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중고물품기기를 삽니다. 물론 모르는 사람끼리의 상거래입니다. 며칠 후 그 사람의 물건을 택배로 받고 개봉합니다. 제가 바라던 물품을 중고로라도 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다짜고짜 바로 잘 되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이리저리 조작하면서 내용물은 제대로 작동하는지까지 꼼꼼하게 살핍니다. 작동은 물론이고 기기 조작감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걸 보게 됩니다. 이전에 쓰던 그 사람의 상세 내역이 기기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훑어보니 군인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조금만 읽어봐도 이 사람이 어디서 뭘 했으며 어디 출신이고 현재 계급이 무엇인지까지 상세한 사항을 파헤쳐 나열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정보가 꽤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웃긴 건 (=심각한 건) 어느 곳에서의 아이디랑 암호로 보이는 걸 남겨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건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버릴까봐 통장 뒷면에 비밀번호를 적어놓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기에 적힌 아이디와 암호를 유명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똑같이 입력해 로그인해봅니다. 설마했던 생각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로그인에 성공하고 그 사람의 닉네임부터 나타나고 다양한 신상정보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메일이 날아왔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으며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고 취향은 무엇이며 현재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까지 중고물품 속에서는 못 알아낸 유용한(?) 정보들을 수없이 쌓여있는 메일에서 더욱 더 깊이있게 파헤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ID와 암호는 비단 이뿐만이 아닌 다른 사이트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리고 가장 염려스러운 건
제가 만약 간첩이었다면 지금쯤 별 하나 혹은 두개 달았을지도 모를 이 사람을 퇴직금이고 뭐고 단박에 증발시켜버릴 수도 있으며 당사자 뿐만이 아니라 그 무고한 주변 인물들까지도 전부 뒤엎어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군인들 이런 쪽으로 잼병인 사람들 많은 게 아닐까요? 이러니 여기 저기에 정보가 줄줄 세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나라를 걱정해봅니다.
세줄 요약 1. 중고물품 받았다. 2. 테스트를 위해 이리저리 조작해봤다. 3. 판매자의 정체를 알게 됐다. 덤. 이런 물건을 받은 내가 간첩이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