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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의 가장 완벽한 예
게시물ID : readers_141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starter
추천 : 2
조회수 : 44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25 22: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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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시간의 밀도가 지각 공간의 밀도를 밀어낼 때, 인터페이스의 전환이 표면을 통한 한계 설정을 대체할 때, 투명성이 겉모습을 재수립 할 때, 그때 우리는 우리가 공간이라고 줄기차게 부르는 것이 실은 빛이 아닐까 하는 의혹에 조금씩 빠져든다. 이 지각되지 않은 초광학적인 빛에서 태양빛은 일개상(相), 반사광에 지나지 않는다. 이 빛은 시간의 역사적 연대적 경과가 아니라 순간적 시간 노출로 측정되는 지속 안에서 발생한다. 지속이 없는 이 순간의 시간은 과토출이건 저노출이건 '노출 시간'이다. 이 빛이 연출하는 사진과 영화의 기술은 이미 모든 물리적 차원들로부터 탈피한 연속체의 존재와 시간을 예측했고, 그속에서 갑자기 에너지 작용의 양자와 영화 관람의 반점은 사라진 형태학적 현실의 마지막 흔적이 되었다. 그 위상학적 목적론적 두께와 깊이가 이 최종 측정 수단에 들어가는 상대성이라고 하는 영원한 현재로 옮겨진 광속은 하나의 방향을 갖는다. 그 방향은 광속의 크기이며 동시에 차원이며 우주를 측정하는 모든 방사 방향으로 동일한 속도로 퍼져나간다(비릴리오, 1984: 77쪽; 비릴리오, 1991: 63~64쪽, 고딕 강조 원저자).


이 대목-불어 원본에는 193단어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문장으로되어 있는데 그 높은 '시적 격조'를 번역으로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은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펜이 싸질러놓은 설사의 가장 완벽한 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해서 여기에는 아무런 뜻도 없다.


- <<지적 사기: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이희재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2014, 205-206.




나의 한줄 서평: 내가 프랑스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준다.


PS. 디시 도서갤에 먼저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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