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PSV에인트호번에 처음 갔을 때 네덜란드 축구 최고의 유망주는 흐로닝언에서 PSV로 막 이적한 아르연 로번이었다. 나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왼발을 자유자재로 쓰고 환상적인 드리블 능력을 갖춘 이 만 17세 선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옆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매 경기 맹활약을 펼친 로번에게 칭찬은커녕 왜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경기를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나는 가끔 로번이 독단적이고 팀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에도 엄청난 잠재력과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경기장 안팎에서 17세짜리 선수가 축구 선수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심지어 경기 중에 로번의 유니폼 상의가 밖으로 나올 때마다 하의 속으로 단정히 집어넣으라고 소리쳤다. 나조차도 왜 히딩크 감독이 유니폼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동차 후원업체가 선수들에게 타고 싶은 차를 고르라고 할 때도 로번에게 가장 작은 소형차를 선택하게 했고, 경기장 밖에서도 로번의 과한 행동이나 언행에 대해선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히딩크 감독의 호통은 팬과 언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17세 선수의 마음을 지켜주려는 속 깊은 배려였다. 로번은 히딩크 감독과 함께한 2년이란 시간을 통해 기술적인 발전은 물론이고 좋은 성품을 지닌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는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오늘날 뮌헨과 자국 대표팀에서도 최고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10여년 전 네덜란드 축구에 로번이 있었다면 지금 대한민국 축구에는 이승우가 있다. 17세에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이승우를 보고 있노라면 반가운 마음과 함께 유망주를 대하는 우리의 서툰 사고방식이 마음에 걸린다.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경기 중에 자신의 움직임을 놓친 동료에게 짜증 섞인 제스처를 보이고, 감독의 교체 사인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대표팀 경기 후에 "소속팀에서는 이렇게 축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골 기회를 놓치고는 광고판을 걷어차고, 최연소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어린 선수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얼마나 중요한가.
모두가 찬사를 쏟아내는 이때, 누군가는 때때로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팀워크를 위해 동료 선수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선수는 감독의 결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벤치에 앉았던 선수가 교체 투입될 때 나 또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벤치에 앉을 수 있어야 하며, 팀의 전술에 자신을 녹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찬스를 놓치고 광고판을 걷어차는 행동은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나 결코 배울 행동은 아니라는 것도 말해주어야 한다.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기쁨과 좌절을 경험하고 성장해도 절대 늦지 않으니 벌써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승우가 유럽 축구의 장점을 배우길 바란다. 하지만 유럽 축구의 단점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한국 특유의 강압적인 지도 방법 때문에 창의력을 상실한 채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도 감독의 교체 사인에 유니폼을 집어던지고, 전반전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너 때문이야!"라고 남을 탓하며, 결정적인 순간 팀보다 나를 앞세우는 이질적 사고 의 문화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1주일에 한 번 경기장에서 환영받는 선수와 매일 구단 직원들에게 환영받는 선수의 차이를 봐온 나는 축구만 잘하는 선수와 축구도 잘하는 선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축구 잘하는 아이, 괜히 기죽이지 마라!" 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 유망주를 단지 유망주로 끝나게 했는지 기억한다면…. 미안하지만 우리는 이승우에게 경기력 외적인 부분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 작고 귀여운 선수가 모든 축구팬의 시선과 기대의 무게를 오랫동안 견디어 낼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말이다.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23&article_id=0002966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