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예산 싸움이 벌어진 근본 원인은 시장이나 시의회가 아니다. 바로 MB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이다. 그 탓에 무상급식을 한 번 이상 할 돈이 사라지고, 교육청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기사입력시간 [173호] 2011.01.11 16:45:18 천관율 기자 |
[email protected] 무상급식을 둘러싼 전투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의 전면전처럼 보인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예산 700억원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버티다 온갖 구설에 올랐다. 발가벗은 어린이를 내세운 무상급식 반대 광고가 시 예산 낭비, 어린이 사진 무단 합성, 선거법 위반 논란이라는 3연타를 맞고 망신을 당했다. 서울시가 한끼에 수천만원 예산이 드는 호화판 만찬을 여러 차례 벌인 사실이 드러나 “밥값 차별하나”라는 야유도 들었다.
교육교부금 보면 밥값 모자란 이유 보여
2010년 12월30일 서울시의회는 민주당 단독으로 무상급식 예산 700억원을 의결했다. 서울시는 예산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시장 대 시의회의 갈등은 한 달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곳간’ 사정을 뜯어보니, 무상급식 예산 싸움이 벌어진 근본 원인은 오 시장이나 시의회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 2008~ 2011년 시도 교육청 예산과 2007~ 2009년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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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30일 서울시의회는 민주당 단독으로 무상급식 예산 700억원 신설을 의결했다.
감세 정책이 시도 교육청 예산에 끼친 악영향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다. 중앙정부가 걷어들인 내국세(국세 중 통관 절차가 필요한 관세를 제외한, 소득세·법인세 등의 세금) 중 20.27%와 목적세인 교육세 전액을 각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내도록 되어 있다. 쉽게 말해,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금 수입이 클수록 교육청 살림도 피는 구조다.
따라서 ‘감세 정책을 펼쳐 세수는 줄었지만, 통수권자의 의지로 교육 예산은 특별히 챙기는’ 식의 문제 해결은 웬만해서는 불가능하다. 교육교부금 비율이 정해져 있으므로 교육 재정은 대통령, 시장·도지사, 교육감의 의지로 줄이고 늘리는 데 한계가 있으며, 사실상 국가의 조세수입에 고스란히 연동한다.
<표 1>을 보자. 권영길 의원실은 2009년 8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 추계 자료를 기준 삼아, 감세 때문에 교육교부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추산했다. MB 정부의 감세 도입 이전인 2007년 세율을 2012년에 적용해보고, 이를 감세가 이뤄진 결과와 비교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대조해보면 감세로 인한 2012년 교육교부금 감소액은 3조9409억원에 달한다. 즉, 감세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2012년 교육청 예산이 지금보다 4조원 늘었으리라는 의미다.
4조원은 어느 정도 돈일까.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무상급식 예산과 비교해 따져보자. 국회 예산정책처는 의무교육 대상자 전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2011년도에 2조1254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다시 말해, MB 정부 감세 정책이 없었다면 다른 교육 예산을 삭감하거나 지자체에 손 벌리는 일 없이, 전국에서 무상급식을 두 번 할 수 있는 예산이 남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예산의 속성상 4조원이 늘었다고 해서 전액을 무상급식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700억원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시의회가 시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할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학교 200개 만들 수도…”
변수가 하나 있다. 권영길 의원실이 인용한 2009년 예산정책처 추계 자료는 소득세·법인세 최고 세율구간 감세가 예정대로 실시된 상황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2009년 MB 정부는, 2010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최고 세율구간 감세를 2년 유예했다. 기획재정부 자료를 보면 이 감세 일부 유예로 인해 2010·2011년 세수는 2년 합계 3조7000억원이 증가한다.
이를 교육교부금 몫으로 환산하면 1년에 교육청 추가 수입이 약 3700억원 생기는 셈이다. 이를 반영하면, 감세가 불러온 교육교부금 감소액은 2010·2011년 두 해 동안은 각각 3조4600억원과 3조6000억원이 되고, 최고 세율 감세가 예정대로 시행되는 2012년에 원래대로 4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최고세율 감세 유예 효과를 반영해도, 여전히 감세가 전국 초·중생 무상급식 예산 전부를 훨씬 넘는 액수를 교육 재정에서 덜어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경기도 교육청의 핵심 관계자는 “4조원이면 무상급식을 두 번 할 수 있고, 200억원짜리 괜찮은 학교 200개를 만들어 학급당 학생 수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고, 고등학교까지 실질적 무상교육을 할 수 있는 돈이다. 무리해서 당겨오는 것도 아니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교육교부금 비율대로만 해도, 감세만 없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라고 아쉬워했다.
감세로 인해 교육교부금이 줄어든 결과 빚더미 교육청이 무더기로 양산되었다. <표 2>를 보면, 2010년 현재 전국 교육청의 채무액은 3조원이 넘는다. <표 1>에서 나타난 교육교부금 감소액만큼 고스란히 빚으로 쌓인 꼴이다. 감세가 본격 시행되기 전인 2008년에 교육청 채무 잔액은 3682억원에 불과했다. 겨우 2년 만에 빚이 8배가 늘어난 것이다.
각 시도 교육청은 학교 신설, 학교 시설 개선, 인건비 등 사실상 고정된 비용을 지출하는 것만으로도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예산 증가가 필요하다. 최소한 물가상승률만큼이라도 예산이 늘어야 하는데, 감세 기조 아래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는 교육교부금 추이를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2008년 30조800억원이던 교육교부금은 2009년 30조400억원으로 미세하게나마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9년 한국 경제의 명목성장률은 3.6%. 즉, 2009년 교육교부금은 하다못해 1조원(2008년 교육교부금의 3.6%)이라도 늘었어야 정상이다. 그래 봐야 제자리걸음인 셈인데, 감세 정책의 여파로 그나마도 확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을 친 것이다.
빚이 늘다보니 ‘빚 갚는 데 쓰는 돈’이 따라 늘어서 예산 압박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도 관찰된 다. 16개 시도 교육청이 지방교육채를 상환하는 데 쓰겠다고 잡아놓은 예산은 2010년까지만 해도 21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1년 예산에서는 1236억원으로 뛰었다. 빚 갚는 데 들어가는 예산이 4.8배나 늘어난 것이다. 권영길 의원은 “부자 감세로 인해 교육 자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교육 예산 확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빚더미 교육청, 누구 책임인가
감세 정책 때문에 교육 재정이 위태로워지고 따라서 무상급식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을 한다고 해도 교육청의 예산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해나가야 할 일을, 진보 교육감들이 예산 허용 범위를 뛰어넘는 억지 요구를 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반박해왔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교육교부금이 국가의 조세수입에 연동하고, 그 돈이 교육청 예산 대부분을 차지하는(2008년 기준, 총 교육수입의 73%가 교육교부금이다)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MB 정부의 감세 정책은 16개 시도 교육청으로 가야 할 돈 4조원을 증발시켰다. ‘교육감의 예산 낭비’보다는 정부의 ‘대책 없는 감세’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출처 : 시사인 정치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