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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불욕이면 물시어인하라(그쪽분들께)
게시물ID : freeboard_1679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겹
추천 : 3
조회수 : 5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17 13:49:23
천하가 혼란스럽고, 인륜과 법이 무너진 시대, 수많은 사상가들은 그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 중에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공자와 그를 따르는 유가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천하의 혼란을 "인仁"으로써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공자의 인(仁)은 충서입니다. 충서(忠恕)란, 타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다루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처럼 다루는 것의 시작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인은 사랑입니다.

공자는 인을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은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을 배우면 가능합니다.
그것을 배우는 것은 "예(禮)"입니다. 예는 인을 실제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은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다른 이에게도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이 원칙은 황금률이라고 불립니다. 동서양 어디에나 발견되는 동서고금의 진리이기 때문이죠.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 민족과 율법의 타락을 바로잡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분은 종교로써 그 타락을 바로잡고 율법을 새로이 쓰고자 했습니다.
예수가 새로이 쓴 율법은 "아가페" 사랑, 절대적인 사랑. 세상을 위해서 제 몸을 희생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렵습니다. 가장 좋지만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비유하면서 하나하나 원칙을 알려줬습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에게 대접하라"

많은 사상이 나타났지만 그 사상에 대한 반박도 많이 나왔습니다.
공리주의는 세상의 가장 간결한 정의를 정리했지만, 소수를 다수를 위해 희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이 나왔습니다.
칸트주의는 이성을 통한 세상의 도덕을 정의했지만, 너무나 어렵고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황금률은 사람을 대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입니다. 여기에 따르면 적어도 도리가 없다 비난받지 않습니다.
이 원칙이 기본이 된 이유는 바로 잣대를 두개를 들고서 세상을 평가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황금률이 동서고금에 다 좋게 적용되는 이유는 이중잣대를 금하기 때문입니다.
이중잣대는 스스로의 논리를 잃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다르게 취급해서 스스로를 우물 안으로 가둡니다. 형이상적 사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하적 실체를 평가해 사상까지 재단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따르는 데에는 생각이 같아야 하는데 단지 사람을 따릅니다.
생각이 다르면 마땅히 비판할 수 있는데, 사람을 따르니, 그 사람이 옳으니 비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상대를 비판합니다. 비난합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가장 숭고한 희생을 통해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려 했지만, 그 신도들은 이를 곡해하여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타락한 종교로 받아들여집니다.
공자께서는 모든 사람을 가르치고 배워서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유학자들은 이를 곡해하여 자신만이 타인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유교는 우리나라에서 오래되고 잘못된 관습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황금률조차 비판을 받습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은 타인이 원하지 않는 것을 베풀게 할 수 있다는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교의 황금률은 도덕 행위가 이루어지기 힘들어 질 수 있다는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리주의와 칸트주의에 비판이 나왔다고 그것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원칙은 아직까지 인용이 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살아있습니다.
황금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판이 있다고 쓰지 않았다면 세상 모든 이타주의는 죽고 이기주의만이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아니, 철학 자체가 살아있지 않았을 겁니다.

사람을 따르지 마십시오. 사람을 기준으로 삼지 마십시오.
그 세종대왕마저도 완전치 않은데 그 누가 완벽하겠습니까? 예수마저도 로마 군인에게 끌려가시기 전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사람을 지키되 생각을 따르십시오. 다만 생각이 부딪힌다면 설득하고, 토론하고, 합의하십시오.
강요할 것이 아니라 토론하십시오. 토론의 기초를 따르십시오. 예의를 지키십시오. 상대를 제 멋대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고 민주주의의 근본 아닙니까?

공자는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중에 한 사람은 반드시 배울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말이죠.
소크라테스는 상대와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진리를 깨닫게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제 멋대로 해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제 멋대로 해석하는 이를 가만 두었지요.
여러분은 룸메이트가 큰 소리로 떠들다가 옆집 사람에게 같이 주의를 받으면, 억울하다고, 나는 안 떠들었다고 말할 생각이십니까?
여러분은 위의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과연 기분 좋게, 그렇군요하고 받아들이실 수 있습니까?
군대처럼 계급사회도 아닌데, 회사처럼 삶에 불이익이 가는 것도 아닌데, 뒷골목에서 신체적 위협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모두가 동등한 곳에서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기소불욕이면 물시어인하라.
내게 베풀지 않았으면 하면 남에게도 하지 말라.

자신의 기준이란 것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만, 적어도 사람이 기분나빠하는 것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은 동의할 것입니다.
원칙을 지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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