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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잘 놀다 오너라?
게시물ID : humorbest_14142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23
조회수 : 3116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7/04/14 12:50:15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4/06 19: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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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무척이나 살랑살랑거리는 날이었습니다.
바람도 살랑살랑, 창문 앞 대나무 잎들도 살랑살랑, 집사 마음도 살랑살랑, 그러니 야옹이 마음도 살랑살랑거렸을 겝니다.
그 살랑살랑 아른거리듯 흔들리는 뭇 자연의 일체감 속에서, 따스한 햇볕은 수줍은 듯 다가와 유감없이 모든 생명들에게 포근한 기쁨과 평안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날이었습니다.
창문 밖으로도 봄이 피어나고, 창문 안에서도 봄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봄봄봄, 그렇게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집사는 그 봄을 타고 흐르는 태깔과 향기에 취해서 나른한 봄 아지랑이처럼 살짝은 몽롱하고 어질거림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야옹이 또한 창가에 들러붙어 그 봄이 선사하는 모든 것들을 게으르게 만끽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어떤 영원의 정물화가 우리에게도 하나 선물로 주어진다면, 집사나 야옹이는 바로 이 순간을 그렇게 받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살짝 비스듬히 영원을 담고 쏟아지는 햇빛, 살랑거리듯 영원을 쓸며 돌아다니는 바람, 그 햇빛과 바람을 받으며 한순간이 영원인 양 스스로 그러하게 생을 즐기고 있는 온갖 푸나무들, 그리고 그런 그네들이 뒤꼍에서 발하는 그 한순간의 영원으로 초월된 정물화에서, 집사와 야옹이는 그렇게 남아있기를, 그렇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시나브로 오후가 되어갈수록 빛은 더 비스듬하게 꺾여 들어오며 취해서 붉어진 낯빛을 애써 감춰내고 있었고, 소소하게나마 따스한 대기를 파고드는 바람 또한 약간은 얼근하게 취해서 갈지자걸음을 걷곤 하던 때였습니다. 
창문 틀에 누워서 게으른 졸음 짓던 야옹이가 어느샌가 벌떡 일어나서는 창문과 방충망 여기저기를 긁고 부비적거리면서 냐옹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갔더니, 바로 빌라 앞으로 난 쪽길에 회색 냥이 한 마리가 다가와서는 야옹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아마도 자기 구역이 이 근처인 듯싶었는데, 종종 자기 영역을 돌든지, 혹은 심심하든지 하면 이렇게 다가와서 야옹이와 대화를 하곤 하던 녀석이었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대화하기 좋은 날이다, 집사는 마냥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야옹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집사야, 평소처럼 저 오라버니?와 대화만 하고 끝내기엔 오늘이 너무 좋은 날 아니냐?
오히려, 이렇게 힐난하는 듯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 평소보다 무척이나 오랫동안 그 녀석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집사가, 이젠 안 되겠다., 이 자식이 저 녀석과 오늘 왜 저렇게 말이 많지? 마치 양갓집 규수? 같은 우리 야옹이를 보쌈할지도 모를 저런 족보도 없는 얼치기?와의 대화는 오늘 이걸로 끝내야겠다., 결정하고 야옹이를 창틀에서 떨어내기 위해 잡아 당기는데도 불구하고, 이 자식은 계속해서 냐옹거리며 창틀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그 회색 냥이와의 단절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사실, 요 며칠간 이 녀석이 벌려내는 그 발정의 괴로움을 집사는 더 이상 보고 있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야옹이의 그 해결 난망한 임신을 이 회색 냥이가 좀 자연적인 방식으로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제는 그 녀석이 조금씩 빌라 안에서나마 산책도 하겠다, 그러니 자연이 장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오늘 같은 날, 한 번 실전훈련 삼아 밖에서 산책을 시켜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아릿거리듯 비실비실 타고 오르는 봄기운에 지펴서 집사 또한, 그 누구처럼 태양이 쏘게 했다는 식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이제는 나도 지쳤다 이 자식아, 너 좋을 대로 해라,는 식의 무데뽀만 머릿속에 치받혀서는 그 녀석을 밖으로 홀가분하게 내던져버릴 좋은 기회가 생겼다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어느 이유나 핑계든지 간에 집사의 다음 행동을 정당화시킨 이 목록들은, 그러니까, 일정 부분 -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 분명한 타당성과 실천성을 담보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사는 버둥거리며 반항하는 녀석을 창틀에서 억지로 떼어놓은 다음, 일말의 주저나 망설임 하나 없이 바로 그 녀석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던 것입니다.


빌라 입구에서 집사는 야옹이를 무람없이 내려놓았습니다.
바로 한 샛길의 옆에서는 그 회색 냥이가 엉거주춤 거리며 놀란 듯 우리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도망가야 되나, 계속 지켜봐야 되나 순전히 우리들의 행동을 주시하며 타이밍을 재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야옹이는 갑자기 변한 환경에 또 스리슬쩍 길치에다가 겁쟁이로 돌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항상 낯선 환경에 두면 변하던 패턴이었던지라, 집사는 괜시리 걱정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이 시도가 이 녀석의 또 다른 적응 실패로 귀결된다면, 결과론적으론 저도 얌전해진 채 집사의 골방을 다시금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로 되새길 것이 분명했으므로, 야옹이도 좋고 집사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을 재연하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웬걸 오늘은 달랐습니다.
잠시는 예전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만, 갑자기 그 회색 녀석을 따라 저쪽 샛길로 쪼르르 달려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달려나가는 폼이 아직도 엉거주춤, 그 뒷발의 상흔이 역력히 남아있음을 싸아한 아픔으로 씹고 있을 집사는 정작 모르쇠로 일관하고서, 녀석은 저쪽으로 달려가더니 그 자식과 나란히 하고 어느샌가 서로 뽀뽀를 해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실, 가서 말려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이젠  그 녀석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혹시나 그 녀석이 멀리 달아나거나 도망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옆이 그 녀석들 가족이 줄곧 살아오던 영역이고, 그 회색 냥이조차도 이 집사가 사는 빌라 바로 앞이 자기 영역이었던지라, 다른 고양이나 적들을 피해서 멀리 도망가거나 달아날 필요는 없을 거라 무심결에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회색 냥이랑 같이 그 영역 안에서 잠시 놀다가 돌아오거나, 혹시라도 임신까지 해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최소한 돌아오진 않더라도, 나중에 찾으러 가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였던 것입니다.
집사는 아직도 야옹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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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즉, 우리 대부분은 우리의 고양이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마샬 토마스 - >
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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