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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욱 논란에 부쳐
게시물ID : readers_139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엔케이nk
추천 : 0
조회수 : 12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7/13 09:00:26


이 논란을 접하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저도 처음엔 하상욱의 글을 접하고 '재치는 있으나 이게 정말 시라고 할 정도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게다가 문학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 때문인지 그의 글이 시로 편입되는 거에 대한 불편함도 약간은 있었구요.
그런데 또 다른 의견들을 듣다보면 '절대로 시가 아니다' 라고 말할 이유도 없을 거 같은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댓글 중에서 쥘 르나르란 사람의 시를 보고 검색을 해보니
이 사람이 19세기의 하상욱이라고 불릴 만 했던 사람이네요.
그래서 참고로 소개를 해드리고자 내용를 가져와 봤습니다.

글들이 정말 하상욱의 글과 닮았네요.
뭐 사실 조금 불편한 느낌은 있을 수 있지만
저런 작품도 시가 된다면 하상욱도 딱히 시라고 못할것도 없을거 같긴 하네요...
19세기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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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daum.net/lespaul6/230315


쥘 르나르/ 뱀

너무 길다.

 

이것도 하나의 시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렇다. 100년 전 프랑스 사람인 쥘 르나르(Jules Renard, 1864∼1910)란 사람이 지은 『박물지』란 책에 나와 있는 글이다. 

작가 스스로 ‘이미지의 사냥꾼’이라고 말했듯이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로 45개의 항목(나중에 70개 항목으로 확장)을 동물이나 곤충, 새들을 소재로 하여 기지와 유머 넘치는 글을 남기고 있다. 어떤 것은 산문으로 읽히고 어떤 것은 소묘풍의 시로 읽힌다. 이러한 르나르의 글을 후세의 구르몽 같은 시인은 ‘지고지순한 정신만이 낳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프랑스의 19세기 소설가이며 극작가로 오늘날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 『홍당무』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소년 시절 시인 자신 모친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두운 나날에 대한 추억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파리로 나와 상징주의 시인들과 가까이 하며 시집 『장미』를 발표하였으며, 1891년에 쓴 소설 『부평초』로 특이한 작가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사후에 발표된 『일기』는 일기문학으로서 전범으로 높이 평가되었으며 만년에 시트리의 촌장(村長)이 되었고 아카데미 공쿠르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위의 글은 보는 바와 같이 한 줄 뿐이다. 글자 수로 볼 때 딱 네 글자뿐이다. 그런데도 할 소리는 다한 느낌이다. 뱀을 두고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어디 또 있을까? 이거야 말로 촌철살인이다. 더 할 말이 없다. ‘너무 길’은 뱀을 너무 짧게 표현하고 말았다. 일을 저질렀다는 느낌이다. 그런 만큼 놀라움과 감동은 오래고 길다. 역시 르나르의 재미난 글을 몇 편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한 마리 한 마리가 3이란 숫자를 닮았다. 

참 많기도 하다. 

얼마나 되나?

3, 3, 3, 3, 3, 3, 3, 3, 3 …….

끝이 없다. 

― 쥘 르나르, 「개미」

 

*둘로 접은 사랑의 편지가 꽃의 주소를 찾고 있다. 

― 쥘 르나르, 「나비」

 

*어른이 된 토끼

― 쥘 르나르, 「노새」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벌써 9시인데 저 집엔 아직도 불이 켜져 있네. 

― 쥘 르나르,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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