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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꿈2
게시물ID : panic_139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방
추천 : 0
조회수 : 105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4/13 14:28:12
2005. 6. 21

형우가 내 서재에서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형우가 자신의 존재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다행히 아직 내용까지 본 것 같지는 않다. 빠뜨리고 간 서류를 찾으러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하니 식은 땀이 흘렀다. 나는 다시는 서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형우를 호되게 혼냈다. 난생처음 손찌검도 했다. 형우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인데. 일기장은 형우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금고 안에 숨겨야겠다. 현실 속의 나에게 죽음이 임박하면, 그때 형우에게 보여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내 꿈 속에서 살고 있는 형우도 죽을 테니까.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다.

2007. 9. 20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꿈 속의 아이에게도 나의 정신적인 특질이 유전되는 것일까? 형우도 나와 마찬가지로 꿈을 콘트롤하는 능력을 얻게 된 듯하다. 형우에게 예지몽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예전에 아내가(이제는 꿈 속 세계의 아내와 현실 세계의 아내를 구분할 이유가 없다. 둘 다 나에게는 똑같은 현실이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알아챘다. 그 자리에 있었을 리가 없는 형우가 정확하게 뺑소니차의 번호를 알아맞히었던 것이다.
요새 형우는 자각몽의 능력도 손에 넣은 듯 하다. 이것은 위험하다. 형우 꿈속의 사건들이 현실(내 꿈 속에서의 현실)로 나타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꿈속에서의 현실이라지만 그 세계의 법칙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형우가 왜 그런 능력에 집착하는지도 알고 있다. 학교에서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더럽혀진 옷이나 부은 얼굴로 잠든 모습을 봐와서 알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개입해서 악역들을 모두 죽여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형우에게 부여한 성장을 위한 일련의 시련이다. 나는 형우가 이것을 정상적이고 현명한 방법으로 해결하길 바랬다. 꿈의 힘을 빌어서 복수하길 바랬던 게 아니다. 지금으로선 형우가 스스로 자제해 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형우가 그렇게 할 지는 의문이다.

2007. 10. 3

형우의 폭주가 도를 지나쳤다. 이미 찬우가 죽고 태호도 의식불명상태이다. 현재 육체를 지닌 내가 살고있는 세상을 ‘현실’, 내 꿈 속의 형우가 살아가는 세상을 ‘꿈 속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형우의 꿈’이 ‘꿈 속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현실’의 뉴스에서 ‘꿈 속의 현실’에서 일어난 것과 똑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뉴스에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무차별적, 무의도적 살인’이다. 자아개념이 희박한 정신병자나 알콜중독자에 의한 살인,강간 사건이 연일 신문지상을 채우고 있다. 형우의 ‘꿈’이 ‘꿈 속의 현실’ 뿐만 아니라 진짜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더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다.

2007. 10. 7

'현실‘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 뉴스에 ’무차별, 무의도적살인‘의 피해자로 ’찬우‘와 ’태호‘가 나왔다. ’꿈 속에 현실‘에 존재하는 찬우, 태호와 얼굴도 똑같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어차피 ’꿈속의 현실‘은 ’진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니까. 더 자세히 알아본 결과 집당강간사건의 피해자 명단에 ’장선혜‘라는 이름과 ’박애리‘를 발견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형우의 꿈은 ’꿈 속의 현실‘을 넘어 ’현실‘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실세계에 출몰하는 비확인비행물체나 괴물들도 어쩌면 형우의 꿈이 ’꿈 속의 현실‘을 건너뛰고 곧바로 ’현실‘에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소름끼치는 일이지만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꿈 속의 형우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나의 자각몽이 예지몽과 결합되어 현실 속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형우가 꾸는 꿈도 크게 보면 나의 꿈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런 단순한 것을 어째서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까. 형우가 7살이었을때, 형우의 죽음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을 때 나에게 예지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간 형우의 폭주에 ‘꿈 속의 현실’뿐만 아니라 ‘현실계’까지 붕괴되어버릴 것이다. 이 모든 게 죽은 형우를 되살리고 싶다는 나의 부질없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의 섭리를 거스른 내 손으로 이 비극을 끝맷어야 한다. 아아 그러나 나는 도저히 내 손으로 형우를 죽일 수 없다. 형우를 죽이지 않으면서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형우를 계속 같은 꿈 속을 헤매도록 꿈 속의 덫에 가두어버리는 수 밖에 없다. 마치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과 끝이 연결된 꿈 속에 말이다. 모든 계획은 완료되었다. 이 뫼비우스의 띠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나는 형우의 꿈 속에 직접 개입할 것이다. 몇 년 전 이 일기장을 보았던 형우는 가면의 문양을 보고 틀림없이 이 책을 기억해 낼 것이다. 나는 숨겨두었던 일기장을 다시 창가쪽 맨 아래칸. 원래의 자리에 꽂았다. 형우는 이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세상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잠시만 고통을 참자. 잠깐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나의 이 터무니없는 소설도.

그때, 등 뒤에서 삐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툭. 바닥에 아빠의 일기장이 떨어졌다. 이 느낌. 어디선가? 아빠였다. 아빠는 한 손으로 피가 흐르는 복부를 누르고 있었다. 투둑..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피가 쏟아졌다.
“아..아빠..설마..”
아빠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것을 보고야 말았구나.”
아빠가 다가왔다. 한쪽 손에는 골프채가 들려있었다. 골프채의 머리가 서재의 불빛을 반사하고 차갑게 빛났다.
“거..거짓말이죠? 그렇죠?”
아빠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골프채를 치켜들었다. 그것이 나의 머리통을 내리치기 직전, 나는 아빠의 허리를 껴안고 바닥에 엎어졌다. 몇 번을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은 어느새 아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목을 조르는 동작을 늦추지는 않았다. 이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와 감정에 휩싸여 행동하는 나로 분열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발..거짓말이라고 말해줘요. 제발!”
아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빠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내 손등을 잡아 뜯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손가락은 점점 더 깊숙이 아빠의 목살을 파고들었다. 담배 냄새가 섞인 끈적끈적한 땀이 손가락 사이로 배어나왔다.
“이 무책임한 인간! 이제 와서 나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거지!”
온 체중을 양손에 실어 찍어 눌렀다. 압력 때문에 피가 통하지 않아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린다. 나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뚝뚝 아빠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아빠의 얼굴은 피가 몰려 괴물처럼 부풀어 올랐다.
“함부로 만들었다고 함부로 없애지 말란 말이야!”
손등을 쥐어뜯는 동작이 점점 둔해졌다.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아빠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모로 고개를 떨군 아빠의 입에서 토사물과 침이 섞인 하얀 액체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손에 힘을 풀었다. 아빠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죽어있었다. 자신의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고작 2-3분이 지났을 뿐인데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새벽 4시 30분. 어디선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눈앞의 시야가 부옇게 흐려지더니 좌우로 흔들거린다. 시계와 가구들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마블링처럼 녹아들었다.  설마 이것도? 아니야..그럴 수는 없어..빌어먹을...뒤죽박죽이야...모든 게 엉망진창이잖아.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끝>


진짜 이분 쩌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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