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근육과 미시마 유키오
게시물ID : readers_139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라트리스테
추천 : 8
조회수 : 245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10 00:26:43
2013년 초에 아마 MBC 예능데스크에서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 좌우한다'라는 막장 발표로, 보는 사람들은 다 헛웃음을 지었지만 저는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위의 표어와 정말 딱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본명은 히라오카 키미다케(平岡 公威)로 그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제자입니다.
 
 
images.jpg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노벨문학상 수상자입니다.
대표작으로는 설국(雪国)이 있습니다.탐미주의, 서정적, 이런 단어를 들으시면 두근거리는 분들께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김승옥씨의 무진기행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벗어나니 눈의 나라였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라는 문장은 아직도 유명하죠.
 
052006033101200_1.gif
그의 제자 미시마 유키오
 
그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였의 추천으로 등단합니다. 스승이 스승인만큼 당연히 그는 문단에서 주목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어릴적에는 허약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을 인간의 내면의 탐구와 가치 파악, 그리고 탐미주의에 치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정말 제 취향의 글을 쓰던 작가였습니다. 이 당시 쓰여진 작품으로는 그 유명한 '금각사'가 있습니다.
 
금각사는 제가 생각하기에 걸작중의 걸작입니다.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금각사의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라납니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아름다운 금각사는 그에게 절대적인 '미'로 남게 됩니다. 이후 금각사가 있는 녹원사의 절에 도제로 들어가게 되어 실제로 보게 되어 괴리감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금각사는 여전히 주인공의 '미'로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정상적인 생활에서 계속해서 방해를 받게 됩니다. 결국 주인공은 금각사에 불을 지르며 새로운 삶을 추구하고 소설은 끝납니다.
한 마디로 주인공이 최후에 왜 금각사에 불을 지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나가는 소설입니다. 이 글의 매력은 끝없이 섬세한 묘사와 글 내에서 계속해서 주장되는 탐미주의적 모습, 그리고 우연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치밀한 구성에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미시마 유키오가 나중에 그런 또라이짓을 저지르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작품은 언제나 작가의 인격을 반영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어찌되었든 그는 병약한 자신을 고치기 위해 헬스를 시작합니다. 그는 꾸준한 관리로 근육질 몸매를 완성하죠.
 
images.jpg
요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역변이 시작됩니다.
 
1966년, "방패의 모임(楯の會)'를 결성한 그는 극렬 우익 활동을 시작합니다. 무장 투쟁 훈련과 동시에 정신적 사상 개혁을 추구한 그는 1968년에 <문화방위론>을 간행했는데 이는 무질서할 정도로 자유롭게 전개되어 왔던 일본 문화의 정신과 '미의 총람자(總攬者)'로서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천황이라는 존재를 물질 문명의 더러움으로부터 구해내고, 또한 공산주의의 손으로부터 지키려면 무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뭐 이 당시에도 다른 극우와는 차별성을 보이긴 합니다. 기존 세력에 붙어있는 우익 세력에게도 비판을 하는 모습은 개념차다...고 할 수 있나? 어찌되었든 괜찮은 모습이긴 했죠.
 
그러나 1970년, 그의 지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시마 사건으로 그는 그의 병신성을 입증합니다.
 
1970년 11월 25일 방패의 모임 대원 4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 '우수 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들어가 자위대 동부 방면 총감과 면담하던 중에 가지고 간 일본도로 위협해 인질로 잡은 그는 총감의 방 앞 발코니에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헌법 개정을 요구, 자위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이치가야 연설'을 한 뒤 약 5분 후 모리타 마사카쓰와 함께 할복 자살합니다.
 
평상시 할복을 미의 극치라고 예찬하던 그는 실제로 할복을 했을 때에는 고통으로 발광했고 이 고통때문에 혀까지 깨물었습니다. 그는 연설을 시도했으나 총감을 인질로 잡힌 자위대의 간부들은 그의 연설 내내 야유를 퍼부었고, 그는 예정된 시간만큼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가장 안습인 것은, 음향 시설이 안 좋아서(중계용 헬리콥터가 인근에서 비행중이었다고 함)사람들이 아무도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미시마 유키오는 참으로 특이한 인물입니다. 사람의 성향이 이렇게 극렬하게 바뀌는 모습은 정말 찾아보기 힘듭니다.
 
병약할 당시에는 내면, 정신적, 탐미주의로 주를 이뤘던 양반이
근육질이 되자 극우로 방향을 바꿔서 최종적으로는 할복 자살까지 시도합니다.
 
저는 그래서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 좌우한다'라는 개소리를 듣고서 이 양반을 생각했습니다. 참 특이한 병신...아니 사람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초기의 모습으로만 남았다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을 텐데...
 
 
기타 잡변
1.참고로 이 사람이 동성애자였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워낙 증거자료가 많아서.
2.이 사람은 병역비리로 2차대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극우가 되기 전의 일이니 겉다르고 속다른놈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런 병역기피라는 개인사가가 그의 극우 행적의 방아쇠가 되지 않았나, 이런 추측도 있습니다.
3.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제자가 자살한 후 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합니다.
 
출처:위키백과 참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