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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침대
게시물ID : readers_142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새우살통통
추천 : 2
조회수 : 24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7/26 22:28:28
이것봐 
너 어릴때 사진앨범이야.
이걸보니까 이제 알겠어.
넌 이 침대위에서 태어나 살았고 이곳에서 죽었어.
한사람의 인생의 시작과 끝이 같은장소라는것
참 굉장한 일이지.

이 사진속의 너희 엄마는 침대 방금태어난 너와함께  다시잠들었어.이사진은 조금 자란 네가 아빠에게 한손에 안겨있고.

너도 여느 아기들처럼 작고 여리고 부드러웠구나.하하..케이.너 정말 사랑스러워.

마지막에는 정확히 이 침대에서 나한테 안겨 마지막숨을 쉬었지
차갑고 뻗뻗하게 굳어서말야.
집에서 나랑 마지막을 보내고싶어했으니까.나도 최대한널편하게 보내주고싶었지만
처음이어서 어려웠고.
솔직히 두려웠어.

내가알던 네가 아닌거같아서.넌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알수없는소릴하고 칭얼대고 투정을부리며 무서울정도로 수척한 모습으로 나에게 기댓으니까.
너무 힘들고 무서웠어.
알아 누구나 그런모습에 숭고함을느끼지  죽음까지같이할 사랑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난 그렇지못했어 네기대와는달리 그렇게 좋은사람이 아니었으니까.네가 죽은 그다음날 네마지막 끔찍한모습을 본거 후회했어 빨리잊으려고 네친구랑 뒹굴었을정도니까.

미안해 케이.정말 오랜시간이걸렸어.
난지금 그 순간이 더없이 숭고한 순간이란걸 깨닫기까지말야.

다시돌아간다면 
흙에묻히기전까지 관속에내려가서 까지안아줬을거야.
네가 썩고 바스라져서 흙이되 온갖풀과나무들의 양분이될때까지말야.그렇게 세상에 스며들어 날 위로해줄수있을때까지

침대밑에서 네가 썻던 편지들을 찾았어.
그걸 보면서 더욱 그런생각이들어.내가 지금까지 받아보지못해서 더더욱 무덤속의 네가 안타까워



왜 하필 편지였어?고리타분하게.너답지않아
넌 심지어 인터넷회사에 다녔잖아.하긴 전자데이터에대한 허상과 취약점은 전문가가 더 잘알수있다고 떠벌리곤했으니까.넌 이메일이 영혼과같다고했지.잡을수없지만 실존하는.우리머리속에 오고가는 단편같다고했었지.금방 생겼다 사라지는

그렇군.편지는 잡을수있어.네가 여기누워서 끄적거린 모습도 잡힐듯해.글씨 쓸때마다 힘줄과 관절이 움직이는 너의 손가락과 손등이 생각나.

맞아..네 손이 그런식으로 움직일때마다 정말 보기좋았어.꼭 날 위해 춤추는것같았거든.지금  이 편지들을 보고있으니 네 손눌림의 안무를 기록해놓은것같아 케이.

지금까지 이렇게 잘 보관해서
누군가 나중에 얼마든지 꺼내볼수있게한 배려라고 여길게.

근데 편지써놓은 내용말야 부끄럽지않아? 지금 가장 내밀한 네 속살을 엿보는 느낌이야.
이 침대에서 너랑 같이있을때보다 더 부끄러워.

내가 더 부끄러운 부분을 읽기전에 당장 네가 무덤에서뛰쳐나올것같아.그정도야.네가 보고싶어 케이 

ㅡdear.leap
내가 잘못ㅡ어 립.너한테 한말 전부 진심으로그런거 같지만 전부 실수ㅡ거야.내가 다ㅡ수한거야.네가 그렇게 가ㅡ리니까 난 더 망가ㅡㅡ거같아.내가 잘못했어.

정말 최고의 악필이야.글씨가 너무엉망이라서 거의해독을했어.매번 넌 네마음을 숨기고싶어했지.넌그날 무지 차갑고 도도하게굴었어.그때 내가 여기에 오지않았다면 어쩔뻔했어?그때 내가 피곤해서 침대에 앉지않았으면?우린 어떻게되었을까 케이

너네집 이불은 정말 부드러워.피폐해진 몸과마음을 달래주는 따듯한 위로처럼 녹아들지.그 부드러움에 배가 아릴정도로 자꾸 빠져들어서 다음날 아침까지 나오기힘들정도였으니까.차라리 이불보만 냉큼 가져가고 너랑 헤어질까했지.네가 날 안고 넘어뜨려기전까지말야.

침대란 이상한곳이야.
잠이필요한 피곤한 사람을 눕도록 이끌게하곤 방어벽을 허물어뜨려 속마음과 본능을 꺼내버리거든.낮과밤에 따라 우리 모습도 다르게만들어.

너희 부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시고 내가너희집에 위로차 갔을때,넌 여기서 울다지쳐 잠든줄알았어.근데 여느때처럼 그냥 엎드려서 게임하고있었지.난 뭐라고 위로해줄거리가없어 너랑 같이 게임을 했었고.

너희 부모님이 쓰시던 침대위에서 밤새도록 말없이 게임만하다 잠들었어.우린 그저 부모님이없어서 이렇게 게임을맘껏해도되는 달콤함에 짜릿했지. 밤이되었을때 넌 자면서 너도모르게 울고있었지만.

케이.넌 감정을 애써 숨겨왔겠지만 밤에 잠들면 너도모르게 네 감정들이 무의식을 뚫고 외쳐대곤했어.잘자다가 식은땀흘리면서 일어날때나 기분좋게중얼거리며 잠꼬대하면 난옆에서 지켜보곤했거든.
그러다 잠잠해지는 순간이 있어.이불이 부시럭거리고 침대의 이음새가 삐걱거리는 그런 가운데

숨소리를 듣다보면 정말 너랑둘만 남은거같았지.어쩌다이렇게될수있을까.알수없는뭔가가 우리둘을 망망대해에서 침대라는 나룻배를 띄워놓고 둘만남겨놓은것같아.
세상돌아가는소리가 파도소리를 내고 말야.

정처없이 떠도는 막연한 관계속에 애증의 파도가 오랜세월 오고가면 언제부턴가 눈빛만봐도 의중을 알아차리게되는거야.그것이 싫든좋든간에.
난 그 모든 순간을 기적이라고 생각해.

6월13일
생일축하해 립.

내가받은 생일카드는 네가왜갖고있는진모르겠지만.
여기 번진자국이있네 그래 그때내가  울었던것같아.왜그런지기억도안나지만 맞아,가장힘든때였어 먹을것도구하기어려웠으니까.네가 나랑 다투고나서 선물과 주던카드지.

그런 순간은 사실 별로없었어.모든오해와다툼을 한순간에 증발시키는 마법같은 그런순간말야. 한고개넘어다음단계로 가는거같았어.우린 그런순간이 믿기지가않으면서 기뻐서 어쩔줄몰랐지.그냥 같이있는거만으로도 행복했어.
하루종일 누워만있었는데도 모든게 다괜찮은거같았어
왜그랬을까 케이.

세상이 무너지고있었는데


앗.물이튀어서 글자가 다번졌어.

케이.지금 네방에서 비가오고있어.
간혹천둥도 치고말야.바로 몇발자국만 가면 바닥이 무너져있고.낭떠러지야.이미 오래전에 천정이 뚫렸어.

겨우 이것때문에 내가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너도 기분이 좋지않겠지.
근데 그럴수밖에 없어.나지금너무속상해.믿어지지않을만큼.속상해.
맙소사 저것봐 시멘트 속에있던 철근이 다 드러나있어.

졸려.
일어나면 이게다꿈이었으면좋겠어.


역시 집이최고야.침대에서 한숨자고나니 개운한거같아.내가 피를좀흘려서 우리가 아끼던이불이 더러워지긴했지만.

근데 있잖아 아직 읽을 편지가 꽤있는데
눈이 잘보이지않아.숨쉬는것도 어렵고.
아...네가 가기전에 이런기분이었겠네.너 진짜 상태가 최악이었구나.

제길..난 그것도모르고.널 좀비취급했었지.
나 벌써 너한테 잔소리들을준비됐어.
난지금 어떤모습일까 케이.지금 내모습 봐줄만해?내가 너보다 잘나갔잖아?옷도훨씬잘입었어 그치?지금은 피에절여져있지만.

우린 이 침대에서 눈을 뜨면서 서로를 확인했지.새소리가들리면 출근준비에 바빴어.영원할것같은 매일아침마다

지금은 저 멀리서 폭탄이터지는 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구름사이로 전투기와 미사일이 끊임없이 날아다녀.집들이 무너지고있어 

이 침대만은 지키고싶어.케이
영원히 잠들수있는. 너와 나의 무덤처럼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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