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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게임이 있다. 2017년 10월 홀연히 등장한 후, 최근까지 트위치, 유튜브 등 개인 게임방송들과 애청자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킨 게임.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다.
이 게임의 어느 장면을 보든 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상한 게임'이라는 느낌을받게 될 것이다. 실제 게임의 진행 내용이나 특징을 알게 될 수록 더더욱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게임이 시작하면 상반신 나체의 대머리 남자 하나가 웬 항아리에 들어간 채로 긴 망치를 하나 들고 있다. 마우스의 움직임에따라 그 남자의 망치 끝이 따라 움직인다. 다른 조작은 없다. 게이머는 그 망치로 벽을 찍고 올라 서든, 점프를 하든해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장애물들을 타고 넘어야 한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게 이 게임의 전부다. 그러다가 망치질을 잘못 하거나, 손이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하염없이 추락하며 맨 처음으로 돌아간다. 중간 단계에서 저장하거나, 3번의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 게임이 이쯤 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관심 자체가 생기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게임이, 어째서인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외 유명 게임방송인들이 이 이상한 게임을 하며 목적도 없는 빡침에 절규하는 과정을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찾아본다. 동시접속자 200만을 돌파한 배틀그라운드도, 최근 월드 챔피언쉽 대회를 마친 리그오브레전드도 제치고, 적어도 올해 11월 초는 짧게나마 이 이상한 게임이 가장 트렌디한 시대였다고 기록할 수 있다.
사실 다수의 중장년 세대에겐 개인 게임방송, 요즘 말로 게임 스트리머나 게임 유튜버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시청하는 문화 자체가 낯선 일이다. 나도 그게 낯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게임이라는 걸 거의 안 할 뿐더러 남이 하는 걸보는 그 재미 포인트를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뭔가가 있다. 아래 영상을 보면 그‘뭔가'를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
(욕과 비명이 난무하니 공공장소에서는 조심해서 보시길)
그것은 바로 좌절이다.
초기 무한도전에서 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포크레인에 맞서 삽질을 하는 가운데 너무나도 당연히 처참한 패배를 맞는 그 과정. 나영석PD의 예능에서, 가능할 것도 같지만 사실은 실패의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미션 게임에 도전해서 결국 먹거리와 잠자리를 모두 빼앗기는 그 과정.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실컷 좌절의 구렁텅이 속에서 쓰라린패배감의 쌍 싸대기를 맞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재미가 검증된 컨텐츠 형태다. 마찬가지로 유명 스트리머들이 몇 시간에서 심지어 몇 십 시간을 매달려 겨우겨우 올라선 절벽 끝자락에서, 한순간 실수로 다시 원점에 복귀하는 그 순간의 절규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좌절감은, 이 게임을 만든이가 아주 정교하게 설계한 기획의도이기도 하다. 맨 위의 본 게임 트레일러 영상의 말미에, 제작자는 대놓고 말한다.
I created this game for a certain kind of person
to hurt them.
나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이 게임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이런 사악한 의도를 지닌 이 제작자의 배경을 보면, 이 게임에 대해 일말의 수긍이 가기 시작한다. 'Bennett Foddy'. 이미 게임의 제목 자체에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낸 괴짜. 그는 여러 직업을 지니고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개인 게임개발자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혼자서만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은 하나같이 기괴하다. 어쩌면 이글을 읽는 분들 중 몇명은 이런 게임들 중 한 둘 정도는 본 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
(스포주의: 게임의 엔딩이 나오는 영상이므로, 실제로 이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은 보지 않으시길 권장)
여기까지 들어가면, 이 게임은 단순히 게이머를 빡치게 하는 악의적인 게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게임의 인기는그저 시청자들의 가학적인 취향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매출이 아닌 사용자를 기준으로 하면, 대부분의 최신 인기 게임들은 평등을 추구한다. 레벨에 따른 능력치 향상도추가 아이템도 없는 오버워치, 쌩초보도 똑같은 처지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배틀그라운드. 이 시대의 게이머들 대다수를 구성하는 젊은이들은, 시간과 노력과 연습으로 평등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임에 손을 뻗는다. 반대로돈으로 그 시간과 노력과 연습을 대체할 수 있는 게임에 몸서리를 친다. 그들이 이제 발을 디뎌야 하는 이 사회가너무나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 이미 학교를 다니고 성적을 받을 때부터, 돈으로 시간과 노력을 사는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메달려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숨을 돌리기 위한 게임 속에서까지 수백 수천만 원을 우습게 쓰는 사람들에게 좌절을 느끼는 걸 즐길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이 거지같은 게임을 만난다. 아직 정식 출시도 되지 않아 제법 큰 돈을 줘야만다른 게임들과 패키지로 살 수 있는 이 게임을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느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스트리머들이, ‘이게 뭐길래 난리야?’라는 마음으로 플레이 해보는 이 이상한 게임. 막상 시작하면 누구나 압도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을 맛봐야만 하는 이 게임. 그 어떤 날고 기는 스트리머도,최소 몇 시간은 내내 절규를 하고 심지어 눈물까지 보이게 만드는 이 게임.
어쩌면 게임 속의 디오게네스는 게임을 하는 그 게이머이자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다.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하루 하루를 힘껏 살아가고, 그 대가의 절반은 한 순간 끔찍한 좌절을 남기는데도, 그렇게 꾸역꾸역 끝도 모를 절벽을 오르는 우리들. 어쩌면 Bennett Foddy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 게임이 어떤 결과로이어질지 아무런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의 힘으로 하나하나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치고 다 엎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외로운 게임 개발자.
아니, 사실은 모두 틀렸다. 애초부터 게이머와 함께 절벽을 오르는 Bennett Foddy는 이미 나레이션을 남겼고 그 내용은 정답이다. 우리는 디오게네스도 망치도 아니다. 우리는 망치로 절벽을 오르는 그 ‘의지’, 자체다. 스트리머의좌절에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성공에 함께 희열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게이머와 게임 제작자와 함께한다. 그들이 이 모두를 함께하는 것은 그 의지 자체 때문이다. 무려 ‘윤리학’을 ‘연구’한 한 사람의 고민과 사색이 낳은 어떤결과가, 서로 무관한 듯한 모두를 이어준다. 이단아적인 B급 문화에 대한 철학과 현대 소비 컨텐츠들의 의미, 그 허무함을 이겨낼 인간적인 가치의 결론은 하나의 게임으로 빚어져 이 모두를 공감하는 고대 그리스의 디오게네스부터 21세기의 수많은 사람들을 함께하게 한다.
아재가 애였을 시절에 사람들은 게임을 ‘전자오락’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게임은, 특히 이 기괴한 항아리 게임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마치 글이 그랬고, 음악이 그랬고, 만화가, 영화가, TV쇼가 그러했듯, 한 시대의 대중이공감하는 숨결이다. 그러므로 한 시점의 다수 대중에게 사랑받는 게임은, 분명 그 시대 그 대중들의 삶을 담아낸다.
이 게임은 말라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 옆에 디오게네스가 모습을 드러내며 시작한다. 게임의 어디에도, 그 나무를넘어야하고, 모든 장애물을 타고 올라야 한다는 안내는 없다. 그 나무를 일단 넘어야만 이 게임은 성립한다. 그걸넘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오직 게이머 스스로의 몫이다. 이 게임의 모든 동기는 게이머 스스로가 만들어내는것이고, 모든 보상은 게이머 스스로가 부여한 의미에서만 기인한다.
하지만 이 게임은 분명 재미있다. 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건 아마도, 기원전부터 21세기까지 우리네 삶이원래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지같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 하루하루에서, 의미와 행복과 재미를 만들어나가는 우리의 삶 말이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이 거지같고 이상한 게임을 소개한다.
출처 | http://www.ddanzi.com/ddanziNews/211466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