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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즈음해서...그들이 걸어온길.....
게시물ID : humorbest_1407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4호전차
추천 : 34
조회수 : 845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6/08/15 09:10:44
원본글 작성시간 : 2006/08/14 19:35:02
일제강점기때 그들이 친일을 했다 무슨 짓을했다 따로 더 얘기 하진 않겠습니다.

일제가 끝날 무렵 그들에게 해방이라는것은 상상도 못했던 날벼락이었습니다.

소위 지식인이라는것들도 적어도 일본은 200년 이상을 지배하게 되리라고 떠들어댔으니까요

내선일체에 앞장서 살아온 버러지들에겐 2백년이란 세월은 고작 60평생 살다 가는 인생앞에 영원이었고

절대 일제가 망하리라 생각도 못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레 조선이 해방되자 그들에게 그 사건은 죽음과 맞딱뜨리는 절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암담한 세월을 어찌어찌 요령껏 피하다 보니 그들에게 한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죠

바로 미군정이었습니다.

미군은 군정을 실시하자마자 민심을 선동해대던 공산당을 외면하고 한민당과 손을 잡아주었죠.
(한민당의 주축이 어떤 인사들이었는지 따로 설명 안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거기다 일본식의 통제방법을 전면 폐지하고 미국식의 자유시장체제를 실시하게 됐습니다.

대다수 친일지주들은 재빨리 기부금을 한민당에 내고 한민당원이 됨으로써 정치적 신분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유시장체제의 허점을 간파, 한민당 조직을 지주 중심으로 짜고 나가면서

쌀에 대한 매점매석에 들어갑니다.

이들의 이런행위에 쌀은 금방 동이 났고 쌀값은 한달사이에 세배, 두달사이에 여덟배 하는 식으로 폭등하게 됩니다.

미군정은 쌀값이 폭등하고 쌀이 품귀현상을 보이자 육개월만에 쌀에 대한 자유거래를 중지 시킵니다.

하지만 배급제를 실시하자 해도 2월 농촌에 공출할 쌀이 있을리 만무했죠.

결국 지유거래중지는 쌀이 나오는 10월까지 공염불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을 위시한 대도시에서는 쌀을 달라는 군중시위가 거의 매일이다 싶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쌀을 매점매석한 친일지주들의 재산은 무려 300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쌀이 300배로 값이 폭등했다는 소리입니다.

그들은 또 불어난 재산으로 정치적 입지를 더더욱 굳혀 나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미국이야 말로 생광의 나라요, 은혜의 나라요, 부모의 나라가 아닐수 없었고

죽을때까지 하늘처럼 우러러 받들어도 그 은혜갚음이 모자랄것만 같은 황공하고 황공한 대국이라고 그들은 마음속 깊이 절절히 느끼고 있었을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결국 국회의원까지 되고...그 정치세력은 경재력과 권력등이 연과 줄을 이어나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것입니다.

그러니 허구헌날 미국만세고 툭하면 미국님 아니면 빨갱이가 쳐내려 온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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