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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시신]터키가 부정하는 끔찍한 아르메니아 대학살[BGM]
게시물ID : bestofbest_1409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299
조회수 : 52792회
댓글수 : 32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12/25 22:37: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3/12/24 08:55:31
 
Schindler's List Soundtrack
 
 
 
 
 
 
 
 
 
 
 
 
 
 
[출처]루리웹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etc/327/read?articleId=19624905&bbsId=G005&itemId=145&pageIndex=1
글쓴이:타니트 님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벌여진 터키(오스만 제국)의 '조직적인 민족학살'이며, 현대사회 즉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일어난 최초의 '대학살극'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독교를 믿었던 아르메니아인(로마제국보다도 기독교공인이 먼저)들은 이슬람교도였던 터키인들에게 멸시를 받았고, 이어 일어난 민족주의 열파속에서 터키인들의 조직적인 민족할살극에 시달려야 되었습니다. 세계대전동안, 터키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은 본래 살던곳에서 강제로 집단 이주시켰는데, 이에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자신이 살던곳을 빼앗기곤 처절하게 죽었습니다. 물론 저항하는 자는 터키군들이 잔혹한 방법으로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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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더많은 사진이 있으니 구글에 Armenian Genocide또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치시면 나올것입니다.




아래는 네이버에서 나오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내용입니다.

1) 역사적 배경
11세기 무렵 오스만 제국의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가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현재 터키의 대부분의 영토)를 정복하면서 소수파인 무슬림이 다수파인 기독교인을 지배하게 되었다. 아나톨리아 반도는 2000년간 그리스 문명의 요람이었으며 아르메니아인들은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아르메니아 정교)로 지정하였다. 아나톨리아를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시킨 후에도 무슬림은 여전히 소수파로 남아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은 근본적인 국가조직의 불안정을 우려하였다.

2) 제1의 학살(1894년~1896년)
1894년, 아나톨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무슬림과 아르메니아인 간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여 아르메니아인 2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양국 간 충돌 사건을 국제사회에 호소하였으며, 이에 대해 유럽 국가들은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강경 대응을 비판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3국은 공동으로 오스만 제국에 아나톨리아 동부의 행정개혁안을 제시하였으며, 이를 이행할 것을 통보하였다. 1896년에는 아르메니아인들로 구성된 혁명조직이 이스탄불(Istanbul)의 오스만 은행을 습격·점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무슬림-아르메니아인 간 충돌이 재연되었다.

3) 제2의 학살(1915년~1918년)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Genocide)’은 흔히 제2의 학살을 일컫는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을 계기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 통치자들의 압제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오스만 제국에 대한 게릴라 활동으로 무슬림 촌락이 습격을 당하고 주민들이 살해당하였다. 아울러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을 침공하자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 군대에 가담하였다. 이에 1915년 4월부터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학살하기 위해 18세~50세 남자들을 모두 강제 징집하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군사훈련 및 공사현장에 동원된 후 집단 사살되거나 과중한 노동 및 질병, 기아 등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부녀자, 노약자, 어린이들은 모두 사막으로 강제 추방되어 대부분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이때 희생된 수는 아르메니아 측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150만~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반해 터키 측은 사망 인원은 아르메니아인 30여 만 명, 터키인 수천 명이라고 주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메니아와 터키 간 분쟁 (아르메니아 개황, 2012.2, 외교부)


글에서 보듯이 아르메니아 정부는 150~200만이 조직적인 학살에 죽었다는 반면, 터키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은 30만이 죽었으며, 이에 터키인 수천명도 죽었다고 사망자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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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에 희생된 수십 혹은 수백만의 아르메니아인들을 기념하는 추모탑입니다.


터키군의 조직적인 대학살의 증거는 많은 이들에게 증언되고 증거자료도 많지만,
정작 대학살의 주도자인 터키는 오늘날까지 '대학살'을 모조리 부정하면서 오직 아르메니아인들이 강제이주에 의한 집단 괴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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