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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긴글주의) 전환시대의 논리-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中 언론자유편
게시물ID : readers_140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랫파이
추천 : 0
조회수 : 6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14 00: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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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리영희 선생님의 오래된 논문집을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1974년도에 쓰여 졌지만, 그 후로 한 발짝도 진보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정치와 언론의 맨 얼굴을 두 눈 똑바로 뜨면서 질책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30년이나 지나 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 한걸음은 그만큼 더 소중하기에 우리는 어떻게 그 한걸음을 떼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사실 리영희 선생님(글쓴이)도 이 책이 시대를 관통하는 책이 되기를 바라셨을 것이지 시대를 뛰어넘는(...)책이 되기를 바라시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미 한국사회에 하나의 예언서가 되어 뭇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전환시대의 논리 첫 번째 챕터는 강요된 권리와 언론자유이다. 이 챕터의 도입부엔 우리가 잘 아는 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이 소개되어 있다. 멍청한 왕에게 두 사기꾼은 있지도 않은 옷을 왕에게 입혀서 왕을 벌거벗게 만들지만 신하도 백성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결국 가장 어린 소년이 이를 지적하자 임금님은 그때서야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한다. 어린 시절 이 동화를 읽은 나는 단순히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스꽝스런 모습과 소년에게 지적받은 뒤 부끄러워 성으로 도망치는 왕을 상상하며 즐겁게 웃고 넘어갔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임금에게 있지도 않은 옷을 입혀놓고 아름답다고 한 신하들의 이해관계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가장 힘없는 어린 소년이 말할 때까지 왜 수많은 백성들중 어느 하나도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감히 나서서 말하지 못했을까, 결국 소년의 한마디가 현명한 어른들을 타락에서 구하긴 했지만, 그동안 이 왕국을 지배한 타락과 자기모독, 인간 파괴와 지적 후퇴는 어떻게 측량할 것인가.

글쓴이는 이 우화로 대한민국 언론의 두 가지 유형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첫째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유형이고 둘째는 이제는 비밀을 말 할수 있다는 유형이다. 글쓴이는 첫째 유형에서 당시 화제였던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예로 들고 있다. 당시엔 영원한 빨갱이 중공군인 중국과 피로 맺어진 혈맹우방인 미국이 손을 잡는다는 사실에 한국 국민은 극도로 불안감에 휩싸여 이후 한국의 안위와 국가적 방향과 이해관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과 지식계층은 침을 튀겨가며 극동정세 해빙의 불가피성을 알고 있었음을 자랑하듯 떠들어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그 때가 아닌 평시에했었다면, 동북아 긴장해소의 필요성을 닉슨 방문이 있기까지 한 달 전에라도 먼저 꺼냈다면 당시의 사회적 불안은 아마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론과 지식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갖고 있는 사상을 발표해야 하는 때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내일 발표되는 지식은 이미 주위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두 번째 유형인 이제는 비밀을 말 할수 있다는 비화(秕和)언론으로도 불린다. 그 일이 벌어진 당시에는 침묵하고 있다 한참 후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유형이다. 글쓴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을 예로 들었는데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난징 대학살을 벌였지만 일본 내 어느 언론도 이 사실을 편린이나마 보도하지 않았다. 본국에 이 사실이 일부로나마 보도된 것은 패전 후 원고료 몇 푼을 벌기 위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고 하는 비화식 언론을 통해서였다. 이 천인공노할 만행은 그 자리에서 그 시각에 상세히 보도되지 못하고 비판받지 않은 채 안정한 상황 하에서 비화로 밝혀져야 했던 그동안 일본의 지도자들은 더욱 악독한 범죄 집단으로 화했고 국민대중은 무지와 환상 속에서 더욱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타락했다. 현대 일본 내에서 난징 대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전면 부정하는 집단이 생기고 일본이 헌법마저 부정한 채 일본군을 다시 가지려는 극도의 우익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것과 전혀 상관이 없진 않을 것이다. 이 유형은 우리나라에도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데 거창 양민학살 사건부터 국민방위군 집단 아사사건, 실미도 사건, 5.18 등 수많은 대소 사건들이 비화로서만 밝혀지는 동안 민중의 생명을 파괴하고 국가를 뒤흔들었던 책임자들과 범죄자들은 영화를 누리다 책임따윈 지지도 않은 채 호상을 입었고, 인생의 말년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오늘 국가권력의 억압에 눌려 제대로 할 말을 못한 언론은 내일도 역시 그럴 것이다. 그동안 큰 범죄자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를 것이고 한참 뒤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언론이 말할 때쯤이면 이미 범죄자들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세상을 떠났고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날 것이다. ‘오늘의 사실을 오늘에 규명하지 않고 먼 훗날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비화나 읽을거리의 자료로 생각하는 한 통치계급의 횡포는 계속되고 대중은 암흑을 더듬는 상태를 지속할 수 밖에 없다라고 글쓴이는 적고 있다.

현재 이 두 유형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사건이 바로 유병언 사냥일 것이다. 사이비 종교를 이끌며 온갖 사기와 비리를 저지르고 돈 때문에 신자들의 노동력과 재산을 착취하며 심지어 사실상 집단 살해까지 저지르고도 그동안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단순히 비화로만 화자되던 유병언에게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희생양이 필요한 정권에 의해 온 언론(이라고 말하지만, 역시 리영희 선생님의 시대와 달리 현재는 온 보수언론이라고 말해야겠죠)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실 나도 다 알고 있었다라는 어조로 언론이 말할 수 있는 온갖 비난을 유병언에게 쏟고 있다. 물론 유병언의 죄를 덮으려는 말은 아니다. 나는 현재 유병언에게 비난을 쏟아붓는 바로 그 언론이 침묵과 비화라는 도구로 유병언이라는 시대의 괴물을 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자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언론인이다.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야. 애국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라는 말로도 유명하신 분이었다. 그 때문에 이 전환시대의 논리중 가장 첫 번째로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은 역시 권력을 상대로 언론이 가지는 태도였을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명이 무색할 정도로 기사가 아닌 종이 위에 잉크자국을 찍찍 그어대는 소위 기레기들이 진정으로 맞서야 할 큰 권력에는 눈을 내리깔면서 만만만 상대를 향해 국민의 알 권리를 무기마냥 휘둘러대는 현재 대한민국에 살면서 그 분의 그 첫 한마디를 곱씹어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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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독후감 형식이 아니라 책 소개글이 되었군요;; 역시 책을 감명깊게 읽은 것이 글에도 반영이 되었나 봅니다 핫하(그래도 첫번째 챕터만 읽은 사실은 아무도 모를거야 소곤소곤)

저는 강요된 권력과 언론자유 중 언론 편만 집어서 글을 써봤습니다. 정권과 지배자의 논리 편은 아마 곧 쓸것 같군요. 첫번째 챕터에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시다니 사스가 갓영희 선생님 후덜덜

긴말 안하고 다음 편도 써보겠습니당. 아마도 이렇게 챕터별로 독후감을 쓸것 같군요. 본삭금까지 걸어놨으니 빼박캔트로 여러분과 약속하는 겁니다!

음 마무리는.. 여러분 전환시대의 논리 꼭 보세요! 첫장만 넘긴 셈이지만 개인적으로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훨씬 우리나라의 사정에 맞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답을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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