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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전쟁사를 연구하면서 생긴 의문점 txt.
게시물ID : history_139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만구다이
추천 : 2/4
조회수 : 1363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4/02/08 03:37:25
 
한국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일본군이 북상하지 못한 요인을 이순신함대의  일본군 보급로 차단으로 볼수 있는가?
 
: 부산포 상륙 (봄) 한양 점령(늦봄) 평양점령(여름) 
 
개전 2달만에 평양성 까지 점령 하였지만 평양성에서 더이상 북상하지 못함.
 
추위와 굶주림으로 북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봄
 
일본군이 평양을 점령한 때는 가장 무더운 철이고 당시 평양에는 조선군이 남기고 간 약곡 10만섬이 있었다고 함(사료기록)
 
그리고 100여년간의 전국시대를 경험한 일본군이 불과 개전 2개월만에 물자 보급이 안되어서 진격하지 못했다는 것도 의심스러움
 
개전 초기에 조선군은 맥없이 무너진 상황이고 의병들도 이제 막 거병하려던 수준 이고 규모가 작은 수준
 
 
 
일본은 개전초기부터 서해안 을 통한 해상 보급을 계획하였는가?
 
 :  조일전쟁에 참가한 일본수군의 병력은 9천여명 수준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일본군의 교두보인
 
부산포를 수비하는 것 이상의 임무를 수행할 병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함  조선 전기 ~중기 조선수군의 병력은 장부상 4만 8천여명의 편제
 
군적의 문란으로 병력이 많이 줄기는 하였어도  조선수군을 제압하기 위한 일본수군이 겨우 9천여명 규모라는 점에서 
 
일본군이 조선수군과의 결전을 염두해 뒀는지에 의문이 생기고 서해안을 통한 해상보급을 계획 했었을까? 라는 의문또한 생김
 
그리고 일본은 100여년간 전국시대를 걸치면서 전국시대 전쟁에서 일반적으로 육상을 통한 행군과 보급이 일반적이었음 전국시대 전투에서
 
수군의 역할은 해상 수송대로서의 역할일뿐  그 이상 어떠한 의미도 없었음  일본은 길게 늘어진 형태의 섬나라이기에  전쟁을 치를때 행군거리와
 
보급수송에 있어  조선보다 더 불편하고 험난 했을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시대 전쟁에서 해상을 통한 보급과 행군은 거의 없었다는 점
 
 
 
히젠의 나고야 성에서 부산포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해상수송이 필수이지만  부산포에서 한양, 평양 으로의 물자보급은
 
 전국시대를 경험한 일본군으로서는  그다지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을것으로 보임 (수송거리나 지형으로 보아)
 
 
이순신 함대가 일본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줄수 있는 상황이라면 단 한가지 경우 밖에 없다고 생각함
 
규슈와 부산포 를 잇는 일본군 수송로를 장악해 버리는것임    하지만  그것은  당대의 해군전력으로는 불가능이었음
 
 
 
결론
 
: 조일전쟁에서 일본군은 해상보급을 계획하지 않은것으로 추측됨
 
해상보급이라는 것이 일본군에게 있어 + 요인은 될수 있지만 - 요인이 될수는 없음
 
 왜냐?  동북아 전쟁 역사를 통틀어 봤을때 해상,수상을 통해 물자 보급한 사례는 거의 없었음  극히 드문경우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해상, 수상  을 통한 보급은 강을 끼고 있어야 하는 지형적 특성이 갖춰져야 하는데
 
매번 그러한 지형적 특성을 갖춘 전쟁터에서  전쟁을 할수는 없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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