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정말 뜻밖의 순간에 예기치 못한 그리움과 외로움들이
제멋대로 고개를 빼꼼 내밀곤 한다.
그러니까 마치, 애써 내 머릿속 구석탱이에 안보이도록 박아놨지만
환한 보름달이 내 머릿속 구석구석까지 비춰준것처럼
이를테면, 오랜만에 올린 인스타 포스트에, 헤어지고 난 후 전혀 왕래가 없었던
너의 베프가 좋아요를 누른던가 하든
이 세상 그 누구도 대비할 수 없는 그런 찰나의 순간들에.
많이 무뎌진건 맞다.
우선 혼자 쓰는 글의 빈도수가 확 줄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평소에는 거의 생각이 안나니까
하지만 사실, 난 아직도 너가 좋다.
미치도록은 아니고 잔잔히 조용히
너가 아무리 미안하다고 한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이
어서 잊으라고 한들
이게 그렇게 마음대로 바뀔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난다면 점차 무뎌지고
나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제 청소하다 한쪽에 박아놓은 편지지들을 찾았다.
너에게 매주 쓰기로한 편지지였지만 얼마 쓰지도 못했기에,
60매 편지지를 다 쓰기엔 우리의 시간은 길지 못했어서
먼지를 털다 말고 버리려 들고 나왔다.
막 들고 나와서 쓰레기통을 열고 버리려는데 편지봉투가 하나 떨어졌다.
"나 살면서 편지 처음 써봐. 너가 하두 써달라해서 써주는거야. 미국가서도 여자 조심하고 항상 내가 보고있다고 생각해. 내 사진 많이 보고"
펴보진 않았지만, 수도 없이 읽어서 외워버린 그 편지지였다.
이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
이젠 제법 네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이젠 제법 농담으로라도 다른 좋은 사람 소개시켜달라고 할 수 있었어서
너를 완전히 잊은 줄 알았다.
너를 떨쳐 냈다고 생각했었는데, 편지봉투 하나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버렸다.
혹시나, 아주 혹시나, 너의 베프처럼, 너가 내 인스타를 볼까봐
혹시나, 아주 혹시나, 너가 다시 만나자고 할까봐
혹시나, 아주 혹시나, 우리가 다시 만날까봐
내 컴퓨터 옆 볕이 제일 잘 드는 자리엔 편지봉투가 하나 놓여있다.
이 세상 누구도 대비할 수 없는 그런 찰나의 순간들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냥 그런말을 하고싶다.
아직은, 아직은 내가 너를 가끔 생각한다고
우리의 시간은 이제는 다르다.
나의 시간은 아직은 같다.
출처 |
헤어지기 전 매일 써주겠던 다이어리와 편지, 그리고 헤어진 후에도 보내지 못했던 편지와 보여주지 못했던 다이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