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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악마의 계약
게시물ID : panic_976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13
조회수 : 216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1/09 15: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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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스무 번째 면접에서 떨어진 뒤 연우는 자취방에서 혼자 울었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변변치 않은 집안, 의지박약,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흔한 외모. 연우는 무엇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우울증으로 처방받은 수면제에 몇 번이나 손을 댔지만, 죽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차라리 악마라도 있었으면.”
 
연우는 어릴 적 보았던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남자, 파우스트의 이야기였다. 차라리 영혼이 없어도 좋으니, 지금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몇 번이나 소리 없이 외쳤다.
 
정 그렇게 원한다면 소원대로 해 주지.”
 
눈물을 닦으며 앞을 바라보자, 뿔이 세 개 달린 남자가 연우 앞에 서 있었다.
 
누구세요?”
 
너와 계약을 하러 온 악마다.”
 
자신을 대악마라고 소개한 남자는 연우에게 계약서를 한 장 내밀었다.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 너는 이제부터 악마가 되어 활동할 수.”
 
하겠어요.”
 
마치 마지막 기회라도 되는 듯 연우는 악마의 손에서 계약서를 낚아채 서명을 했다. 정식 악마가 아니라 계약직이었지만, 그런 것쯤은 사소한 일처럼 느껴졌다.
 
, 직접 겪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계약서에 서명하는 연우를 보던 악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계약서를 확인한 뒤 연우의 서명 아래쪽에 사인을 했다.
 
좋다. 계약이 끝났다.”
 
악마의 말이 끝나자 연우의 머리에서 뿔이 돋아났다. 하지만 연우의 뿔은 대악마의 크고 아름다운 뿔과 달리 작은 혹정도의 크기였다.
 
가자.”
 
악마를 따라 연우는 마계로 들어갔다. 살벌한 악마들이 도처에 득실거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마계는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중심가에 있는 빌딩에 한곳에 들어간 연우는 거기서 양복과 악마증을 지급받았다. 악마증에는 크게 계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악마는 빌딩의 사무실에서 연우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사후 영혼계약은 한 명당 1, 너처럼 직원을 고용하는 경우에는 10점을 준다.”
 
그럼 총 몇 점을 모아야 되는 건가요?”
 
“1,000점을 모으면 정식 악마가 될 수 있고, 10,000점을 모으면 중급 악마가 될 수 있다. 고급악마 부터는 얼마나 계약했느냐가 아닌, 영혼의 질이 중요하지.”
 
대악마가 자신의 뿔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악마는 크게 웃으면서 연우에의 어깨를 두드렸다.
 
참고로 한 달 동안 실적이 없으면 악마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소멸되니, 참고하도록.”
 
연우는 악마가 된 그날부터 다리에 불이 나게 인간 세상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마치 공짜로 전 세계를 여행 다니는 것 같았다. 보고 싶었던 곳, 가고 싶었던 곳을 질리도록 다녔다. 악마증은 연우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악마증이 작동을 멈췄다.
 
고장 났나?”
 
이리저리 돌려보고 흔들어 보다 연우는 악마증의 뒤에 있는 사용설명서를 보게 되었다.
 
이 악마증은 계약 사원전용으로 일주일간만 무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사용을 원할 경우 인간의 영혼을 넣어 주세요?”
 
연우는 문득 자신이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 명 쯤이야 간단하지.”
 
하지만 연우는 곧 자신이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영어를 할 수 없는 연우는 계약은커녕 말 한마디조차 걸지 못했다.
한인 타운으로 가서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설픈 말투, 뿔도 하나 제대로 없는 어눌한 악마를 사람들은 사기꾼 대하듯 취급했다. 그러던 사이 2주가 지났다. 연우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한 달이 지나면.”
 
자신은 소멸되고 만다. 거울을 보니 어설프게 악마 흉내를 내는 자신이 보였다. 처음 악마와 계약하기 전 느꼈던 우울한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나 연우를 덮쳤다.
 
어째서 이런 엉터리 계약을 맺은 거지? 하다못해 한국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
 
연우는 자초지종을 말해주지 않고 자신을 속여 계약했다며 악마를 원망했다.
 
어리석은 녀석.”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대악마가 연우 앞에 나타났다.
 
네 녀석을 한국으로 보내주도록 하겠다. 대신.”
 
대신?”
 
앞으로 일주일 안에 계약을 하지 못하면, 너는 소멸되고 만다.”
 
연우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뜨자 연우는 한국에 있었다.
연우는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들은 하나같이 쌀쌀맞은 것들뿐이었다.
 
, 나 요새 회사 일이 바빠서. 좀 만나기 힘들겠는데.”
 
미안. 나 이번에 결혼했잖아? 몰랐어?”
 
혹은 만나더라도 계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전부 난색을 표했다.
 
, 너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좀 제대로 된 일 좀 해라.”
 
평소 연락도 없더니 이럴 때만 부르냐?”
 
어느새 악마가 정해준 일주일이 다 지나가고 있었지만, 계약은 도통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학교 동창들 사이에서는 연우가 사이비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고향에 내려간 연우는 중, 고등학교 친구들을 찾기 위해 집에서 앨범을 뒤졌다.
어느덧 저녁이 되고 연우의 앞에 다시 대악마가 나타났다. 악마가 들고 있는 회중시계는 앞으로 연우의 수명이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제발, 제발. 조금 더 시간을.”
 
연우는 대악마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대악마는 아무 말 없이 연우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혹시 연우 왔니?”
 
소멸까지 시간을 십 분 남긴 순간, 방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연우의 엄마였다.
 
집에 올 거면 온다고 이야기나 하지, 거기서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니? 밥 차려 줄 테니까 얼른 나와서 밥 먹어라.”
 
조용히 지켜보던 대악마의 표정이 즐거운 듯 일그러졌다. 연우는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와 펜을 들고 부엌으로 나갔다.
 
, 엄마.”
 
엄마는 부엌에서 쌀을 씻고 있었다.
 
너 몸을 왜 그렇게 떠니? 어디 안 좋니?”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에게 연우는 계약서와 펜을 내밀었다.
 
여기 사인 좀.”
 
엄마는 계약서를 들고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사후 악마에게 영혼을 바칠 것을 계약합니다. 뭐니 이건?”
 
엄마의 물음에 연우는 답을 하지 못했다. 회중시계는 째깍거리는 초침이 앞으로 시간이 1분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연우가 엄마를 재촉하려는 순간, 엄마가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이구나. 들어가 쉬려무나. 얼른 밥 해줄 테니까.”
 
연우는 엄마에게서 계약서를 받아들고 쓰러질 듯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는 정지된 회중시계를 든 채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는 대악마가 보였다.
 
크하하하하. 첫 계약자로 자기 부모님을 고르다니, 어지간한 녀석이로군. 좋다. 마음에 들었다.”
 
연우는 그제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 내가. 내 손으로 엄마를.”
 
쉴새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연우는 집을 뛰쳐나갔다. 엄마가 연우를 불렀지만, 도저히 뒤를 돌아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이후 연우는 꾸준히 계약에 성공했다. 첫 계약이 어려웠을 뿐, 다음 계약부터는 식은 죽 먹기였다.
계약을 할 때마다 악마증의 기능이 좋아져, 더 큰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허영심 많은 사람에게는 구두와 차를 선물로 주고 계약을 맺었다. 능력을 원하는 자에게는 능력을 주고 계약을 맺었다. 신앙이 독실한 자에게는 쾌락의 끝을 보여주고 계약을 맺었으며, 의심이 많은 자는 독사의 혀로 현혹하여 계약을 맺었다.
연우의 머리에는 어느새 작은 뿔 대신 크고 늠름한 세 개의 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런 인간 따위가 뭐라고.”
 
근본도 없는 놈 주제에.”
 
, 그래봤자 한 순간 일거야.”
 
자신을 멸시하는 온갖 악마들의 수모를 이겨내고 연우는 고급악마가 되었다.
연우는 자신을 무시하던 모든 악마들을 부리게 되었으며, 처음 자신과 계약을 맺은 대악마의 딸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다.
마계의 모든 악마가 권력과 부, 사랑하는 가족을 가진 연우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연우는 매일 괴로워했다. 단 하나, 자신의 첫 계약 때문이었다.
악마와 계약한 인간은 모두 지상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살았다. 많은 돈, 좋은 능력을 대가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연우의 엄마는 혼자서 힘겹게 살았다. 그저 연우에 대한 사랑으로 아무 것도 받지 않은 채 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신을 홀로 키워주신 어머니의 영혼을 직접 받으러 가야 했다.
그 괴로움에 연우는 매일같이 뼛속이 사무치는 고통에 시달렸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연우와 같이 울어 주었지만, 슬픔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차라리 계약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매일 그렇게 애원했지만, 되돌아 갈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의 영혼을 받아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내려온 연우는 조심스럽게 집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옛날 살던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이제는 낡았지만 낯익은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로 들어가니 엄마가 아침 햇살이 비치는 소파아래 앉아 잠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연우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 앞에 섰다. 평온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엄마의 영혼을 거두려는 순간, 주름진 손이 연우의 손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다음 순간 하늘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계약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연우는 커다란 빛에 휩싸여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자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낡은 소파가 조용히 햇빛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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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이런 엔딩이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달라졌네요(...) 너무 무난한 엔딩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만, 기존건 쓰다보니 도저히 구성이 어려워서 ㅠ_- 아무튼 서울은 춥군요. 역시 남쪽이 좋아요. 다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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