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사정으로 인해 군휴학포함 휴학을 무려 5년이나 한 나는
스물여덟 나이에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평소 시험 전날이면 언제나 학교에서 밤을 새면서 공부해야 안심이 되는 나는
언제나처럼 학교에서 열어준 강의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새벽 세시. 배가 고프다.
내 주머니에는 집에서 탈탈 털어가지고 가지고 나온 1150원.
천원짜리 라면을 하나 사먹고 학교 자판기에 커피가 150원이니까 커피도 한잔 마셔야지하며
잠시 행복했더랬다.
천원짜리 라면에 물을 받아서 편의점 밖에 벤치에 앉았다.
잠깐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나처럼 라면에 물을 받아오셔서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이제 라면을 두어젓가락 먹었을 무렵.
옆자리 할아버지께서 왠지 당황하신거 같다.
슬쩍 쳐다보니 식사를 못하고 계셨다.
갑자기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시더니 그냥 나오신다.
할아버님 왜그러세요? 여쭤보았다.
아이고 학생 내가 라면인줄 알고 샀는데 누룽지였네.
숟가락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어.
숟가락을 따로 사야된다고 하네.
미안한데 백원만 주면 안될까.
아무 생각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백원을 드렸다.
고마우셨는지 식사하시는 내내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말을 걸어주신다.
맛있게 잘 먹었다.
문제는 자판기 앞에서의 나였다.
내 주머니에 오십원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판기 앞에서 깨달았다.
순간 아주 잠깐. 진심으로 아주 잠깐.
그 할아버님께 백원을 건넨 것을 후회했다.
왜 그 할아버님이 백원이 없으셔서 나에게 부탁했는지 원망의 감정도 살짝 들었던 것 같다.
바로 그 다음 순간에 문득 내가 너무 한심하더라.
내 스스로 난 착하게 살고 있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깟 백원에 내가 이제껏 쌓아올린 자존감이 다 무너지고 내가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쓰잘데 없는 생각 말고 어쨋거나 공부나 해야지하며 강의실로 돌아가 프린트물을 보는데
다시 백원이 아른거린다.
그깟 커피 한잔이 뭐라고..
그깟 백원도 없는 내가 병신이지하며 자괴감이 찾아온다.
그럭저럭 중간고사 마지막 시험을 보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미안함, 슬픔, 자괴감이 뒤섞인 회색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우울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고 밤 열한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그리고 밤새, 지금까지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할만 했어. 하고 합리화 해보려했지만 그건 더 병신같아서 그만뒀다.
한심하다. 진심으로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