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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다 1화 - 유다
게시물ID : readers_308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잘안들려
추천 : 3
조회수 : 2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1/03 1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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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퉷, 빌어먹을 에세네인들. 어떻게 이런데서 산단 말이야?”

  유다는 입 안에서 성가시게 까끌거리는 모래알을 뱉어내며 말했다. 에세네인들이 모여 사는 이 광야의 기후가 익숙잖은 까닭도 있지만, 사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시딤의 뒤를 이어 뭐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스스로 갇힌 꼴로 살아가서는 뭘 어쩌겠단거야.

  바리새나 사두개들은 볼 것도 없었다. 조국 이스라엘의 독립은 손 놓았다는 듯 제국과 결탁한 저들과 달리 순전히 야훼를 기대하며 광야에서 조용히 사는 에세네인들에게 사실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찾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유다의 기대를 조금도 채워주지 못 했다. 그들은 그저 무리에서 동떨어진 채 자그마한 자기의 신념을 붙들고 사는 나약한 자들이었다. 주변을 바꿀 용기는 하나도 없이 그저 감람나무 아래서 열매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한심한 자들. 며칠간 그들을 지켜보고 대화를 나눈 뒤 유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요한, 당신이 세상에 나와 외치는 메시지는 분명 그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것 아뇨?

  사실 에세네파 자체에도 큰 관심은 없었다. 다만 세례자 요한이 갈릴리 인근으로 나와서 외치는 메시지에 혁명으로 이어지는 점이 있어서, 그들이 알려진 것과 달리 어떤 거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지체 없이 간소한 행장만 꾸려 이 갈릴리까지 온 것이었다. 이제 그의 초점은 세례자 요한, 그 하나뿐이었다.

*

  강마른 체구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빛나는 눈.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눈빛이었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것처럼 속이 다 까발려지는 것 같다며, 절대 그 눈을 오래보고 있지 말라는 그 눈빛. 

  “제가 오히려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저에게 오셨습니까?”

  처음 본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그가 세례를 주저하는 모습이었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의 눈빛엔 적잖은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소문은 역시 믿을 것이 못 된다. 직접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지.

  그는 자연스럽게 세례자 요한이 ‘선생님’이라 부른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 특징이랄 것도 없는 시골 청년, 강마른 체구와 대비되는 안광-이라는 특징 뚜렷한 세례자 요한과 달리 정말 아무 것도 짚어 말할 것 없는 저 청년에게 왜 세례자 요한은 그토록 쩔쩔매는 것일까. 심지어 저 청년에게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니?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우리가 이렇게 해서 모든 의로움을 이루는 것이 옳다.”

  담담하게 내뱉는 청년의 말에 세례자 요한은 끌리듯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청년은 몸을 돌려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주변 이들은 도대체 저 청년이 누구냐, 요한과 무슨 관계냐 등을 두고 수군거렸지만 유다는 다른 점을 짚고 있었다.

  -모든 의로움을 이룬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의로운 건 야훼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인간이 한다면 왕이나 할 소린데. 자기가 세례를 받는 것이 어찌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는걸까. 

  유다는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세례자 요한은 마치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저 청년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다의 눈에 다시 기대감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역시, 적어도 세례자 요한에게만은 뭐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저 시골 청년도 뭔가 있음이 틀림없다. 

  유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청년의 세례가 끝났다. 물기를 가볍게 털어낸 후 겉옷을 걸치는 그에게 유다가 먼저 다가가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평안이 당신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 나는 가룟의 유다라 합니다.”

  “평안이 당신에게 있기를, 나사렛의 예수입니다.”

  “선생, 나는 선생이 요한에게 말한 내용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선생께서는 ‘모든 의로움을 이룬다’고 하셨지요?”

  “당신이 말한대로입니다.”

  “혹시 그 의미를 내게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예수는 굳게 입을 닫고 유다를 바라보았다. 유다는 그 눈이 자신을 쏘아보는 것인지, 연민으로 보는 것인지 참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매함도 잠시, 그 눈빛은 자신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니, 저는 의로움을 이룬…”

  “알고자하면 반드시 알게 될 것입니다.”
  
  말을 끊듯 짧게 답하는 예수의 태도. 유다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네?”

  “또 볼 수 있을 겁니다.”

  예수는 유다가 뭐라 말을 더 붙이기도 전에 목례를 건넨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가려면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는 속도였지만, 유다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사렛의 예수라고? 이방의 갈릴리 땅에서 나사렛 출신의 청년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는 걸 보게 되다니. 생전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나사렛이라는 변방에 저런 청년이 있다니 참 우습군.

  유다 역시 슬슬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여정이 너무 길어 여윳돈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 역시 돌아가야만 했다. 왠지 모르게 유다는 예수가 말한 것처럼 정말 그를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놈의 나사렛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그 나사렛에 그가 계속 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

*

  세례자 요한이 헤롯에게 잡혀갔다.

  유다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갈릴리까지 곧바로 왔고, 그가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으로 갔다. 사실 스스로도 왜 다시 갈릴리로 가야했는지 몰랐다.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 이 같은 생각은 유다에게 굉장히 낯설었다. 불확실한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가 아닌가? 

  “어?”

  요단강에 당도한 그는 눈을 의심했다. 분명 요한이 잡혀갔다고 했는데, 저기 세례를 주고 있는 요한이 보인 것이다. 그는 눈을 다시금 비비며 천천히 걸어갔다. 요한처럼 보였던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였다. 

  “이제 때가 찼다. 야훼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절망하여 땅으로 거둔 너의 눈을 들어 다시 하늘을 보아라. 그리하여 이 복된 소식을 믿어라.”

  유다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멀쩡히 남아있는 시점에서, 아무리 그가 잡혔다한들 그 많은 추종자는 어쩌고 저자가 갑자기 세례를 주는지. ‘야훼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 자는 알고 말하는 것인지. 도대체 그는 누구기에 저런 말들을 내뱉는 것인지 유다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선생,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다는 짐짓 반가운 얼굴로 크게 그를 불렀다. 예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 옅은 미소를 띠었다. 

  “선생, 이제부터 당신과 동행해도 되겠지요?”

  예수의 표정에 놀람이 잠깐 서렸음을 유다는 민감하게 잡아냈다. 잠시 자신을 바라보던 예수는 다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유다는 그것이 그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말수가 적지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언가를 알 것만 같았다. 그가 어떤 면에서 자신과 되게 잘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았다. 요한의 제자 중 하나였던 안드레가 그의 형 시몬을 데려왔을 때 특별히 그를 ‘게바’라 부른 것은 유다에겐 꽤 충격이었다. 변방 시골에서 어부일을 하던, 돈이 좀 많아봐야 그래도 시골 어부에 불과한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별칭을 붙이다니. 유다로선 그 이유를 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더욱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빌립과 함께 찾아온 나다나엘이란 자가 오자마자 그의 행적을 꿰뚫었고, 예수의 입에서 ‘하늘이 열리며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볼 것이다.’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놀라운 선포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찾던 인물이 바로 예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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