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은 사자수업을 하겠어요"
강의실에 교수가 들어오자마자 한말이었다.
사자수업이라니 처음듣는 생소한말에 지난 강의를 째지 말걸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랴부랴 군대에 다녀왔고 좋지못한 집안 사정과 포기할 수 없는 학업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간대학을 선택했다. 졸업을 앞두고 남은 학점을 메꾸기 위해 신청한 교양수업인데
강의 첫날은 역시나 시시껄렁한 교수의 자기소개뿐이고 출석도 부르지않으니 피곤한몸을 이끌고 먼 학교까지 갈맘이 없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가는 두번째 강의시작부터 교수가 이상한 소리를 하니 첫 강의를 빼먹은게 후회 되었다.
"사자수업이란 죽은사람의 수업으로 오늘 학생 여러분들이 죽은 사람이 되어 수업을 듣기만 하면됩니다. 누워도 좋고 의자에 않아도 좋고 엎드려도 좋아요
본인이 편한자세로 수업을 듣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단! 절대 생자의 표현을 하면안되요 기침을 한다거나 숨소리를 크게 낸다거나...
그럼 조금있다 수업을 시작할테니 본인이 편한 자세로 준비해주세요"
학기초의 어색함이 남아 모두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교수의 말이 끝나자 곧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책상위에 엎드린 학생, 그냥 앉아서 눈만 감고있는 학생, 대놓고 바닥에 누워버린 학생, 의자를 끌어보아 의자위에 누운 학생 대부분은 무난하게 책상위
에 엎드려 있었다.
나또한 선택의 기로에 섰는데 이대로 무난하게 그냥 책상위에 엎드릴까 싶었지만, 오늘 근무가 너무 피곤했던지라, 그냥 대놓고 누워서 한 숨 자기로 했다.
"준비가 된것같으니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절대 살아있는 사람, 생자인 티를 내면 안됩니다."
이말을 끝으로 교수는 혼자서 강의를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감고있으니 시간감각마저 사라진듯했다. 귀로는 교수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와 다른쪽귀로 나갔고 옆자리 책상위에 엎드
렸던 학우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대충 10분정도 지난것 같은데...
대낮에 행한 육체노동에 의한 피로가 점점 몰아치고 나의 사고도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락가락 할때였다. 갑자기 소름이 돋고 온몸의 털이 곤두 서는듯 했다.
잠이 확달아나고 정신이 들었다.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귓속에 제대로 박혔다.
"컥...커커컥 커억..끄으윽...."
곧 내 옆에서 숨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옆자리에서 나보다 먼저 잠이 들었던 학생이었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지만, 살아있는 티를 내지말라는 교수의 말이 생각나 눈을 뜰 수도 일어날 수 도 없었고, 숨소리도 크게 내지못했다.
새근새근 잠을자던 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감각이 없어진것 같다, 교수의말은 여전히 한귀로 들어와 한귀로 나가는데, 무슨말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 염불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니었다.
5분? 10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냥 최대한 숨소리를 참아가며 시체인양 가만히 누웠다.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콜록...콜록..
누군가의 기침소리가 조용히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누구의 기침소리일까, 소리가 들려온곳으로 봐서는 아까 가만히 앉아서 눈만 감고있던 학생이다.
내 타입의 미녀였기에 똑똑히 기억한다.
다시금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강의실에는 기온이 내려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컥...크억...컥 끄으으..."
숨끊기는 소리...그리고...
스르륵....쿵!
사람이 쓰러진소리.. 방금 전 기침했던 학생이다.
처음에 느꼇던 짐작이 이번엔 확신이 되었다.
지금 이 강의실에서 교수를 제외하고 살아있는 사람은 없어야만한다.
드르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 누군가 일어났다.
일어난 사람은 바로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공포에 질려서 도망쳐 나간것이 틀림없다.
나도 함께 도망갈까...그냥 누워서 죽은척을 계속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와중에
도망간 학생의 뜀박질 소리가 멎었다....다시한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멀리서 다시한번 숨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희미해서 정말로 들은것인지 내가 환청을 듣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내 감각은 전자가 확실하다고 나에게 전해왔다.
도망칠수도 없을것같다. 그저 이 수업이 끝나길 하염없이 기다려야했다.
시계를 보지 못하니 시간감각도없다. 마치 몇시간은 지난듯한데 교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위이잉... 위이잉...
온몸에 진동이 느껴졋다.. 제기랄..하필이럴때 전화가오다니...
위이잉...위이잉...
계속해서 휴대폰 진동이 울려퍼졋다.
내 전화였기에 나는 생생하게 그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전화를 받아야하나.... 지금까지 내가 느낀것들이 현실이라면 이 전화를 받으면 나는 죽는다..
또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내 이성은 이 전화를 받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위이잉...위이잉...
내 속도 모르고 이놈의 전화는 계속해서 떨어대고 있었다.
피부 세포 하나하나마다 닭살이 돋아다는 듯했다. 체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듯한 싸늘한 느낌이 온몸에 돌았고
창백한 누군가의 시선이 내 온몸에 꽂히는듯했다.
지금 여기서 숨소리라도 내면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아서 숨을 꽉 참고 있었다.
전화기의 진동은 멈췄지만... 창백한 시선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는것 같았다.
도저히 숨을 참기 힘들었을때 교수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멎었다.
나를 보던 창백한 시선과, 싸늘한 분위기도 사라졌고, 교수의 입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한국말이 나왔다.
" 여러분 강의가 끝났습니다. 이제 눈을뜨고 교실을 나가...."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고 눈을 뜨자마자 책상위의 가방을 집어들고 후다닥 강의실을 뛰어나왔다.
숨이 차도 참아가며 주차장까지나와 시동을걸고 집으로 향했다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모르겠다. 엑셀을 그냥끝까지밟으며 전속력으로 집을 향했고, 집으로 가는 내내 너무 무서워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최근에 들었던 노래 가사 한구절을 계속 반복했다.
전속력으로 풀악셀을 밟아 집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다음에 날아올 과속딱지가 걱정되었다.
노래를 멈추고 한참을 차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때... 다시금 소름이 쫙 끼치더니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뒷자석에는 언제 탔을지 모를 교수가 앉아있었다.
"학생.. 내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가면 어떻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