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냥을 하러 나왔다. 수렵허가기간은 아니었지만, 이런 깊은 산속이면 들킬 리 없다. 게다가 천적이 없어 늘어만 가는 멧돼지와 고라니를 조금 잡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오랜만의 사냥이라 사냥개도 나도 감이 떨어져 있었다.
“씨가 말랐나….”
적당한 곳에 앉아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옆으로 드문드문 공동묘지가 몇 개 보였다. 새빨간 불이 피어오르자, 사냥개가 짖기 시작했다. 갈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불 붙었는데….”
담배를 짓밟아 끄고, 총을 들었다.
탕, 하고 경쾌한 소리가 갈대숲을 가로질렀다. 목표물은 총에 맞은 듯 비틀거리며 길가로 걸어 나왔다.
새끼 고라니였다.
아직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다리 쪽에 총을 맞은 것 같았다.
“쳇, 먹을 것도 없겠구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모가지를 쥐고 몸을 돌리자,
“살려주세요.”
누군가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갈대밭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이, 시팔 뭐야. 재수가 없으려니까.”
괜히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한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른 차를 타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떼자,
“살려주세요.”
다시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다 손에 쥐고 있던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 초롱초롱한 눈이 마치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 나쁜 감정에 옆에 있던 돌을 들어 몇 번 머리를 내려치자 고라니는 죽은 듯 몸을 늘어뜨렸다. 기분 나쁜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피 묻은 돌을 근처 아무데나 집어 던지고 트렁크에 고라니를 실었다.
“어. 한 시간 정도 걸릴 거야. 작은 놈이긴 한데 다섯 명 정도는 충분히 먹겠지. 바로 갈 테니까, 준비해 둬.”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방금 전 들린 살려달라는 소리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헛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차가 막히는 바람에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경찰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사고라도 난 모양이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마당에 그릴과 음식을 준비한 채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늦었네요.”
나는 차가 막혔다고 말하고, 고라니는 트렁크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손을 씻으러 집에 들어가는데 차 뒤에서 아내와 친구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 여보, 이…, 이거 뭐에요? 당신 대체 뭘 잡아 온 거에요?”
“새끼 고라니.”
쓸데없는 호들갑에 짜증이 났지만, 아까의 찝찝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 차 뒤로 갔다. 아내와 친구들은 트렁크 뒤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고라니 한두 번 보냐고 핀잔을 주고, 죽은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트렁크 밖으로 끄집어 냈다.
“뭐야, 이건.”
초롱초롱하던 고라니의 눈이 사람의 눈동자로 바뀌어 있었다.
“뭐야…, 이거. 내가 잡은 거 아닌데 이거.”
방 안쪽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해 수색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밀렵꾼의 소행으로 판단, 일대 CCTV에 찍힌 차량 등을 확인하고 있으며….”
이미 희미해진 눈동자가 애처롭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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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있을 때 밀렵꾼들 때문에 출동 많이 했죠 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