮈 애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자 합니다. (그 독자분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넵니다.)
첫 번째 쟁점은 명백하다고 봅니다. 아랍인들 중 한 명이 레몽 옛 정부의 남자 형제입니다. 텍스트 어디에도 그 "무어 여성" 외에 다른 무어인이 특정되어 등장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그 아랍인에게 "정부"나 "연인"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아주 잘 알았을 것입니다!
살인과 관련해서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1) 만약 뫼르소 바깥에서 생각해본다면, 아랍인이 칼을 빼들었으므로 정당방위였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정황이 고려된다면 사형이 선고되지 않았겠지요. (식민지 알제리 상황에선, 유럽인은 절대 칼로 무장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지 않을 것입니다.)
2) 하지만,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을 볼 때, 카뮈는 우리가 뫼르소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 따른다면, 뫼르소로 하여금 권총 방아쇠를 무의식적으로 당기게 만든 원인은 단검에 의해 반사된 눈부신 햇빛이 맞습니다. 뫼르소는 해변가의 내리쬐는 더위에서 위협감을 느꼈으니, 태양 때문에 위협을 느낀 것이 맞습니다. 그가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은, 그러므로 타당합니다. 카뮈는 독자들이 뫼르소를 죄인으로 여기길 바란 것입니다. 설령 뫼르소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지라도. 더구나 뫼르소도 죄의식을 느낍니다("나는 내가 그날의 균형을 파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불행의 문을 두드립니다. 직접성의 결백함에 머무르고자 했던 그는, 자신이 불행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압니다.
3) 당연히도 이 살인 사건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방인>은 철학적 우화이기 때문입니다(리얼리즘 소설이 아닙니다). 태양은, 고대 비극에서 그랬듯이, 운명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상황이 역전됨에 따라 책임이 없음에도 죄인이 되는 이 비극적 처지에 몰릴 수 있습니다(오이디푸스가 바로 그런 처지였습니다).
4) 또한 이 장면을 통해, 내재된 폭력이 언제든 살인으로 귀결될 수 있는 식민지 상황이 치환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안락한 공간(알제리 전체를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는 그늘진 샘가)을 두고 대결이 벌어지지요.
부디 진행 중인 연구에 진척이 있길 바랍니다.
진심을 담아,
Agnès Spiquel.
(이건 이정서씨의 번역으로 생긴 논쟁에 대한 반박문이니 위의 이글루스로 직접 가셔서 읽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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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이정서씨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이렇게 대응합니다.
a0338277_53777c8ad51c6.png
그런데 위에도 말씀드렸듯이 프랑스 카뮈 연구회(SEC;Société des Études camusiennes)의 회장 아녜스 스피켈(Agnès Spiquel)은 갈리마르에서 발간하는 플레이아드 전집의 카뮈편 편집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자 그는 이렇게 대응합니다.
1.관련된 댓글들을 모두 삭제.
2.독자들에게 모욕 시전.
3.이 와중에 김화영씨의 번역본이 별 문제 없다고 한 김욱동, 한기호 씨를 디스.
4.이방인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고 글을 올린 후 다음 날 다시 김화영 교수를 공격.
 
에라이...아주 진짜 바닥의 바닥을 보여줍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미 기존에 있는 번역을 디스하고 싶으면 해라. 문학의 해석과 번역은 언제나 열려있고, 토론으로 인해 발전하니까.
2. 그런데 네가 디스를 하면서 번역을 내놓았으니 니 번역에 대한 디스도 당연히 받아들여라.
3. 근데 저 이정서란 사람은 자기 번역에 대한 디스는 제대로 반박하지도 않고 불리하면 댓글 삭제에 권위 드립에 접신 드립, 마지막에는 말바꾸기로 나오시네?
 
결론은, 저 사람 책 사지 마세요.
 
밑에서 이방인 관련 글을 읽고서 혹시나 '오호? 노이즈 마케팅이라지만 새로운 번역이니까 두 책을 사서 한 번 비교해볼까?' 이러시는 분 나오실까봐 조금 더 자세하게 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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