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목민이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서른번이 넘는 이사를 다녔다.
때문에 서울바닥 처음가보는 낮선 골목의 저 귀퉁이를 돌면
허름한 골목가계가 있음을 시나브로 예측하다 맞추고는 곧 가슴이 시리다.
처음걷는다 생각했던 이 골목은 분명 언젠가 스쳐지나간 동내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동내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동경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네가 있는 거리가 참 좋았다.
골목길 구석 구석 너와 나눈 대화, 순간 순간 스쳐지나간 표정, 몸짓
하나 하나가 조금씩 쌓여 내게 이 거리의 포근함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주었다.
우리동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와 나의 거리가 아마 그런느낌이지 않을까?
그런 이 거리를 곧 떠난다.
어떻게 보면 네가 이미 떠나버린 이 거리를 내가 의미있게 간직해보았자 혼자만의 궁상이다.
하지만 가치있는 궁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네가 있는 거리에는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이 가득하니까
나는 조금만 더 이 따스함을 느끼고 싶다.
적어도 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온다면 그쯔음 네가 있는 거리를 떠나고 싶다.
누구에게 토로 하나 없지 혼자 간직하는 이 궁상은 이기적인게 아닐까? 하는
약간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네가 있던 거리에는 아직 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