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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2008년(데뷔, 서울시절)
1. 포항이 보내주는 유학 갔다왔으면서 갔다오는 조건으로 우선협상(우선계약이 아님.. 우선 협상입니다.. 협상 테이블에만 앉으면 되는거고 결렬되고 나서 딴데 가도 문제 될게 없었음)을 해야 하는데 무시한 후 통수를 퐝 치고 서울로 간 후 첫 시즌인 05년에 히칼도-김은중-도주영이란 무시무시한 삼각편성으로 12골을 넣는 기염을 터트렸습니다. 물론 리그,컵 등 자잘한 대회 다 합치면 18골이었다고 하지요. 근데 일단 리그 기준으로 쓰자면 그렇다는거죠. 그 당시 득점왕인 마차도와의 골차이가 1골이었습니다. 잘한거 맞습니다.
2. 근데 06시즌 들어서고나서 히칼도와 도주영을 막으면 만사오케이라는 걸 알아내고 수비들이 도주영-히칼도를 전담마크하자 도주영의 득점은 리그기준 7골로 거의 반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근데 작년은 리그기준 19경기 12골이었고 이번에는 리그기준 26경기 7골입니다.(리그 외 다른 컵경기수까지 따지면 작년과 경기수는 똑같습니다.) 참 심각한거에요. 게다가 06년에 있던 독일월드컵에서 부진하고 오자 박주영은 슬럼프에 빠집니다. 그리고 당시 감독인 이장수와 박주영간의 대립이 있었다고 합니다. 백지훈과 같이 이장수랑 대립이 있었는데 백지훈은 수원행 ㅋ 여하튼 박주영은 독일월드컵 이후 교체로만 출장해서 골을 간간히 기록했습니다.
3. 2007년 한일 월드컵 때 터키 감독 했었던 세뇨르 귀네르슈가 서울의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오자마자 박주영을 훌륭한 선수라고 하면서 이런 선수를 왜 벤치에 썩혀두느냐느니 언플을 했었습니다. 근데 이 귀네르슈는 서울의 어시스트를 책임지다시피했던 히칼도를 싫어했습니다. 꺼지라고 몇번이나 말했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히칼도는 자주 등장하지 못 했습니다. 히칼도처럼 꿀패스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득점을 거의 못 합니다. 게다가 본인도 부상도 겪었습니다. 경기출장수가 14경기였고 2골밖에 못 넣었습니다. 근데 이 당시 부상이 2개월짜리라는 소리가 있는데 정확히 아는 분들 답변부탁합니다. 시즌 아웃이라는 소리도 있었죠.
4. 08년에 세뇨르 귀네르슈는 박주영을 왼쪽 윙에 박아놓습니다. 그래서인지 2골 나옵니다. 또한 그 해에는 베이징 올림픽이 있었습니다. 근데 가서 삽질합니다. 올대감독인 박성화가 '전방에 갔다놨는데 왜 득점포가 터지지 않니' 하면서 한탄을 금치 못했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강등당하니 2부리그에서 뛰기도 싫고 이적을 하려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손을 뻗친 여러팀들 중 제일 구애가 심했던 게 릴입니다. 릴은 무사 소우 백업용으로 그를 영입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계약세부조건은 매달 3억(!!!)에 이적료 300만 유로에 병역문제 해결되면 추가로 2백만을 더 주기로 한 것.계약은 지지부진했습니다. 그가 군대를 가야 하는 입장인데 서로의 금액 차이는 상당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어떻게든 계약과정은 진행되었고 1차 메디컬 받은 후 2차받으려는 시점에 벵거가 '헤이 추영 컴온 아스날 맨?'이라고 하자 '오케 벵거'하고 스날이로 갑니다.
이 과정에서 릴 회장이 '박주영 개객끼가 말도 안하고 떠났다'고 하지만 에이전트 측이나 BBC기자나 하는말이 '통보는 하고 떠났다'는 것. 어느 프랑스 언론에서는 도주영 새끼가 릴회장이 찾아왔을때 '나 감'이라고 했다고 한다. 옆에 같이 있었던 릴의 고위관계자는 이미 도주영이 짐을 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을 한 이유로서 팬들은 '릴 씹숑키들이 자꾸 헐값에 비드하면서 질질 끌어댄게 잘못이다'라고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박주영에겐 장기체류권이라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습니다. 이거 썼으면 적어도 릴이 처음부터 헐값을 부를 일은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국민들에게 병역꼼수라고 욕 쳐먹을까봐 차마 그걸 이야기하지 못한듯 싶습니다.솔직히 강등된 팀의 선수인데다 병역문제 해결 안된 선수에게 고액을 선뜻 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릴이 나쁜조건을 내민것만도 아니라고는 생각합니다. 이상 릴 개갞끼라고 하는 사람들 보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외축구팬들 및 박주영팬들의 기대감을 부풀리게 했지만 그게 스날이에서의 유일한 활약상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까인 저도 몰랐습니다 ㅋㅋㅋㅋㅋ
이 후 말세유와의 챔스 조별예선, 맨시와의 칼링 8강전에서 죽썼습니다. 특히 맨시와의 칼링컵에서는
나슬이 편하게 지나가라고 압박도 안 하고 비켜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런 삽질을 한데다 시즌 반만 뛴다는 반페르시가 갑자기 풀페르시가 되다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버려졌습니다. 2군으로 내려갔죠. 주 스쿼드가 2군이었던 선덜랜드전에서의 나로호 슛에 이어 AV전에서는 전반에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1군이 주 스쿼드였던 노리치전에서는 1골을 넣었다곤 하지만 베나윤의 슛이 골대를 팅겨나간걸 걍 줏어먹기한거고 그 이후로는 안 보였습니다. 웨스트 브롬위치전에서는 사실상 누가 넣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후에도 다 1군들 대거투입해서 나온 골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스날 2군 감독은 '미야이치 료나 박주영이나 시키는대로 잘하는데 박주영이는 창의성이 0이여' 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게다가 병역파문이 터지니 아스날은 졸지에 추가금을 더 냈습니다. 아마 이거땜시 '도움도 앙대는 시키가 돈은 더 내게 하네' 하면서 사실상 전력외로 냅둔것일지도 모릅니다. 리그 1경기와 여러가지 잡다한 경기 다 합해서 6경기 출전 해서 1골 기록합니다..
7. 병역연기 논란이 터졌지만 땅보가 올대에 승선시켰고 2골을 기록해서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이 때만큼은 박시탈이긴 했죠. 일본수비도 국대급이었다고 하더군요
8. 올림픽 메달을 땄는데도 아스날은 그를 전력외 상대로 둔 상태였으며 그에게 온 오퍼는 과거 설기현이 뛰었던 풀럼과 과거 좀 날렸던 셀타 비고였습니다. 거기다 풀럼이 한국 스폰서까지 따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상황이라 무사 덤벨레를 토트넘에 보낸 풀럼의 영입대상이 박주영이라는 설은 더더욱 힘을 얻어갔는데..... 이적시장이 닫히기 하루 전 그가 스페인으로 갔으며 셀타 비고에서 메디컬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이적시장이 끝나기 하루 전 셀타 비고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9. 늦게 입단했기 때문일까요? 9월 23일까지는 영 안 좋았다가 헤타페와의 홈경기에서 라리가에서 첫 골을 터트렸습니다. 이 골은 라리가에 진출한 한국인 리거의 첫 골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진출했던 이호진이랑 이천스는 골을 못 넣었죠. 그리고 마요르카 상대로 2호골을 터트렸습니다. 컵 대회에서도 2부리그 1빠를 달리고 있던 팀 상대로 3호골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레알과의 컵대회에서는 한준기자의 말마따나 다 넣었으면 헤트트릭을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나로호를 날려대는 등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소속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인 이아고 아스파스와 박주영의 동선이 겹쳐서인지 시너지 효과는 내지도 못 해서 아스파스는 박주영을 간접디스했으며 소속팀에서의 왕따설까지 돌고 오죽하면 감독이 나서서 박주영이 피자를 사주며 동료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기사까지 돌 정도였습니다. 근데 그럴거 같기도 한게 임대라고는 해도 주영의 연봉은 팀 내 최고 연봉을 받았었던 아스파스의 5배입니다. 그런 선수가 3달이나 됐는데 기대이하의 활약을 보여주니 당연히 아니꼬와 보일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그들이 스페인어로 박주영의 통수행적에 대한 기사를 읽어서 비호감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죠. 여하튼 이거때문에 그는 아틀레티코와의 2012년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나오지 못 했습니다.
2013년에는 2주동안 쉰 후 바야돌리드와의 홈경기에서 로페스의 골을 돕는 첫 어시를 기록했습니다. 근데 명목상으로는 어시지만 로페스의 골을 보면.. 중거리 슛이라 0.1 어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걸 계기로 부활하나 싶었는데 에스파뇰 원정에선 교체투입했지만 별 활약 없었고 말라가 전에선 결장, 소시에다드전에선 선발, 오사수나 전에선 교체, 발렌시아전 결장, 자기가 골기록한 헤타페전 결장, 그라나다전 결장, 세비야전 결장 했습니다.
그러다 레알전에서 복귀.. 약간의 임팩트를 보여줬죠.데포르티보 전에서 시즌 4호골을 터트렸습니다..
에이매치 휴식기 지나고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나 했는데 담상대가 바르셀로나였습니다. 마침 아스파스가 징계로 못나오게되니 선발로 나왔습니다. 물론 공격포인트 따위는 없었습니다. 이후 바예카노전 선발, 마요르카전 교체, 사라고사전 교체로 나왔지만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시즌도 얼마 안남은 시점에서 부상당했습니다. 시즌 아웃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걸로 스페인에서의 성적은 4골 1어시로 마무리 됐습니다. 그리고 강등권이냐 마느냐 하는 셀타는 완전영입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박주영의 통수는 또 한번 빛을 발합니다
셀타비고의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강등여부를 결정짓는 경기가 있었는데
셀타비고 내부의 규정에 따르면 모든 선수들이 그 경기에 어떻게든 참관해야 한다는 규칙..
전력 외 선수라도 경기장에 와서 참관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지만 주멘은 그거 쌩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사스가 주멘
9. 근데 아스날에서도 박주영을 방출명단에 올렸습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의 행보가 심히 기대됩니다. 이와중에 도주영이 통수친 릴에서 영입제의가 왔다고 하는데 사실이면 참 재밌을법 했으나 그 해 여름엔 아무데도 안 갔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첼시와의 칼링컵경기에서 오랜만에 등장했습니다. 10분 가량 산책하고 끝.. 뜬금없이 코일감독이 지휘하는 위건에게서 3개월 임대 제의가 왔습니다. 하지만 거기 가서도 3순위 공격수인데다 아스날에서의 엄청난 주급을 감당하지 못 하는 위건측이 손 뺐습니다. 코일 감독은 박주영이 주급을 깎아서라도 오길 바랬으나 박주영은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주급도둑 노릇을 하면서 월클급 동료들과 포토제닉만 즐기던 박주영을 보며 벵교수는 '좀 나가라'라고 틈날때마다 말하지만 박주영은 계속 무시했습니다. 출장 못 하면 감독한테 찡찡대고 주급을 깎아서라도 이적을 모색하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10. 이렇게 셀타 비고에서 돌아온지 반년이 지나고 2014년 1월.. 홍명보가 박주영에게 압박을 주자 마지못해 그는 새 팀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 조건도 황당한게 '월드컵 전, 즉 반년간만 뛸 수 있는 팀'입니다. 이런 황당한 조건을 내세우니 팀 구하기 참 어려웠고 마침내 챔피언십 리그에 속해있는 왓포드 FC로 임대를 가게 됩니다.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40분쯤에 출장해서 4분간 뛰고 볼튼전 선발출장 해서 60분간 뛰었습니다. 그리고 3월달 그리스전에서는 선제골도 넣어서 박주영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그게 끝입니다. 이후 봉와직염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웃긴건 봉와직염같이 낫기 쉬운 병을 치료하겠다는 핑계로 국내로 돌아온 이후 국대 코치인 이케다 세이고와 함께 개인훈련을 하면서 왓포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거죠.
꼴랑 2경기 뛰고 국대에 승선한다는 자신감을 가지지 않고서야 저딴 짓은 못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월드컵 대표팀에 뽑힙니다.
2014년(월드컵.. 따봉전설의 시작)
11. 논란이 많은 승선을 했지만 월드컵에서 활약을 보여주면 여론은 좋아졌을 것입니다
튀니지전, 가나전, 러시아전, 알제리전 다 나왔으나 보여준게 없습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상
이런 삽질들만 보여줬으니 정퐈이야, 윤석0과 더불어 Worst 3인방에 뽑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돌아올때도 당당하게 돌아왔습니다.
손 주머니에 집어넣고 당당하게 걷는 걸 보고 노이어가 귀국하는 줄 알았습니다.
12. 월드컵가서 주가 높이기는 커녕 그나마 있던 주가마저 다 깎아먹으니 아스날에서 방출당한 이후 팀 찾기 참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옛 스승인 세뇰 귀네슈의 팀, 선더랜드와 링크가 났으나 그냥 헛소문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박주영이 현역으로 입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메달을 따서 면제했다고는 하지만 메달을 따더라도 병역법상 대체복무요원의 자격이기 때문에 3년간은 해당 종목에서 코치로든 선수로든 뛰어야 한다는 건데 그걸 안 하고 있으니 당연히 저런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C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네요??? C급 지도자는 13세 이하 유소년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대구에는 박주영 축구교실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팀을 못 구하더라도 축구교실에서 애들하고 공놀이 좀 하면 대체복무요원의 자격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18..
2014~2015년(중동 리거가 되다)
13.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이 박주영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거기에 응함으로서 중동리거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의 탑팀 중 하나인 알 힐랄 상대로 버저비터골을 터트렸지만 그게 끝..
이후 선발로 계속 출장했지만 골 못 넣습니다.
슈틀리케감독 체제에서 국대에 뽑히긴 했지만 혹시나했더니 역시나 별 다른 활약을 못 보였고..
아시안컵 대표팀에는 탈락하는 굴욕(?)을 겪기도 합다.
그리고 박주영없는 국대는 아시안컵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터트렸으며 우승은 못 했지만 준우승은 합니다.
그의 대체자인 이정협은 2골 1어시 올렸습니다. 이대로면 국대에서의 커리어도 끝날 상황입니다.
박주영은 여전히 유럽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터키와도 링크가 떴죠. 그러나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렇게 유럽행도 실패하고 자기도 사우디에서 버티기 힘들어서 8개월계약임에도 불구하고 4~5개월만에 상호계약해지로서 풀리게 됩니다 ㅋ
그리고
2015년 현재(서울 복귀)
14. 서울로 복귀합니다.
FA니까 이적료는 없으며 연봉이 무려 13억+알파 라고 하신다. 13억이면 몰리나와 동급이며 이동국의 11억보다 2억 높죠!!!!
서울 단장은 연봉이 백의종군급 이라 하시지만 그래도 국내 1위입니다.
등번호는 91.. 구 원 이라고 읽으시면 된다고 합니다.
전 팀인 알샤밥과 이적관련 분쟁이 있어서 법적으로는 박주영의 소속팀이 알샤밥인지라 3월에는 못 나온다고 합니다.
4월까지는 이적관련 분쟁을 해결하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