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게시물ID : sports_140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년대표★
추천 : 12
조회수 : 982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9/04/06 21:44:44
롯데의 염종석 선수가 아쉬운 은퇴를 했군요.
한편에서는 염종석 선수를 두고 '반짝스타'라고 합니다. 1992년 입단과 동시에
17승 9패 2.33으로 롯데를 우승시켰던 인물이었죠.....또한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제치고 신인왕과 골든글러브 투수부문까지 먹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1993년부터는 신인시절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연이은 부상과 함께
롯데라는 팀의 침몰속에 비운의 에이스로 남은 투수이기도 합니다.
그를 좋아하는 야구팬들은 염종석이 1992년의 혹사때문에 잦은 부상이 와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하지만 염종석은 단 한번도 남탓을 하지 않았
고 그런 부상마저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했었죠.
통산 93승 133패 방어율 3.76
잦은 부상과 수술이 있었지만 통산 성적은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염종석 개인
으로서는 매우 아쉬울 듯한 성적이네요. 방어율이 3.76인데 승보다 패수가 40개
나 많다니...
아마 프로야구 투수로서 100승까지는 하고 싶었을 것인데..이 부분은 한 명의 야
구팬으로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1992년의 염종석 선수는 정말 상대팀으로 얄미울 정도로 잘했습니다. 당시에 저
는 '안경잡이'라고 불렀는데..-_-; 이 안경잡이 선수만 나오면 아무리 강타선이
라고 하더라도 도저히 쳐낼 것 같지가 않았죠.
당대 최고투수였던 선동렬마저 자신의 주무기인 슬라이더와 염종석의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비교하며 '타자들이 치기 어려울 것이다'라며 칭찬을 하기도 했으니
더구나 롯데가 포스트시즌에서 삼성, 해태, 빙그레를 모두 깨고 우승했던 것은
염종석의 오른팔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개인적으로는 2006년에 고졸신인 류현진이 혜성처럼 나타나 트리플 크라운을 하
고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1992년의 고졸신인 염종석의 경우가 저에게
는 가장 인상이 깊게 남네요.
그 강렬함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테지만..
'반짝스타'라고 주장을 하는 야구팬들도 1992년의 염종석을 잊을 수 없듯이...
더 이상 마운드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네요^^:
이제는 코치 혹은 감독으로서의 멋진 모습을 기대합니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