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계절은 바뀌고 시나브로 겨울에 접어 들었습니다.
유난히 가물었던 올 봄과 여름의 혹독했던 날씨탓에 그리 많은 시간을 물가에서 보내지 못하고 한 해의 낚시를 접어야 할 때가 되었군요.
영하 4~5도를 밑돌던 기온이 잠시 영상으로 돌아선다는 예보에 마지막 물낚시를 다녀오기로 합니다.
화성의 들녘을 돌아보려 했지만 방죽을 메워버리는 공사에 아쉬움을 삼키고 돌아서고,
제법 얼음이 잡혀 물낚시가 어려워 돌아서길 두어 시간....
그나마 차 바퀴가 굴러갈 만한 진흙탕 농로 한켠에 차를 세우고 마지막 낚시를 준비합니다.
한 선객이 낚시를 즐기는 옆을 지나 조용히 낚싯짐을 내려 놓습니다.
그리 붕어를 만날 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오늘은 찌를 바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만 같습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너른 평야엔 겨울 철새들만 분주합니다.
어디를 둘러 봐도 하늘을 가득 메운 물오리며 기러기가 보이는군요.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지만 갈대를 보고 정하자니 긴 낚싯대를 휘둘러야 하겠기에,
그냥 짧은 대를 펼 자리를 찾습니다.
의외의 따뜻한 오후의 기온과 파란 하늘덕에 동장군의 엄포가 그저 만만하게만 보입니다.
몇 번 미동도 않는 찌에 눈길을 주고는 줄곧 하늘만 바라봅니다.
뭐 그리 입질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찌를 물에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마친 것 같아 딴 짓에도 그저 능청스럽기만 하군요.
가끔 희부옇던 하늘은 일몰이 다가올 수록 파랗게 빛납니다.
이제 케미도 꺾어 봐야겠지요.
일몰을 바라 볼 때만 해도 뭔가 멋진 노을이 뒤따르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컸지만,
그저 올해의 마지막 해넘이구나 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군요.
해가 넘어가고 나서인지 철새들의 날개짓은 더 바쁘기만 합니다.
사실 이녀석들이 머리위로 날아갈 때면 혹시나 머리위로 뭔가 떨어질까 하는 마음에 낭만은 싹 달아나기도 합니다. ㅎㅎㅎ
이제 마지막 케미도 끼워 잔잔한 수면에 가지런히 널었으니 의자 뒤로 젖히고 지난 한 해의 낚시를 복기해 볼까 합니다.
긴 밤은 정말 따뜻했군요.
두터운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가끔 난로에 손을 쬐는 것 만으로 충분한 밤이었습니다.
새벽에는 잠깐 비가 오기도 하더니,
그래도 저 동편으로는 해가 솟습니다.
어제의 해넘이보다 마지막 오름이 더 가슴을 살짝 흔듭니다.
잠깐 멍청히 앉아 있었더니 파라솔을 때리는 빗소리를 놓치고 있었군요.
그렇게 좋던 하늘은 회색으로 가득하고, 잔잔하던 수면은 깊게 패는 빗자국으로 일렁입니다.
잠깐 동안 미끄러운 진탕길을 못빠져 나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금새 될대로 되겠지 포기를 합니다.
마지막인데 하나쯤 에피소드를 남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군요.
두어시간 내리던 비도 어느새 잦아들고 하나 하나 마른 걸레질로 낚싯대를 정리하고 나니 정오가 다 되었군요.
아쉬운 올해의 낚시는 이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늘 그렇듯 낚시의 설렘은 낚시를 마무리하면서 시작되나 봅니다.
벌써 내년 봄물이 오르는 그날을 떠올리며 가벼운 흥분을 느끼니 말입니다.
길 위에 다시 섭니다.
겨우내 안전한 낚시 즐기시고,
가뿐히 봄맞이 나서시길 바랍니다.
얼음낚시 얘기로 잠시 그리움을 달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