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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게시물ID : freeboard_1410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앙가주망
추천 : 0
조회수 : 275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05/02/23 10:29:45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양지바른 마당에 모입니다.

편을 갈라서 자치기 한판 하고 나면 어른들이 지게에다 톱과 낫, 풍물을 얹어서 동네 뒷산을 오르는게 보입니다.

애들이 바빠집니다. 

얼릉 집으로 달려가 숯다리미부터 챙깁니다. 골방에서 논두름 콩을 바지주머니마다 잔뜩 집어 넣습니다

 

씩씩거리며 뒷산을 오릅니다. 

땀이나서 둘러보면 동네 행님들 누나들 아지메들이 보입니다.  연세많은 어른들 빼고 거진 다 올라갑니다.

먼당에 오르면 어른들이 벌써 달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소나무 몇 그루를 베어서 기둥을 세우고

가지를 쳐서 그 안에, 밖에 둘러 쌓고 밑둥에 짚단을 몇 개 쑤셔넣으면 달집은 완성됩니다.

 

그리고 정월 보름달이 떠 오르길 기다립니다. 숨소리도 안들릴 정도로 조용합니다.

달을 먼저 볼 요량으로 두손을 모우고 지평선 넘어를 뚤어지게 쳐다봅니다. 

잠시 한 눈파는 순간! 보름달이 조용히 지평선을 솟아 오릅니다.

누군가 고함을 지릅니다. 애들입니다. 어른들은 그저 연신 절을 합니다.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처녀들은 시집가게 해달라고, 아픈이가 있는 집은 우환이 없도록 해달라고 빕니다.

 

이제 신선로표 갑성냥으로 마른 짚단에다 불을 붙입니다. 금방 불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연기가 올라갑니다. 

순간 모두 사방을 둘러 봄니다. 딴 동네 달집 연기가 우리 동네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연기가 높이 올라갈수록 그 해는 풍년입니다. 우리동네 달집연기가 훨씬 높이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고함을 치릅니다. 고만고만한 야산마다 무슨 봉화처럼 연기가 오르고 환호는 골골마다 울립니다.

겨우내 쌓였던 음의 기운이 일시에 가시면서 생동감이 돕니다.

 

애들이 바빠집니다. 

뜨거운 달집 밑둥에서 재빨리 벌얼건 숯을 몇 개 끄집어내서 숯다리미를 그 위에 얹어 놓고 

주머니에 논두름 콩을 다리미 안에 넣습니다. 뜨거운 불에 콩이 뛰기 시작합니다.

볶은 콩은 참 고소합니다. 주둥이가 시커멓게 콩을 먹고 있으면 어른들이 풍물을 치기 시작합니다.

신이 납니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달집을 돌면서 신나게 춤을 춥니다. 무슨 구신들린 사람처럼 말입니다.

유난히 큰 보름달은 빙그레 웃습니다!

 

산을 내려와 나물과 오곡밥으로 저녁을 먹고 나면 정월 대보름이 저물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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