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금지를 했더니, 교권이 무너지고 있단다. 혹자는 체벌금지 조례안이 '망국적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예라면서 적극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아예 그 조례안을 없애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놈의 망국적 포퓰리즘..
체벌을 금지하니 교권이 무너진다는 말을 다시 표현하자면, 교권은 체벌로 유지된다는 말이다. 이를 더욱 더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거다. '애들을 좀 때려줘야, 교사 무서운걸 좀 알죠~'
일제시대 칼차고 들어온 군인같은 교사에게 억압적으로 배운 조선인이 낳은 자식이, 독재자의 칼 앞에서 '민족중흥의 사명'을 가슴에 짊어진 채 체벌에 억압된 채 공부를 하고, 그 국민이 낳은 자식이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21세기에 마저도 체벌의 위협 속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민주주의도 되었으니, 과거의 폭력의 역사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말로써 가르쳐보자. 더이상 두려움에 의한 공부가 아닌, 하고싶어서 하는 공부, 목적이 있는 공부를 하게 만들어보자. 라고 주장했더니, '망국적 포퓰리즘'이란다.
체벌금지를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은 어쩌면, 폭력의 역사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폭력 없이 누군가를 대하는 방법을 모른채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들 자신이 잘못 행동했을 때 맞으면서 자랐기에, 자신이 교사가 되서 누군가가 잘못 행동하면 때리는 것밖에 모르게 됐을 수도 있다.
허나 그렇다면 더더욱, 체벌금지가 도입될 때 무작정 반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때리지 않고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어야 했다. 그들 자신이 맞으면서 자랐기에, 그 후세대는 어떻게 하면 때리지 않고 교육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는 때리지 않고도 잘만 교육하는데, 왜 나는 맞고 자랐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어야 했다. 내가 지금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일단 때리고 보는 그 악습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반 직장인도 아닌 교사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자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더 성숙한 사람이 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은 채, 매너리즘에 빠져 그저 '때리지 않고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남요'하고 있다.
이들이 진작에 매를 놓고 말로써 학생에게 다가갔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학생들을 교육해나갔다면, 체벌을 금지했다 한들 교권이 무너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교육을 해온 교사들에게 체벌금지로 인한 교권침해는 다른나라 이야기다.
지금 일어나는 교권침해라고 하는 상황은 결국 교사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자정작용을 갖지 못한 채 폭력의 순환을 끊지 않고 이어버린 교사들이 받는 벌이다.
지금 체벌금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길을 가다 담배꽁초를 땅바닥에 버렸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회초리로 때린다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허나 그들은, 그들의 제자들이 잘못된 행동을 할때 회초리로 때려놓고도, 단지 그들이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정당화시켜왔다. 지금의 상황은 그것에 대한 벌이다.
이 벌에서 최대한 빨리 탈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고 가르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방법을 못찾겠으면, 혹은 찾기 싫다면 그냥 교사 때려쳐라. 시대의 요구다.
아직까지도 아이들은 때려서 가르쳐야 제맛이라고 외치는 그들에게 이 대사 한마디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