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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한가지가 아니다.
게시물ID : phil_140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Δt
추천 : 3
조회수 : 47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5/21 02: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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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제 점심으로 먹은 것은 무엇인가?

짜장면을 먹었다 치자. 왜 하필 짜장면인가?

짜장면을 좋아해서? 짬뽕은 매워서? 머릿속에 맨 처음 떠오른 것이 짜장면이어서? 짜장면이 제일 싸니까? 

도시락을 먹었다 치자. 왜 하필 도시락인가?

직접 싸먹는 것을 좋아해서? 직접 싸는게 돈이 덜 드니까? 장소를 마음대로 선택해 먹을수 있어서?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으니까?

이유는 한가지일 수도 있고, 여러가지일 수도 있다. 당신은 짜장면을 좋아하면서 마침 제일 싸기 때문에 짜장면을 먹었을 수도 있다.

짜장면이 제일 싸기 때문에 짜장면을 먹었다고? 이유에 대한 이유도 묻기 시작하면 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당신은 돈이 없어서 제일 싼 음식을 골랐을 수도 있다. 
당신은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인간이라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제일 싼 음식을 골랐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얼마 후 있을 큰 지출계획에 대비하기 위해 제일 싼 음식을 골랐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했기에 제일 싼 음식을 주문했을 수도 있다.

당신은 이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질문을 받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 짜장면을 시켜드세요?"



타인이 했든, 스스로가 했든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당신의 이유를 창조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에게 거짓말한다.

당신이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속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머릿속에서 정리해낸 그 생각은 당신의 실제 동기와 전혀 상관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당신은 당신 자신을 당신이 창조해낸 그 동기의 틀에 쑤셔넣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이런 종류의 창작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왜 그랬어?" 와 같이 자기 내면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으면 "그냥" 이라고 얼버무리기 일쑤이다.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 짜장면 취사선택을 비유하는 행위가 너무 무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상인조차 자기 내면을 잘 모른다. 
자기 동기를 정확하게 콕 집거나,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둔 열린 서술을 할 수 있는 훈련을 한 사람은 내가 여태껏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하물며 정신분열증 환자야!

왜 그 여자를 찔러 죽였느냐는 질문에 그 조현병 환자는 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 진술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왜 그녀를 찔러 죽였는가?

동물도 안다. 살상이라는 행위를 성공시키려면 상대가 나보다 약자여야 한다.

그 살인마는 피해자가 자기보다 약해서 찔러 죽였을 지도 모른다.
그 살인마는 하필이면 전의 여섯명이 들어올 때는 찌르려는 용기를 갖지 못했다가 일곱번째로 입장한 그 피해자를 본 순간 결심했는 지도 모른다.
그 살인마는 신학대학을 졸업하면서 요한계시록의 7이라는 숫자에 자기 망상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그 살인마는 남성으로써 여성에 대한 열등감과 이루지 못한 욕구가 응어리져 그 결과 여성에 대한 혐오를 분출하려 여성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그 살인마는 여성을 본 순간 짐승으로써 칼이라는 긴 물체에 자신의 성기를 투사해 일종의 정신적 강간을 저지른 것인 지도 모른다.



자신도 자신의 행위의 이유를 설명하는데 일종의 한계를 느낀다. 이유는 한가지일 수도 있고, 여러가지일 수도 있으며, 모를 수도 있다.

하물며 이 살인마는 정신분열증 환자이다.

하물여 이 살인마는 살인이라는, 엄청난 행위를 저지른 데 따른 현기증을 느낀 직후이다.



자신도 알지 못할 하고 많은 이유들 - 내지는 이유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다른 옵션들 - 가운데서

하필이면 당신이 고른 그 하나의 선택지가 팩트여서 이것은 혐오범죄이다 라고 단언하는 근거는 ㅡ 도대체 얼마나 용감하면 감히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건가?



p.s.) 당신의 그 용감함은 수많은 다른 적군들 앞에서야 비로소 터져나올 수 있었다.

수많은 다른 옵션들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과감하게 다른 선택지들을 모조리 배제하고 "이것은 혐오범죄이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당신은 여성만을 골라 수없이 연쇄살인을 저지른 ㅡ 거의 확실히 여성 혐오범죄자인 유영철 강호순 앞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거기서는 여성 혐오범죄라는, 누가 봐도 확실한 단 하나의 선택지만 있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에 당신은 용기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멍청이들. 그래서 당신들은 수많은 이별범죄, 치정살인, 강간 등의 명백한 여성 혐오범죄에 대해서는 그토록 소극적이다가 쌩뚱맞은 범죄 현장에서 여태 받아온 모든 폭력행위를 역으로 투사했다. 추모하는 척 포스트잇 나부랭이나 붙이고 저는 우연히 살아남았습니다 운운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하루에도 몇번씩 살해위협을 당한다는 식의 선동을 - 즉 당신이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이 모두 잠재적 살인자라고 매도하는, 또다른 폭력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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