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동아일보 기자 해직사태
유신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정권의 통제로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의 기자들 중 일부는 이에 반발하며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다.
이 선언 이후 기업들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취소, 그래서 백지로 신문을 찍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조그맣게 동아일보에 응원광고를 내었고,
동아일보 내의 일부 기자들은 이에 큰 감격을 받아 적극적으로 자유 언론 투쟁을 벌이다가 해고되었다.
1987년 6월
박종철,이한열의 희생과 전국에서 일어난 항쟁으로 우리 국민들은 일명 체육관 선거(전두환 셀프 대통령)가 아닌 직선제를 쟁취하게 된다
그러나
19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 사건으로 선거는 순식간에 북풍 선거가 돼버리고
또한 민주진영 후보 두 명으로 표가 갈라져 전두환의 후임인 노태우가 당선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마치 이 느낌;)
1988년
모두가 낙담하고 있을때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이 한겨레 신문을 만들고 1988년 5월 15일 창간 1호가 나온다
(이미 1987년 동아일보에 한겨레 신문 창간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한겨레 신문 창간 발기인 멤버 중 한 명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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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동아일보
<현재 동아일보, 영화 ‘1987’ 숟가락 얹을 자격 있나>
그때 동아일보는 지금의 동아일보와는 다르다.
전두환 정부 때 국회의원을 지내고 노태우 때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학준은 동아일보 사장과 회장을 역임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이여” 칼럼을 통해 반향을 이끌어낸 김중배 당시 논설위원은 1991년 편집국장 시절 사주의 ‘신 보도지침’에 맞서다 경질됐다.
<언론인 해직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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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 한겨레 내에서도 기자들의 세대별 내부 갈등 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정교과서.JPG](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801/15154517673be6c571eb5c4d6eabf3a2cfd466ef9b__mn740020__w574__h305__f35271__Ym201801.jpg)
(국정교과서 광고)
그러나 역사는 금방은 아니지만 긴 세월을 두고 뚜벅뚜벅 발전하고, 우리가 노력하면 바뀌어가고 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이 있는한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