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자극적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자극적인 제목으로라도 오유분들의 눈길을 끌고
위로를, 조언을 받고만 싶은 기분입니다.
아마 꽤 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만, 감히 기구하다고 해도 될런지 모를 제 얘길 해보겠습니다.
어릴 적 제 첫 기억은 어딘가의 빌라 앞에서 이삿짐 박스들 사이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기억이었습니다. 그 기억을 시작으로 어딘가 낮선 곳으로 이사를 가는 기억이 드문드문
몇 번이고 계속 되는데, 어머니의 말씀으론 저를 가지셨을 때부터 제가 좀 더 자라,
3살이 되기 전까지 열 번 정도의 이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사를 다녔던 이유인즉슨, 아버지가 자칭 '사업가' 라는 분이셨기 때문인데,
제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에도 이사는 계속되었지만 얼마 후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아버지는 마당이 넓고 멋진 큰 집을 사셨습니다.
그즈음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참 멋진 분이었습니다. 전화로 언제나 억억 소리나는 큰 돈
얘길 하시고, 티비가 작다고 불평하면 벽면이 가득찰 듯한 티비를 사오시고,
어머니께서 운동이 하고 싶다고 하시면 방 하나 가득 기구를 사주시고, 거의 두어 달에 한 번씩
자가용이 다른 종류의 외제차로 바꾸시곤 했습니다. 그 덕에 어린 날에 SAAB,포드,
렉서스,벤츠,BMW,링컨 등등 몇 년간 꽤 많은 종류의 외제차를 구경하고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풍요로운 생활은 길지 않았고, 아버지의 사업이 어찌 되었는지 지금도 알지는 못하지만,
채권자들과 그 연루된 추심업체의 조폭들이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의
동업자의 부인이 집에 찾아와 어머니께 아버지의 외도를 폭로하고 폭언을 퍼붓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혼 때부터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세 달 정도를 연락없이 집에 들어오시지 않곤
하셨었고, 요 근래까지도 일주일에 두 번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무슨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놀랄
정도로 아버지는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이었고, 부모였습니다. 아마 그 외박의 나날들도 외도와 관련이
있었겠지요. 하여튼 연이은 사채업자들과 조폭들의 방문으로 어머니와 저, 그리고 동생은 근처 모텔이나
찜질방, 목욕탕에 딸린 수면실에서 며칠씩 있거나, 아버지나 어머니의 지인의 집에서 며칠 씩 머무르며
학교에 다니곤 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곳을 전전하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면서, 그 동네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진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성격이 매우 예민해지셨고,
자주 우울해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 여파로, 작은 잘못을 해도 매가 부러질때까지 수백대의 매를 맞기가
일쑤였고, 어느 종교에 심취하시게 되셨습니다. 반 년즈음 지난 뒤 다시 원래 살던 동네의 작은 빌라에
이사를 오게되었고, 그 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다 말하자면 끝도없지만, 요전의 그 사채업자들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요, 한 무리의 조폭들이 아버지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집에 며칠간 머물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살고있던 빌라마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고, 곧 쓰러질 듯한 연립주택에 월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어머니는 유치원생 때부터 저의 교육의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셨고, 생활비가 몇십만원
되지 않던 상황에서도 거의 전부를 저의 교육에 쓰셨습니다. 방문학습지,원어민영어,과외,학원,특기활동 등,
수 많은 교육 스케쥴에 빡빡한 생활을 하였고, 그 결과로 높은 성적을 원하셨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전과목 평균이 95점 이하인 경우에는 온몸에 멍이 들게 맞곤 했고, 맞다가 어머니가 잠시 숨을 돌리러
거실에 나가신 잠깐 사이에 베란다 한 구석에 숨어 쓰러져 잠들기도 했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저의 교육만을 생각하시면서 버티실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만,
그 당시에는 몇 번을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심각하게 고민했었고, 아프지 않게 죽는 방법을 검색하기도 할 정도로 참
힘들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빌라가 경매로 넘어간 뒤, 근교에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던 제게, 아버지는 유학을 보내줄테니
고등학교에 미진학하고 검정고시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어머니와의 심한 마찰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확고하셨고 결국 그렇게 고등학교에 미진학하고 중학교를 졸업한 그해 여름에 검정고시를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제가 해외에 있는 대학에 딸린 어학원을 한창 알아보던 어느날, 아버지는 사기죄로 감옥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 무언가 인생을 살게 해주는 것이 한 번 무너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찌 될것인지, 무얼해야 하는지
계획조차 없었기에 하루하루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집을 나서, 새벽부터 밤까지 pc방에 있었습니다. 아마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고, 집에서 멍하니 있다 절망한 어머니와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감옥에 가신 이듬해에 출소하셨고, 몇 달간을 집에서 무기력하게 하루 종일 티비를 보며 계시다
다시 사업를 하러 나가셨고, 그 사업이 잘 되었는지 작년부터 다시 대형 외제차를 타고 다니시고, 몇 백만원짜리 옷을 입고,
몇 천만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생활비 지원은 없다시피 했고, 어머니는 일을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고 돈을 버시니 희망은 있는듯 했고, 간간히 유학 얘기도 다시 나누며 대략적인 계획을 짜보곤 했습니다.
생활이 안정권에 들즈음 아버지는 이전과는 달리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 들어오셨고, 간간히 몇 십만원씩 주시던 생활비도
한 달에 한 번은 주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전까지 잘 되어가다가 저번달에 아버지가 다시 사기죄로 감옥에 가셨고
이번에는 몇 년 간을 감옥에서 보내시게 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오늘까지 멍하고 벙찐, 어딘가 붕 떠있는 듯한 기분으로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며
집에서 거의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저를 지탱해주던 그 무언가마저 이제는 다 잃은 기분입니다.
한 편으로는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무책임한 것 같고, 자괴감마저 들지만 뭐 괜찮겠지 싶은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거의 감정없이 남의 일 얘기하듯 주욱 써내려왔는데요, 참 힘이 들기도 하면서,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아직 젊으니 뭐든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하기싫고 그냥 현실에서 멀어지고만 싶습니다.
도피처가 무덤이든, 집안이든, 모니터나 TV 화면이든, 나만의 의식 속이든 간에 혼자 머물러 있고 싶은 한 편,
누군가에게 이런 얘길 털어놓고 그 사람을 끌어안고 울면서 화도 내고 숨이 차도록 소리를 지르고도 싶습니다.
어릴때부터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아서 그런지 정말 어디 소설이나 드라마 속 얘기 같네요.
금방이라도 죽고싶고 도망치고픈 저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 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익명의 이 공간에서 위로와 관심과 사랑을 구걸해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은 맘이네요..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