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라브 벡신스키 (Zdzislaw Beksinski, 1929년 2월 24일 ~ 2005년 2월 22일) 폴란드출신의 화가이자 사진가 그는 남부 폴란드 사노크(Sanok)에서 태어났다. 크라코프(Kraków) 산업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 대학 졸업 후에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건축 관련 일을 하며, 폴란드 재건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그 후 적성에 맞지 않아 건축일을 그만 두고 예술사진가로 활동을 시작 1955년 이후 예술에 관심을 둔 그의 사진작업이 1958년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1960년대부터 극사실적인 묘사로 죽음과 관련된 드로잉 작품을 꾸준히 내 놓았다. 1973년 바르샤바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 되자, 사람들은 경악했고,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77년 그는 갑작스레 '사노크(Sanok)'를 떠나 '바르샤바'로 이사를 갔다. 고향에서의 폭발적인 유명세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 새로운 매체인 컴퓨터 그래픽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는 벡신스키에게 시련의 시대였다. 그의 아내 (Zofia)가 1998년에 사망하였고 1999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그의 아들 토마슈(Tomasz)가 자살했다. 아들의 시체는 벡신스키가 발견했다고 한다. 2005년 2월에 그는 바르샤바의 자택에서 17군데를 찔린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오랜 지인의 아들인 19세의 로버트 쿠피에츠(Robert Kupiec)와 그의 친척인 16세의 (Lukasz K)가 범인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벡신스키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다가 거절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의 초기작은 주로 볼펜과 잉크를 사용한 작품이 많았으며 그로테스크(기괴한)하면서도 왠지 에로틱한 그림이 많았다. 특히 인체의 파괴를 상당히 많이 표현했는데 피부가 갈라지고 뼈와 살이 분리되는 등 신체의 파괴를 가장 많이 묘사했다. 벡진스키는 이런 작품 활동을 통해 바로 '환시미술'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했다. 초기 볼펜과 잉크를 통한 작품은 1990년대에 이르러 컴퓨터를 이용한 그래픽 작품들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 손으로 직접 그릴 때의 충격감과 상실감 그리고 몽환적 감각이 많이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우울하고 시각적 충격, 예리한 칼로 베이는 듯한 느낌, 기괴한 느낌은 직접 손으로 직접 그릴 때가 가장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누군가 벡신스키에게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느냐?" 물었다. " 그림에 대한 의미는 나에겐 무의미한 것입니다. 난 그림에 어떠한 상징을 갖고 그리지 않습니다. 만일 그 이미지가 하나의 상징으로 귀결된다면 그건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단지 일러스트일 뿐이죠. 나는 스토리상의 간섭이나 참견 없이 내가 그리는 싶은 것을 그릴 뿐 내 그림을 나도 잘 모릅니다. 굳이 이해하려들지 마십시오. " 그는 이렇게 '단지 난 삶의 단조로움을 표현한 것 뿐'이라고 답했다. -내용/사진 구글 발췌-
에일리언을 만든 HR기거는 백진스키의 작품영향을 받았다. 그리고'베르세르크' 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 역시 백진스키의 작품영향을 많이 받았다고한다. 또한 그 외 많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백진스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