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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문재인의 업적
게시물ID : sisa_1399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친Book좌파
추천 : 10
조회수 : 113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1/24 11:53:23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7434

노태우 정권 때 1988년 7월 풍산 안강공장에서 폭발사고로 한 노동자가 숨졌다. 풍산금속은 탄약과 포탄을 만들던 국내 최대 방산업체였다. 노동자들은 살인적 노동 강도와 잦은 산재사고를 없애려 노조를 만들었다. 회사와 공권력은 지난 89년 1월 2일 새벽, 새해 벽두부터 경찰 4500명을 안강공장에 투입, 노조간부들을 체포해 구속시켰다. 90년 9월 11일 새벽 5시10분엔 경찰 2300명을 부산 동래공장에 투입, 농성노조원 3백 명을 연행했다. 화약과 폭발물이 가득한 군수공장에 최루탄과 지랄탄을 쏘며 진입한 경찰은 공장 옆 사원아파트 옥상으로 밀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노조원까지 모두 진압했다. 

부산 동래공장 진압 직후 노동자들은 부산대학교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전노협 부산양산노련은 며칠 뒤 전열을 추슬러서 부산지역의 노동과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해 부산대 넉넉한터(운동장)에서 풍산 동래공장 살인진압규탄집회를 열었다. 당시 집회 땐 지도부들이 무대 위에 철제의자를 한 줄로 놓고 앉았다. 부산 민변을 대표해 문재인 변호사도 앉았다. 그 옆에 정의헌 부산노련 의장(전 전비연 공동의장)이 앉았다. 집회 중간쯤 군중 속에서 남연모 풍산금속노조 동래지부장이 무대 위로 뛰어 나왔다. 진압현장에서 가까스로 피신한 남 지부장은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마이크를 잡았다. 노동자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그 순간 정의헌 의장은 문 변호사로부터 귀엣말을 들었다. 정 의장이 기억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우리 노변(당시 노무현 변호사의 애칭)께서 풍산의 자문변호사라서 저희가 이번 사건의 사측 변호를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노무현 변호사는 78년 판사 옷을 벗고 변호사로 전업해 80년대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돼 문재인, 정재성 변호사 등 후배 변호사들을 기용, 인권변호사로 날렸다. 

노무현 의원은 5공 청문회장에서 류찬우 회장에게 이렇게 질타했다. “절대권력을 가진 권력에겐 5년 동안 34억 5천만 원이나 늘름늘름 갖다 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주려다 (폭발사고로) 죽은 노동자에게 3천만 원, 8천만 원 주니 못주니 하면서 싸우는 게, 그것이 기업이 할 일입니까. 답변하십시오.” 청문회장에서 자신이 질타했던 재벌의 변호를 맡은 인권변호사. 그것도 자신이 지적했던 그 노동사건의 회사측 변호를 맡다니. 물론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국회의원이라서 직접 풍산사건을 담당하진 않고, 그의 법률사무소에 소속된 문재인 변호사가 줄곧 사측 변호를 맡았다. 

민주화위원회는 지난해 10월 31명의 풍산금속 해고자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위원회는 관련법에 따라 지난달 복직을 신청한 29명의 복직을 풍산 측에 권고했다. 풍산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동래지부 부지부장으로 해고됐던 김영일 동지는 “이후 2년을 끈 재판에서 우리는 문재인 변호사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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