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출퇴근길에 가끔 고민게시판의 베스트 글들을 읽으면서 힘든 일은 같이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네티즌들의 따듯한 마음에 저 역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모대학 도예유리과(?, 도예과라고 하겠습니다)의 불참비와 관련한 베스트 글을 읽으면서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회활동을 하다가 이런 사태를 겪고서 힘들어할 학생회 운영진이 걱정되었습니다. 아직 대학생이라 어리기에(저도 대학생때는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 이 사태로 왜 자신들이 이렇게 비난받아야 하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잘 알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번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나아가 앞으로 이런 사태를 지켜본 젊은 학생들이 학생회활동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될 까 염려되었습니다. 제글이 그들의 향후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직업이 변호사입니다. 이 일을 카운셀링한다면.. 아래와 같은 문제를 검토했을 것입니다.
1. 불참비를 걷게 된 경위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도예과가 소수라고 하니 25명이라고 합시다. 때는 10년전 2005년 입니다. 학생들은 이천의 도자기 마을(?)로 실습을 가고 싶었습니다. 이천의 한 업체에 문의하니 최소 50명 단위부터 예약을 받는다고 합니다(결혼식, 돌잔치 식당 예약해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최소 인원 게런티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업체도 장소를 통째 빌려주고, 음식도 그에 맞춰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도자기 실습도 그러한 공간이나 흙, 가마 등 위 식당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고민에 빠졌을 것입니다. 분명 학과 공부에 도움은 될 것인데 가기힘들다는 핵생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방안을 토의했습니다. 여러 의견이 나왔을 것입니다. 의견 통일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논의 끝에 다수결로 '길게 보면 현장 실습은 도예과생에게 유익한 것이고, 실습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 학년이 25명이니 일단 1,2학년때는 모두 가는 것으로 해서 50명을 게런티하자.'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리하여 실습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1,2학년에 한해서는 비용을 분담하기로 정하였습니다.
만약, 위와 같은 사정이 있었다면 불참비(사실 이름이 좀 부적절해 보입니다)는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다수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반대하는 학생들, 논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학생도 있었겠지만.. 대의제의 원칙,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된 것입니다.)
2. 결정 사항은 학생회칙 등을 통해 잘 남겼어야 합니다.
2005년의 학생들은 위 결정에 반대했더라도 그러한 토의과정을 알고 있었기에 나름 '불참비'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정치에서도 의견수렴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선배들은 모두 졸업하고, '불참비' 전통만 남았습니다. 아무도 '불참비'를 걷게 된 경위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 제도가 도입된 취지나 당시 학생들의 의사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실 2005년 학생회가 좀 잘못한 것은 이러한 사항을 회칙이나 회의록 등에 잘 남겨 놓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향후 후배들도 그러한 '불참비'의 배경이나 제도의 취지를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아가 상황이 바뀌었거나(최소 게런티 인원이 준다거나 폐지되거나), 학생들의 다수의 의사가 달라질 경우 해당제도를 다시 생각해보고 폐지여부를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어야 합니다. 다만, 이러한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사회의 시스템을 아직은 잘 숙지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기에...
3. 엠티와 결부될 경우, 그 내역을 명확히 분리하여 공시해야 합니다.
오전에 출발하여 오후에 열심히 실습하고 저녁부터 동기들과 즐거운 엠티를 즐긴다면 정말 훌륭한 스케줄입니다.(저도 가고 싶어집니다 ㅠㅠ) 다만, 이때 주의할 점은 엠티에서 먹고 노는데 사용되는 돈과 앞선 이유에서 모두가 내기로 한 돈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잘 지키고 불참하는 학생들에게도 성실히 그 내역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맺음말-
도예과 학생들이 이번일로 많이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참비'제도 역시 지금의 학생들간의 논의를 통해 필요 여부를 결정하고, 존속시킬 경우 잘 가다듬고 투명하게 운영하면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학교에서의 학생들간의 작은 '정치'입니다. 사회에서도 '정치'가 있습니다. 금전적인 문제에만 국한시켜보면 내가 병원을 가든 말든 '건강보험료'를 일정액 내기도 하고, 돌려 받지 못할 리스크를 지고서 '국민연금'을 내기도 합니다(응??), 그밖에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세금'을 냅니다. 그 과정에서 늘 많은 논란이 발생합니다. 그 해결책의 기본은 사전에 공개된 논의 장을 마련하고, 사후에 투명하게 공개하여 운영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구성원의 의사를 묻고 계속 가다듬는 것(법률이 자주 개정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