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때문에 주변에 피해준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드는 피해라는 것은 주로 소음, 영업방해, 교통방해 뭐 그런 것들이다. 근데 집회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사항이지만 소음, 영업방해, 교통 등에 관한 규제는 법률로 정한 사항이다. 위계상으로 따지면 법률보다 헌법이 우선이고, 집회 시위의 자유가 우선이다. 그렇다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간단하다. 그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집회, 시위를 하면 된다. 불편하니까 참으라는 게 아니라, 정 불편하면 그들 역시 다른 이에게 같은 불편을 끼치면 된다. 그게 집회 시위 자유가 돌아가는 일반적인 원리다.
집회, 시위 조항을 처음 헌법에 만들 때 과연 입법자가 교통불편이나 소음, 영업방해의 우려를 몰랐을까? 아니다. 입법자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교통불편이나 소음 영업방해가 없어야 한다'라는 단서조항을 넣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 단서조항이 결국 집회, 시위의 자유에 본질적인 제한을 가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예로 들면 공공장소 어디에서도 지나가는 사람, 자동차에 아무 불편도 없이 대규모 집회, 시위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 있긴 있다. 잠실종합경기장이나 상암경기장. 근데 거기서 하면 그게 집회, 시위일까? 집회, 시위란 건 필연적으로 다른 이의 불편을 수반한다. 그런 사실을 이유로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 집시법은 사실상 집회 시위 자유에 대해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의 불편도 없이 집회, 시위를 하라는 건 아예 대규모의 집회, 시위는 하지 말라는 말이 돼 버린다.
서울시민들은 매일 교통지옥을 겪으면서도 차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아 한 발짝 제대로 떼기도 어려운 명동 번화가에도 늘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런데 유독 집회 시위에는 민감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기적이며, 사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수많은 사익들의 경합을 허용하며, 그 사익이 궁극적으로 공익에 기여함을 인정한다. 집회 시위의 자유도 사회의 발전과 적극적 의견개진이라는 공익을 갖는다. 침해되는 법익과 얻게 되는 법익을 비교해 보면 집회 시위로 인해 예상되는 공익은 그 주변의 피해로 인한 사익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