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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밖에 먹지 못하는 병.
게시물ID : panic_962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0.625
추천 : 3
조회수 : 14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10 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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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두침침한 반지하.
 
유현철은 자위를 시작했다.
 
소리는 켜지 않았다.창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창문에는 청태이프로 말아두어서
 
바깥의 빛 한 줄기 비추지 않는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불빛에 얼굴을 갖다 문댈정도로 몰입하면서도
 
그는 한 손가락을 빨아먹느라 여념이 없다.
 
한 손가락이 없기 때문이다.
 
도마옆에 널부러진 큼지막한 식칼엔 시뻘건 피가 묻어 질질질 세고 있다.
 
 
영상속에서 나오는 광경은 도구와 명암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늘 상 비슷하다.
 
돼지탈을 뒤집어쓴체 카매라를 바라보는 사내들이 묶여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도축하는 것이다.
 
비명소리는 그들의 재갈앞에 문드러져 짐승의 단말마와 비슷한 뭉툭한 것으로 변한다.
 
그리고 일부분을 뜯어내어,
 
즉석에서 불에 구워 먹기 시작한다.
 
 
넋을 잃은 주둥이에선 침이 흘러떨어지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모든것이 잘못된 뒤에야 하게 되는 말인 만큼 아무의미도 없겠지만
 
정말이지 괴롭기만 하다.
 
고기가 없다.
 
이제는 더이상 고기를 사먹을 수가 없다.
 
집안에 남아있는 고기도 이틀전을 마지막으로 다 떨어져버렸다.
 
어리석기는,조금은 괴롭더라도 직장을 그만둬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다른 직장을 구해볼까?
 
실례.그것만큼 멍청한 생각도 없겠지.헛웃음이 나온다.
 
그것보다 더 나쁜것은 아마도 나는 이곳에서 얼마 못가 죽게되리라는 것이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외부와의 연결은 오래전에 끊어졌다.
 
창살밖으로 비명을 질러댄다면야 외부의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랬다간 십중팔구 화제가 된다.
 
그날은 정말 맛있었지.
 
아무리 고기를 구하려고 애써봐도 그건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지나치게 비쌌고,언제 도축된건지 짐작하기 어려울정도로 오래되고 꽁꽁 얼어있었다.
 
나는 그래서 생각했던 거다.
 
어차피 죽을인간이라면,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지금생각해봐도 그건 미소가 그려지는 사건이었다.
 
내 인생을 위한 용기있는 결단! 행복한 추억.
 
결과도 좋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난 후회하지 않는다.
 
언제고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몇 번이고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여기에 갇혔다.
 
조금씩 비참히 죽겠지.
 
자살할까.
 
 
 
 
그 사이에 바퀴벌레 한마리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내 손가락에 올라앉아 더듬이를 흔들어댔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일순간 치밀어오른 나 자신에 대한 구역감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재빨리 벌레를 눌러죽인 뒤
 
나는 무방비하게 바닥을 구르는 귀중한 것들을 햝아내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무리 내 현실이 비참할 지라도 그건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것들을 잊어버릴 이유는 되지 않았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싸늘히 식어가고 있는 지금의 보물들도,분명히 있을 태니깐.
 
이것이야 말로 내가 꿈꿔왔던 신선한 고기.
 
이것이야 말로 내가 굶주려왔던 즐거움.
 
어디서 감히 벌레따위가.
 
내 손가락은 누구에게도 줄 수 없었다.이건 모두 내 거였다.
 
 
행복하다.
 
정말 행복해.
 
 
살사이를 파고드는 치아의 촉감.
입술사이에 부드럽게 스치는 고기의 촉촉한 내음.
뼈가 부러지고 고기에서 깊은 혈향이 피어나와 입안을 메우자
 
유현철은 소중한것이 다칠까 걱정하는듯한 표정으로 입을 땠다
다시 살며시 물었다.
 
그의 발가벗겨진 아랫도리가 어느새 다시 묵직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누워 입을 오물거리면서도,그는 부단히 오른손을 놀렸다.
 
그러나 치아 사이의 찌꺼기조차 다 먹은 뒤.
더 이상  남은게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을때.
유현철은 드러누워서 상념에 잠겼다.
 
 
나는 행복한 걸까?
 
 
그가 현재 머물고 있는 거처 주변엔 초등학교가 있었다.
 
하교시간이 된 것인지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발걸음 소리가
 
그의 창문곁을 지나쳐갔다.
 
 
사실 그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맑은 햇볕 아래에서,시원하고 향기로운 공기를 들어마시며.
 
모두와 함께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지금 이순간도 저 바깥에 있는 아이들에 다가가고 싶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러나,너무 멀다.
 
 
창문을 감싼 청태이프 사이 작은 구멍에 눈알을 가져다 대며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이렇게나 맛있는게 많은데... 어째서...
 
어째서 난...
 
 
유현철은 문득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번도 하고 싶은대로 해본적이 없었다.
 
생활은 비참했다.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마치고도 주어진것은 말라비틀어진 손가락 몇 개가 전부였고
 
항상 굶주리고 욕망에 시달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들킬까봐 안절부절 못했다.
 
맛있어 보이던 그녀.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다가가기조차 쉬운일이 아니었던 그녀에게 다가가
 
"저 당신을 먹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해보는건 어땠을까.
 
어쩌면, 흔쾌히 들어줬을지도 모르는데.
 
거절당한다 했을 지라도
 
어차피 무언가를 잃어버리는것도 아니었는데.
 
..왜 난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어쩌면 생활의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자신의 한심함에 대한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달라져야할 시간이었다.
 
유현철은 창문에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내가.. 내가 된다!"
 
"내 꿈을 이루겠어!"
 
"꿈은 이루어진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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