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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특별한 개미 연인
게시물ID : lovestory_83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비_
추천 : 1
조회수 : 3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16 12: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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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개미는 부지런한 곤충이다. 너무도 유명한 우화 한편은 베짱이와의 비교를 통해 그것을 확고히 설명한다. 늘 바삐 움직이며 끝없이 식량을 운반하는 개미. 힌편 조직화된 개미사회와 그 속에서 쉴 틈 없이 일을 하는 모습은 마치 고달픈 현대의 샐러리맨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같은 일상 속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개미가 나는 기계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얼마 전 아주 특별한 개미를 보았다. 녀석은 여느 개미들처럼 허둥댐 없이 침착했고 무려 비장했다. 한발 한발 조심스레 딛는 걸음은 무게가 있었다. 개미로서 가지기 힘든 비범함이 느껴졌다. 나는 녀석을 가만히 관찰했다. 돋보기의 부재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달린 눈을 이용해 정성껏 바라보았다. 녀석은 뭔가를 물고 있었다. 오늘도 부지런한 일상의 반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보았다. 입에 물린 비장함을.
  
물고 있는 건 개미였다. 물린 개미는 늘어진 채 죽어있었다. 녀석은 주검이 된 개미를 물고 어딘가로 정갈히 이동했다. 비장함이 팽창했다. 마치 장례행렬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조심스레 내디뎠다. 걸음에 무게가 실렸다. 적어도 그때 만큼은 개미가 코끼리처럼 보였다. 녀석의 걸음 뒤로 덩이진 슬픔이 질질 끌려왔다
  
한동안 비통한 행진이 계속됐고, 녀석은 자갈이 적고 고운 모래가 깔린 푹신한 곳에 닿자 사체를 조심히 놓았다. 더듬이로부터 유약한 떨림이 전해졌다. 아마 흐느끼고 있겠지. 과연 두 개미는 어떤 사이였길래 조그만 몸집에서 저토록 커다란 슬픔을 내 뿜는 것일까? 존재만으로 가슴 벅찬 연인? 혹은 나뭇가지 밑에서 우정을 맹세한 의형제? 아니면 천륜이라 칭하는 모자 사이? 분명 한 건 서로가 목숨만큼 소중했던 사이였으리. 나는 이만 관계의 추측을 관두고 슬픔에 잠긴 녀석을 깊게 바라보았다. 타 버린 성냥 끝을 두개 붙여놓은 것 같이 검은 몸통은, 눈물에 젖은 듯 반짝였다.
  
녀석은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사체 주위를 조심히 맴돌았다. 사랑하는 사람, 아니 개미의 죽음을 인정하기 힘든 듯 한동안 그대로 돌기만 했다. 오묘한 그 광경에 나 또한 동조되어 측은함 속 작은 장례식의 유일한 조문객으로 고충(故蟲)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렇게 내가 작은 개미와 감정을 교류하며 신비한 경험에 녹아들고 있을 때, 누군가의 무례한 운동화가 조그만 장례식장을 무참히 밟고 지났다. 오래도록 빨지 않아 황토색이 된 하얀 운동화는 아무렇지 않게 저 멀리 나아갔다. 비참한 재해가 지난 자리엔 짓뭉개진 개미 조각들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잘린 몸에 붙은 모래가 무거워 보였다
  
나는 검지와 엄지로 가만히 개미들을 집어, 죽어가는 개미와 이미 죽어있는 개미를 한 곳에 모았다. 그러고는 아직 숨이 덜 끊어진 개미를 엄지로 꾸욱 눌려 안락사시켰다.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은 맘이었지만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건방지게도 나는 한 생명의 끝을 임의로 판단한 것이다. 녀석을 위한다는 핑계로. 무식한 운동화의 주인이 미워졌지만 부러 그런 일은 아닐 테니 원망도 소용없다. 하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일까? 개미는 이미 죽어버렸는데. 오히려 사랑하는 이의 장례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도  로맨틱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조그 많고 여린 두 영혼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그리고 자갈보다 낮은 모래무덤을 만들어 주는 것, 그 뿐이었다. 조물주가 아닌 이상 목숨을 끊는 것은 쉬울 지라도 소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감히 미물이라도 생명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인가 보다. 나는 갑자기 그간 아무렇지 않게 죽여버린 휴지 속 벌레들에게 죄스런 맘이 들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개미연인의(내 멋대로 추측해버린) 명복을 빌며 몇 줌의 모래를 집어 가만히 뿌려주었다. 조금의 모래에도 개미들의 몸이 쉬 덮였다. 십자가를 만들까도 했지만 무덤은 그것이 꼽힐 만큼 높지 않았다. 그저 나는 모래 위에 작은 십자가를 그렸다. 또한 자갈을 모아 울타리를 만들었다. 비록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작은 무덤이라 해도 그 순간만큼 나는 그곳이 거대한 무령왕릉으로 보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좋은 곳에서 행복하렴.

 

안녕, 개미연인.

 

 

출처 https://brunch.co.kr/@nangb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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